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란츠 카프카의 소설 『소송(Der Prozess)』은 꽤 유명하면서도, 지금 읽어도 충분히 의미 있는 작품이다. 이 소설의 주인공 요제프 K는 어느 날 갑자기 알 수 없는 이유로 체포되고, 이후 정체를 알 수 없는 법정 절차에 휘말린다.


이상한 점은, 소설이 끝날 때까지 주인공도 독자도 그가 정확히 무슨 죄를 지었는지 알지 못한다는 것이다. 누가 그를 고발했는지, 어떤 법을 어겼는지, 무엇을 해명해야 하는지조차 분명하지 않다. 그러나 그 소송은 계속 진행된다. 요제프 K는 이유도 모른 채 재판의 세계에 끌려 들어가고, 결국 그 알 수 없는 소송으로 인해 죽음에 이른다.


더 기묘한 것은 주변 사람들의 반응이다.


주인공에게 가까운 사람들조차 “왜 그런 중요한 일에 휘말렸느냐”, “빨리 법정 문제를 해결해야 하지 않느냐”는 식으로 그를 다그친다. 그 누구도 이 소송 자체가 이상하다고 묻지 않는다. 혐의가 무엇인지, 고발자가 누구인지, 절차가 정당한지 따지지 않는다. 오히려 모두가 그 재판을 당연한 현실로 받아들이고, 그 안에서 어떻게든 대응해야 한다고 말한다.


독자와 주인공에게는 황당하고 어리둥절한 일이다. 그러나 작품 속 세계에서 그 소송은 세상에서 가장 치명적이고 중요한 사건처럼 취급된다. 아무도 이유를 모르지만, 모두가 그것을 중요하다고 믿는다. 누구도 죄목을 설명하지 못하지만, 모두가 요제프 K에게 이미 책임이 있는 것처럼 행동한다.


나는 이 장면을 볼 때마다 한국 사회를 떠올린다.


한국인들은 객관적으로 보면 과거에 비해 훨씬 풍요로운 환경에서 살아가고 있다. 굶주림이나 절대적 빈곤에 시달리던 시대와 비교하면, 오늘날의 한국은 분명 물질적으로는 훨씬 나아졌다. 그런데도 많은 사람들은 마치 알 수 없는 중대한 혐의로 기소된 사람처럼 살아간다.


무엇 때문인지는 정확히 모른다.


누가 요구하는지도 분명하지 않다.


어떤 기준을 충족하면 자유로워지는지도 알 수 없다.


하지만 사람들은 늘 쫓긴다.


좋은 대학에 가야 한다.
좋은 직장에 들어가야 한다.
뒤처지면 안 된다.
결혼해야 한다.
집을 사야 한다.
나이값을 해야 한다.
부모에게 효도해야 한다.
현실 감각을 가져야 한다.
남에게 피해 주지 말아야 한다.
사회성이 좋아야 한다.
남들처럼 살아야 한다.


이 모든 명령은 법으로 정해진 것도 아니고, 누군가 공식적으로 선포한 것도 아니다. 그러나 한국 사회에서 그것들은 법보다 더 강한 압력으로 작동한다. 따르지 않는다고 감옥에 가는 것은 아니지만, 무시와 조롱과 낙인이 따라온다. 사람들은 그것을 자유로운 선택이라고 말하지만, 실제로는 끊임없는 심문에 가깝다.


“취업은 했니?”
“결혼은 언제 하니?”
“집은 샀니?”
“그 나이에 아직도?”
“현실을 좀 알아야지.”
“다들 그렇게 살아.”


이 질문들은 단순한 관심이 아니다. 그것은 추궁에 가깝다. 묻는 척하지만 사실은 평가하고, 조언하는 척하지만 사실은 기소한다. 한국 사회에서 개인은 늘 보이지 않는 법정에 세워져 있다. 나이, 직업, 소득, 집, 결혼 여부, 부모와의 관계, 말투, 취미, 외모, 인간관계까지 모든 것이 심사의 대상이 된다.


그러나 이 법정의 가장 무서운 점은 판사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부모가 판사인 것 같기도 하고, 학교가 판사인 것 같기도 하고, 회사가 판사인 것 같기도 하다. 때로는 친구와 친척과 동네 사람과 인터넷 여론이 판사처럼 군다. 하지만 막상 책임을 물으면 모두가 빠져나간다.


“누가 너한테 그렇게 하라고 했니?”
“결국 네가 선택한 거잖아.”
“사회 탓만 하지 마.”
“남들도 다 그렇게 살아.”


이렇게 말하는 순간, 압력은 사라지고 책임만 개인에게 남는다. 사회는 끊임없이 소송을 걸어오지만, 자신이 원고라는 사실은 인정하지 않는다.


카프카의 『소송』이 무서운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그 세계에서는 죄목이 명확하지 않지만 죄책감은 분명하다. 절차는 보이지 않지만 처벌은 존재한다. 고발자는 알 수 없지만 피고는 계속 불려 다닌다. 요제프 K는 자신이 왜 심판받는지 모른 채, 이미 심판받아야 할 사람처럼 취급된다.


한국 사회도 비슷하다.


사람들은 왜 그렇게까지 살아야 하는지 정확히 설명하지 못한다. 하지만 모두가 그렇게 살아야 한다고 말한다. 왜 뒤처지면 안 되는지, 왜 남들처럼 살아야 하는지, 왜 특정 나이에 특정한 성취를 해야 하는지 명확히 말하지 못한다. 그러나 그 기준을 따르지 않는 사람에게는 곧바로 낙인이 찍힌다.


이 사회의 재판은 끝나지 않는다.


젊을 때는 공부로 심판받고,
20대에는 취업과 연애로 심판받고,
30대에는 결혼과 집으로 심판받고,
40대에는 자녀와 직위로 심판받고,
50대 이후에는 자산과 체면으로 심판받는다.


한 재판이 끝나면 다른 재판이 시작된다. 무죄 판결은 없다. 잠시 기준을 통과했다 해도, 곧 다음 혐의가 기다리고 있다.


그래서 한국인으로 산다는 것은, 어쩌면 요제프 K의 운명을 뒤집어쓰는 일과 닮아 있다. 죄목도 모른 채 기소되고, 원고도 모른 채 방어해야 하며, 판사도 보이지 않는 법정에 평생 출석하는 일.


한국 사회는 사람들에게 끊임없이 묻는다.


“너는 정상인가?”
“너는 뒤처지지 않았는가?”
“너는 네 나이에 맞게 살고 있는가?”
“너는 남들에게 폐를 끼치지 않는가?”
“너는 충분히 노력했는가?”


그러나 그 질문의 기준은 끝내 명확히 제시되지 않는다. 그래서 사람들은 답을 찾지 못한 채 계속 움직인다. 공부하고, 취업하고, 결혼하고, 집을 사고, 자식을 키우고, 체면을 세우고, 남들 눈치를 본다.


하지만 그 모든 과정을 거쳐도 마음 한구석에는 이상한 불안이 남는다.


내가 무슨 죄를 지었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계속 심판받고 있다.


이것이 한국 사회의 카프카적 풍경이다.


그리고 그 끝없는 소송에서 벗어나기 위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어쩌면 아주 단순한 질문을 던지는 것일지도 모른다.


도대체 누가 나를 고발했는가?
나는 무엇에 대해 유죄인가?
그리고 왜 나는 이 재판에 계속 출석해야 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