불교에서 생각은 죄가 될 수 있다 가르친다
기독교에서는 어떨까 ? 실제의 행동이 이루어질때
죄라 말한다 불교에 비해서 더 열려 있는 상태로
바라보는 것이다
생각이 죄인가 ?
행동이 죄인가 ?
너희는 내가 어떤 대답을 할 것이라 생각하는가 ?
너희는 어떤 대답을 할 것인가 ?
이런 질문을 하고 고민하여 대답을 만드는 것이 바로 수행이며 자기 앎을 만드는 방법이 된다
하지만
두가지를 비교했을때 반드시 둘중 하나는 정답이 있다 판단하지 말아라
이 주제에 대해서라면 둘 모두 틀렸다
기독교가 틀린 이유에 대해서라면 생각이 곧 행동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에
이를 가벼이 여기었기에 틀린 것이고
불교가 틀린 이유는 그들또한 가벼이 보았기에 틀린 것이다
흔히들 말실수라고 표현한다 그럴 것 같아 보이지 않는 사람들이
간혹 인내심에 한계를 보이거나 마음에 여유가 없을때 쏟아내는
상처와 같은 독설들이 있다
그 표독스러운 말이 언제나 하는 그의 생각을 말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그 말은 언젠가 한번은 생각했던 말이 나온 것이다
그 한번의 생각은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생각을 하는중에 주제가 바뀌어 잠시 그대로 둔 것이다
그래서 생각을 하고 놔둔다는 것은 사라지는 개념이 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고 다시 바라볼때까지 그 자리에서 대기를
하고 있게 된다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람들의 공통적인 행동은 다른 사람들에게
죽고싶다는 마음을 숨기지 않는 것이다
그 말은 혼란한 상황이 왔을때 큰 충격에 빠졌을때 실행 할 수 있다
너희가 알아야 할 몇가지가 있다
하나는 생각을 가벼이 보지 말아라 이다
두번째는 생각을 생각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세번째는 생각을 전환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생각 하나 하였다고 그것이 미래에 아무일이 없을 거라 생각하여
가벼이 보는 것이 얼마나 큰 작용을 하는지 알아야 한다
내가 저자를 미워한다는 생각 하나를 했다고 넘어가는 것이
그냥 넘어가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그 생각에 대해서 넘기지 말고 따로 관찰하여 거기에 대한
생각을 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더 나은 방법을 찾을 수 있어야 한다
기독교는 그 생각하나가 만들어 낼 수 있는 힘을 가볍게 보았고
불교는 생각의 위험함을 알고는 있었지만 그 생각이 쉽게 없어진다거나
힘으로 막으려 하면 막을 수 있는 가벼운 거이라 보았다
너희가 위대하다 바라보는 그 종교들은 오늘도 나에게는 여전히 형편없는
종교에 불과하다
고작 그 정도 수준으로 하늘이라 말하는 석가와 예수가 나에게는 한없이
작고 낮아 보일 뿐이다
생각 하나는 가볍지도 않고 쉽게 사라지지도 않는다
그러니 생각 열번은 얼마나 무거운 것이겠느냐 ?
도둑질을 하는 이는 저것을 훔치고 싶다는 생각을 열번 백번 하는 중에
이미 훔치고 있고
성욕에 눈이 멀어 구상을 생각한 이는 이미 행동을 하고 있고
음주를 하고 운전을 고민한 이는 어느새 사람을 죽여 후회의 자리에 서 있게 된다
그래서 생각을 가벼이 여겨 그냥 흘려보내거나 넘기는 방식으로는
그 미래의 위험을 막을수가 없다
스스로 그 생각을 성찰을 하여 집중을 하는 생각의 시간이 필요하다
그냥 부정적인 생각으로 끝내는 것과 부정적인 생각에 대해서 그것이 틀리다
결론을 짓고 끝내는 것은 같지가 않다
결과가 다르게 나오는 달라짐이다
아직 미래를 바꿀 수 있는 시간은 있다
그러한 일이 벌어지기 전에 바꿀 수 있는 기회가 있고
또 이것이 그대로 진행이 되었을때 문제가 될 수 있는 것도 말할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은 제대로 들여다 보아야 말할 수 있다
그냥 부정적인 생각을 하고 놔둔채로 넘어가 버리면 너는 그것이 위험한줄
모르게 된다
진지하게 집중하여 관찰할 수 있어야 잘못될 위험도 있겠구나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자기의 마음을 쉽게 보지 말아라 자기의 마음을 간단히 믿지 말아라
너의 생각과 다르게도 움직이게 된다
정답을 쉽게 찾아냈다 생각하지도 말아라 그래야 고민에 고민을 하여
더 나은 대답을 만들 수 있다
정답과 같아 보이는 것은 그 순간 그 위치에 맞아 보일뿐이지 가장
높은 생각을 말하지는 않는다
다시 질문을 해보겠다
생각은 죄가 될 수 있을까 ?
죄가 될 수 있다 그 생각을 바꾸지 않고 그대로 놔둔다면 그렇게 될 수 있다
하지만 행동을 바꿀 수 있기 때문에
죄가 되지 않기도 한다
불교의 생각과 기독교의 행동과 성찰의 개념을 모두 사용하여 바라본다면
더 나은 대처를 할 수 있다
이것이 벽을 두지 않고 세상 모든 만물의 힘을 사용하는 도교의 방식이다
너희가 이세상 전부라 생각하는 그 거대함조차 고작 물한방울의 작은 크기로
가둘 수 있다
만법을 사용할 수 있는 진리의 바다가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 보혜사의 성령 해도진인 이다
사실 나는 진인의 위치에 있지는 않다 그 시절 그들의 수준에서 말할 수 있는
정신적 수준이 한계가 있었기에 진인과 성인과 같은 말들을 만들어 내는 것이
최고를 표현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그것을 더 구체적으로 표현 할 수 있다
범인의 위에는 현인이 있고 현인의 위에는 진인이 있으며 진인의 위에는 성인이 있고
성인의 위에는 천인이 있고 천인의 위에는 신이 있으며 신의 위에는 초신이 있고
초신의 위에는 명선이 있고 명선의 위에는 선월이 있으며
선월의 위에는 자조가 있다
그리고 자조의 위에는 한견이 있다
한견의 위에는 추망이 있다
이것이 450번째 부처의 경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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