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에서 말하는 ‘장님’은 오래된 우화 속 표현을 빌린 것입니다. 시각장애를 가진 분들을 비하하거나 조롱하려는 의도는 전혀 없음을 먼저 밝힙니다.
유명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장님 몇 명이 코끼리를 만지고, 저마다 코끼리가 무엇인지 설명하는 이야기입니다. 누군가는 코를 만지고 뱀 같다고 말하고, 누군가는 다리를 만지고 기둥 같다고 말합니다. 그들은 분명 모두 같은 코끼리를 만졌지만, 모두 다른 것을 말했습니다. 완전히 틀린 말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정답도 아니었습니다. 그들이 알 수 있었던 것은 오직 코끼리의 일부뿐이었으니까요.
대부분 한 번쯤은 들어보셨을 이야기일 겁니다. 그리고 그 교훈 역시 낯설지 않습니다. 일부만 보고 전체를 판단해서는 안 된다는 것. 모두가 알고 있고, 너무나 당연하게 말하는 교훈입니다. 그런데 제가 뜬금없이 이 오래된 우화를 꺼낸 이유는, 최근의 인터넷을 보며 이 이야기가 다시 필요해졌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인터넷은 현대 문명이 만들어낸 가장 위대한 도구 중 하나입니다.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인터넷은 원래라면 만날 수 없던 사람들을 연결했고, 접할 수 없던 지식과 세계에 너무나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해주었습니다. 저 역시 일과가 끝난 뒤 하루의 많은 시간을 인터넷과 함께 보내는 사람입니다. 자기 전까지도 손 안에서 인터넷을 놓지 못하는 사람 중 하나이지요.
다만, 세상 모든 것에는 그림자가 있는 법이라고 했습니다.
최근의 인터넷은 점점 더 빠르고, 거대해지고 있습니다. 그에 맞추어 사람들은 더 쉽게 분노하고, 타인을 배척하며, 보다 감정적으로 변해가는 듯 보입니다. 한 사람의 말 한마디, 캡처 한 장, 짧은 영상 하나가 그 사람 전체를 대변하는 것처럼 전시되고, 감정과 분노는 들불처럼 너무나 쉽게 번져나갑니다.
그래요. 마치 코끼리의 다리를 만지고 기둥이라고 이야기하는 장님들처럼 말입니다.
어쩌면 지금은, 그 우화보다 더 심각한 상황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 이야기 속 장님들은 적어도 직접 코끼리를 만졌으니까요. 그러나 인터넷에서 우리는 대개 코끼리를 만지지도 못합니다. 누군가가 잘라낸 코끼리의 일부, 타인이 보여주기로 선택한 조각, 혹은 생전 처음 보는 사람의 이야기 하나를 듣고 코끼리를 다 아는 것처럼 말합니다.
쟤는 그런 인간이라고. 쟤들은 원래 저렇다고. 더 볼 것도 없다고.
어쩌면 인터넷이 만들어낸 장님이란, 보지 못하는 사람이 아니라 자신이 전부를 보았다고 믿는 사람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물론 인터넷이 과거에는 순수하고 평화로운 공간이었다고 말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공격성과 배타성은 인터넷의 시작부터 존재했을 것입니다. 다만 제가 주목하고 싶은 것은, 그것들이 최근 들어 더 쉽게 보상받고, 더 빠르게 확산되며, 더 자연스럽게 일상의 일부가 된 것처럼 느껴진다는 점입니다.
그만큼 인터넷 안의 변화는 빠르고, 급하며, 어느 순간부터는 체감될 정도로 가속화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지금부터 말 그대로, 요즘 인터넷에 대해 조금 이야기해보고자 합니다.
제가 느끼기에 가장 큰 변화는 알고리즘의 발달, 그리고 플랫폼과 콘텐츠의 폭발적인 증가입니다. 우리가 소비할 수 있는 콘텐츠의 양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많아졌고, 그것을 소비하는 공간 역시 다양해졌습니다. 릴스, 틱톡, 유튜브 쇼츠, 롱폼 영상, 커뮤니티, SNS까지. 이제 우리는 마음만 먹으면 하루 종일 내가 좋아하는 것만 보며 시간을 보낼 수 있습니다.
참 좋은 일입니다. 실제로도 그렇습니다.
저 역시 그런 시간을 자주 보냅니다. 여기저기를 둘러보면 내가 보고 싶은 것들이 나오고, 내가 듣고 싶은 이야기를 해주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예전이라면 찾기 어려웠을 마이너한 취향과 관심사일지라도, 이제는 손쉽게 눈앞에 도착합니다.
하지만 바로 그 지점에서 우리는 한 가지 착각에 빠지곤 합니다. 내가 볼 수 있는 것이 늘어났으니, 내가 보는 세계도 넓어졌다는 착각입니다.
그러나 현실은 꼭 그렇지 않습니다.
분명 우리가 소비할 수 있는 것들은 늘어났습니다. 관련된 콘텐츠도 많아졌고, 같은 취미를 향유하는 사람들을 만날 기회도 늘어났습니다. 이야기할 공간도 많아졌고, 나와 비슷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을 찾는 일도 쉬워졌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동시에, 내가 소비하지 않는 것들에 시간을 내야 할 이유가 줄어들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내가 관심 없는 이야기, 불편한 이야기, 나와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는 굳이 보지 않아도 되는 것이 되었습니다. 더 정확히 말하면, 내가 보고 싶은 것만 보기에도 바쁜 시대가 찾아왔습니다.
흔히 알고리즘의 파편화라고도 설명되는 그 이야기입니다.
그래요. 우리가 만지는 코끼리는 분명 더 거대해졌습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 거대한 코끼리 앞에서 우리의 손끝에 닿는 것은 점점 더 작아지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것이 무슨 문제가 될까요. 내가 좋아하는 것만 보고 듣는 것이 무슨 문제입니까. 어차피 취미생활이고, 스트레스를 푸는 행위인데 그렇게 해도 괜찮은 것 아닌가요.
맞습니다. 틀린 말은 아닙니다. 실제로 저 역시 관심 없는 이야기나 불쾌한 소식들을 마주하면, 조심스럽게 관심 없음 버튼에 손이 가곤 합니다.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을 즐겁게 하는 것에 더 오래 머물고 싶어 하니까요.
문제는, 나와 다른 이야기들이 파편화된 알고리즘을 뚫고 나에게 도달했을 때 생기곤 합니다. 우리는 보고 싶은 것을 보고, 듣고 싶은 것을 들을 수 있습니다. 즐겁고, 행복한 시간입니다. 끝없이 콘텐츠가 쏟아지고, 같은 주제를 좋아하는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습니다. 그러다 보면 자연스럽게 그 주제에 대한 소속감이 생기고, 그 안에서 통용되는 언어와 감정, 그리고 도덕의 영향을 받게 됩니다.
처음에는 단순한 취향이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 취향이 반복되고, 비슷한 사람들과 공유되고, 비슷한 말들 속에서 강화되다 보면 어느 순간 그것은 취향을 넘어 하나의 작은 세계가 됩니다. 내가 좋아하는 콘텐츠와 사람들, 내가 익숙하게 받아들이는 감정과 판단들. 그렇게 우리는 내가 좋아하는 세계 안에 조금씩 갇히게 됩니다.
물론 그 자체가 나쁜 일은 아닙니다. 좋아하는 것을 좋아하고, 그 안에서 위로를 얻고, 나와 비슷한 사람들을 만나는 일은 분명 좋은 일입니다. 그러나 그 세계가 너무 단단해졌을 때, 바깥에서 들어오는 의견은 단순히 다른 의견으로 느껴지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것은 내 취향을 흔드는 말이고, 내 세계를 공격하는 말이며, 더 나아가서는 침입처럼 느껴집니다.
당신이 코끼리의 다리를 만지고 있다면, 코끼리를 향해 뱀처럼 생겼다고 말하는 사람을 이해하기는 어렵습니다. 더구나 내 옆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코끼리는 기둥 같다고 말하고 있다면 더욱 그렇습니다.
그 사람은 틀린 말을 하는 사람을 넘어, 이상한 사람, 멍청한 사람, 혹은 우리를 공격하는 사람처럼 보일지도 모릅니다.
그렇게 우리는 장님이 됩니다. 보지 못해서 장님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만진 일부를 전체라고 믿기 시작할 때, 우리는 장님이 됩니다.
그렇다면 보지 않으면 그만 아닌가요. 신경을 끄면 되는 것 아닌가요.
하지만 불행하게도 인터넷이라는 거대한 세계는, 그것조차 쉽게 허락하지 않습니다. 분노와 갈등이라는 부정적인 감정들은 제3자의 눈에는 상당히 흥미로운 구경거리가 되기 때문입니다.
서로를 악이라고 규정하고 싸우는 모습은 누군가에게는 커다란 투기장을 보는 것과 같습니다. 어떤 사람은 악역으로 지목된 이를 향해 비난을 쏟아내며 도덕적 우월감을 느끼고, 어떤 사람은 싸움이 더 커지기를 바라며 양쪽의 가면을 번갈아 쓰고 서로를 헐뜯습니다. 또 누군가는 그 싸움을 다른 공간으로 퍼 나르며 호응을 얻어냅니다. 그 사이에서 플랫폼은 늘어가는 트래픽을 조용히 바라보고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제가 이 글을 쓰기 시작한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저는 이런 인터넷의 모습을 보며 위화감을 느꼈습니다.
정확히는, 누군가의 분노와 갈등이 인터넷 안에서 너무 쉽게 주목받고, 너무 쉽게 보상받는 것에 대한 위화감이었습니다. 인간의 본성은 정말 타인의 분노와 갈등을 오락거리로 향유하며 즐기는 것일까. 그런 의문이 들 정도였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 현상을 조금 더 파고들어 보기로 했습니다. 왜 사람들은 이런 부정적인 감정에 열광하고, 동참하며, 함께 감정을 쏟아내는가. 그리고 왜 우리는, 내 세계 밖의 사람을 한 명의 인간으로 바라보지 못하게 되는가.
이유는 생각보다 단순한 데 있습니다. 오프라인과 달리, 인터넷에서 우리는 상대를 한 명의 인간으로 마주하기 어렵습니다. 그 사람의 표정, 말의 맥락, 태도 등은 대부분 지워지고, 우리 앞에 도착하는 것은 보통 이미 가공된 파편들뿐입니다. 캡처 한 장, 짧은 영상, 누군가의 요약, 그리고 그 위에 덧씌워진 해석들 말입니다.
우리는 그 파편들을 통해 상대를 판단합니다. 물론 그것이 완전히 잘못된 일은 아닐지도 모릅니다. 때로는 그 파편 안에도 분명한 잘못이 담겨 있을 수 있으니까요. 그러나 문제는, 그 조각이 어느 순간 그 사람 전체를 설명하는 것처럼 보일 때가 있다는 것입니다. 이 과정에서 상대는 인간이라는 본질을 잃고, 하나의 사건이자 상징으로 바뀌어버립니다.
그 사람의 실수는 한 집단 전체에 대한 혐오로 이어지고, 그의 무지는 그 집단에 대한 편견을 만들어냅니다. 한 사람의 문제가, 그가 속해 있다고 여겨지는 세계 전체의 문제로 인식되는 순간, 인간성은 지워집니다.
그리고 그때부터 그 사람의 실수는 마치 유리장 안의 표본처럼 적나라하게 전시됩니다. 사람들은 그것을 구경하고, 평가하고, 손가락질하며, 때로는 서로에게 보여주기 위해 더 먼 곳으로 옮겨놓습니다.
그래요. 그 순간, 우리가 하는 공격은 더 이상 공격으로 느껴지지 않습니다. 응징이자, 정의의 구현으로 바뀌어버립니다.
적어도 내 세계 속에서는요.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인터넷 세상을 살아가야 할까요. 남을 비난하지 말고, 우리를 향한 공격도 무시한 채, 그저 하하호호 웃으며 좋은 게 좋은 것이라는 태도로 살아가야 하는 걸까요.
그렇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인터넷은 그 어떤 공간보다도 비판적 사고가 필요한 곳입니다. 인터넷이라는 유리장 안에 전시된 사람들과 정보들은, 이미 누군가에 의해 잔뜩 가공된 것들이 많습니다. 캡처는 잘려 있고, 영상은 편집되어 있으며, 요약에는 누군가의 감정과 의도가 섞여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그것들을 완전히 부정해서도 안 되고, 완전히 믿어서도 안 됩니다.
그 사람 뒤에는 무엇이 있었는지. 그 사건의 내막은 어떤지. 저 표본 뒤에 숨겨진 이야기는 무엇인지.
적어도 한 번쯤은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내가 지금 만지고 있는 것이 코끼리의 전부가 아니라, 누군가가 내 앞에 가져다 놓은 작은 파편일지도 모른다는 의심을 가져야 합니다. 판단은 그 다음에 해도 늦지 않습니다.
물론 그런 태도는 때때로 비겁해 보일지도 모릅니다.
누군가에게는 두둔하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고, 더 나아가 전시된 표본과 다르지 않은 사람으로 취급될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우리는 두려움 때문에, 잠시 비판적 사고를 접어두고 함께 돌을 던지고 싶어질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묻고 싶습니다. 그것이 정말 즐거울까요. 그렇게 돌을 던지는 동안, 우리는 정말 편안해질까요.
적어도 많은 순간, 인터넷은 우리가 쉬기 위해 들어오는 공간이기도 합니다. 하루의 피로를 풀고, 좋아하는 것을 보고,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 들어오는 곳입니다. 그런데 그곳에서 누군가를 향해 돌을 던지는 일이 반복된다면, 그리고 그 돌이 닿는 곳에 한 명의 인간이 있음을 알게 된다면, 우리는 여전히 그것을 즐거움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요.
저는 인간의 본성이 그렇게까지 악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정확히는, 그렇게 믿고 싶지 않습니다.
우리는 장님으로 태어나지 않았습니다. 어쩌면 애초에 장님이었던 적도 없을지 모릅니다. 다만 작은 파편들을 전체라고 믿는 일에 익숙해졌을 뿐입니다.
어쩌면 우리가 두려워해야 할 것은, 인터넷이 우리를 장님으로 만들었다는 사실보다도, 우리가 장님이 된 채로 누군가를 너무 확신에 차서 심판하고 있다는 사실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니 적어도 기억해야 합니다. 내가 만진 것이 전부가 아닐 수 있다는 것을. 내가 본 파편이 한 사람의 전부는 아니라는 것을. 내가 속한 세계의 분노가 언제나 선이고, 정당한 것이 아닐 수 있음을.
코끼리는 코만으로도, 다리만으로도, 귀만으로도 설명되지 않습니다. 사람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그 사실을 잊지 않을 때, 비로소 인터넷이라는 거대한 세계 속에서 조금은 더 자유롭게 유영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세 줄은 읽었다 읽고 싶어지지 않아 뻔해 보이걸랑 뭐 고전 인용이라든지 기대는 데도 없이 평범한 단어들 나열은 안 읽게 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