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과악은 분리된 것일까 ?
어떤이는 종이의 뒷면과 같다 생각할 것이고
빛의 반대 라고도 생각할 것이다
나는 그렇게 보지는 않는다 그것은 반대면이 아니라
옆에 늘어서 있는 것과 다를바가 없다
나의 세계에서는 그렇다
저 산을 오르는 자와 저 범죄를 저지르는 자가 느끼는
쾌감은 같다
바로 성취감이다 이것은 같은 감정을 느끼는 것이다
마음에는 선과 악이 구분되어 있을지라도 자아가 목표를
달성하는데 느끼는 쾌감에는 선과악이 없다
자신과 달성하기 어려운 대상을 함께 결합하여서
정복을 하고 싶은 욕구가 생겨나는 것이다
미인과 사귄다면 즐거울 것이다 좋은 집을 사도 즐거울 것이다
저 금고를 훔쳐 내가 가질 수 있다면 즐거울 것이다
가진것을 잃게될까 두렵지만 분명 그 순간의 마음은 원하는 것을
취하여 기분이 좋다
그러니까 너희가 알아야 할 것은 선이냐 악이냐를 판단하기 이전에
이것이 같은 뿌리에서 출발한다는 것을 이해해야 한다
말하자면 원리이다
폭력은 왜 생기는 것인가 ?
2차대전의 독일과 일본의 군인들은 무수한 고문을 자행하였다
어떻게 인간으로써 저런 방법을 사용 할 수 있을까 ?
정말 같은 인간이 맞는 것인지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 본다 하여도
여기에는 그들이 그렇게 행동하였던 분명한 이유가 있다
너도 그와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가만히 기어가는 벌레를 향해 날개를 뜯거나 다리를 제거하는 이들이 있다
그것은 너 자신의 자아와 힘을 결합하여 저항할 수 없는 존재에 대해 네 자신이
얼마나 위대한지 보여주기 위해 그러한 행동을 취하는 것이다
이것으로 네가 느끼는 것은 너 자신은 대단하다는 우쭐감이 생긴다는 것이다
바로 성취감이다 도덕으로 보면 옳은 행동은 아닐지라도
자아가 느끼는 오로지 성취감 뿐이다
학교폭력또한 다르지 않다 그 순간 꼼작 못하는 상대를 보며 자신이 그 존재하는
세계에서 얼마나 대단한지 보여주기 위해 과시하는 것이다
더 모진말 더 강한 괴롭힘을 할수록 위대하게 보일 수 있기에
이번의 폭력이 다르고 다음의 폭력이 다르며 그 다음의 폭력도 다른 것이다
성취감을 지속하기 위해서는 하나하나의 더 높은 단계를 차근차근 밟고 올라가야 한다
머리속으로 구상한 이것도 시험해 보고 저것도 시험해 보면서 말이다
저 경비원을 향해 갑질을 하는 주민은 어떠한가 그순간 자신이 높은 위치에 있다는
생각을 이용하여 그로인해 어쩔줄 모르는 상대를 바라보며 존재감을 느끼는 것이다
자신의 존재함이라는 것은 그것을 실감했을때 느낄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이것을 느끼는 것에는 선과 악의 개념이 없다
남에게 선행으로 인정을 받아도 느낄 수 있고 악한 행동을 하여 인정을 받아도 또한
같은 감정으로 느낄 수 있다
누가 뭐라고 부르든 지금 이 순간만은 자신이 대단한 존재로 올라섰다는 그 생각 하나만으로
그는 목표를 달성한 것이다
그러니까 성취감이 어떻게 생기는지 그 근본을 들여다 보지 못하면 자신이 왜 악한 행동을 하는지
이순간 왜 우쭐한 것인지 왜 권력을 이용하여 갑질을 하는지 괴롭히는지
본인도 이해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감정이 어떻게 생기는지 세계의 근본을 들여다 볼 수 있다면
너의 마음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어떻게 컨트롤 할 수 있는지를 알수 있다
내가 지금 악한 행동을 하는 것을 이해하는게 알아차림 이라는 목적에 이르는 것이 아니라
그 감정이 어떻게 생기는지 구조를 들여다 보는 것이 더 깊은 문으로 들어갈 수 있는 방법이다
성취감을 느끼기 위해 목표를 찾고 도전을 하는 것 자체에 선악은 없다
그러나 오직 자신의 이득을 위하여 다른 존재의 권리를 무시하는 것은 사회적 악이 될 수 있다
그리고 자신의 만족감이 세상과 나 자신의 결합으로 인해 인정받음으로써 살아있음을 실감할 수 있는 것을
알게 된다면
문제가 되는 것 이외의 다른 방법으로도 자신의 성취감을 찾을 수 있다
앞서 말하였던 것과 같이 산에 오르는 것도 그 방법중 하나이다
그 마음이 생겨나느냐와 그 마음이 왜 생겨나느냐는 다른 말이다
그 왜라는 것을 알수가 있어야 다른 상황에서의 수많은 모습들을 시뮬레이션 하고
그 미래를 들여다 볼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이 멸이라는 개념이다
석가의 공에서는 이것을 알 수 없었지만 나의 멸에서는 이것을 볼 수 있고 말할 수 있으며
그가 이르지 못한 수많은 세계를 창조하여 구현 할 수 있다
1단계에서 말할 수 있는 수준이 화엄경과 금강경이라면
2단계에서 말할 수 있는 수준은 더 고차원적인 이론을 설파할 수 있다
화엄경이 대단하다 하여도 차원을 뚫을 수 없는 생각은 결국에 반야심경과 금강경과
이사야서와 요한복음서와 다를 것이 없다
2단계의 생각 하나에서 그 세계의 모든 것이 태어나게 된다
3단계의 생각에 머문다면 더 높은 수준의 생각들이 피어날 수 있다
말하자면 진리에도 레벨과 등급이라는 것은 존재한다
다 함께 같은 진리 속에서 살아가지 않는다
차원이 다르면 그것은 수준이 다른 진리이다
인류가 진정 진화를 이루고 싶다면 차원을 도약할 수 있는 정신의 발전이 있어야 한다
성선설인지 성악설인지 그조차 규명하지 못하는 지혜의 수준에서는
그 무엇을 말한다고 하여도 거기서 만들어지는 모든 것은 차원을 넘지 못하는 가둬져 있는
서로 다를 것이 없는 그정도의 수준에 불과하다
왜 ? 라는 의문을 품으라는 것이 아니다 거기서 대답을 만들라는 것이다
현재의 수준에서 생각하는 대답이 아니라
네가 말할 수 없는 대답을 찾아내서 말하라는 것이다
그냥 자문자답을 하는 것과
질문을 하고 네가 말할 수 없는 대답을 만드는 것은 같지가 않다
이를테면 신이 무엇인가 ? 묻는 것이다
여기에 너희의 보편적 이해수준인
신은 모든것이다
신은 진리이다
와 같이 대답한다면 그것은 차원을 뚫는 개념이 아니다
하지만 악이 바로 신이다 대답한다면
그것은 다른 대답이 나올 수 있다
내가 생각하지 않았던 아니라고 보았던 개념에서
대답을 만들어야 하기에 인식과 인지 관점을 다르게
보는 것이다
나는 세가지의 신의 기술을 가지고 있는데 그중 하나가
육도의 거울이다
이처럼 질문 하나를 바꿈으로 차원을 도약할 수 있다
선과 악이 이분법의 구분이 아니라는 이해에 도달 할 수 있다면
그 다음부터 그가 말하는 모든 세계는
이전의 간단명료한 개념에서 탈피하여 더 복잡하게 연결되어 있는
세상을 펼쳐 나갈 수 있다
어떤 종교를 믿고 어떤 경전을 읽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네 의식의 차원이 세계를 벗어날 수 있느냐 하는 것이 너의 나아감에
있어서는 더 중요한 일이다
그 세계에 도달하면 너는 스스로 종교를 만들 수 있고
너의 경전을 만들 수 있으며 너의 천국을 만들 수 있다
그리고 문제에 대해 스스로 답을 만들 수 있다
어떻게 그렇게 잘아는지 궁금할 것이다
생각의 한계가 왔을때 이것을 넘는 것을
데라타라 말한다
만번의 데라타를 돌파한 곳에 내가 있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690 번째 부처의 경지에 도달한 자이기에 알수가 있다
한번의 데라타도 뚫지 못한 앎으로 나의 세계를 안다 생각하지 말아라
네가 천분의 1이라도 도달할 수 있다면 현재 너의 생각과
그 미래의 너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어 있어 너의 말조차
너는 부정하게 될 것이다
진화는 가능하다 그 단계의 수준에 도달하면 된다 도달한자는 이에 대한
교육을 통해 학습을 할 수 있고
인류의 수준도 함께 높일 수 있다
방법을 알면 수행을 통해 스스로 도약할 수도 있다
누군가는 그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어야 했다
그것이 나이다
천지창조는 아직 끝이 나지 않았다 그것은 계속해서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어제의 창조보다 더 중요한 것은 너의 내일을 창조할 수 있다는 것을
네 스스로가 아는 것에 있다
이것이 기독교의 궁극의 경지 거듭나다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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