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성 재고”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물건이 생산된 뒤 제때 쓰이거나 팔리지 않으면, 생산자는 보관비와 유지보수 비용, 그리고 기회비용을 떠안게 된다. 팔리지 않는 물건은 창고를 차지하고, 관리 비용을 발생시키며, 시간이 지날수록 가치가 떨어진다.


그런데 사람에게서 발생하는 ‘악성 재고’의 문제는 물건과는 차원이 다르다.


사람은 폐기조차 쉽지 않기 때문이다.


효율적으로 사람을 폐기하기 위해 만들어진 아우슈비츠가 얼마나 많은 국제적 공분을 불러왔는지를 생각해보면, 사람을 폐기한다는 일이 결코 물건을 버리는 것처럼 간단한 일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또한 사람은 물건처럼 가만히 창고에 들어가 있지도 않는다.


경쟁에서 실패한 사람도 살아남아야 한다. 살아남아야 하기 때문에, 그들은 때로 사회적 원칙을 어기면서까지 생존에 매달린다. 사기, 도박, 절도, 폭력, 살인. 형태는 다르지만, 모두 생존과 절망이 뒤엉킨 결과일 수 있다.


일자리를 잃은 사람들이 곧바로 마약을 생산하는 새로운 일을 갖게 될 수도 있다. 물론 이것은 정당화될 수 없는 행위다. 하지만 사회가 사람을 아무 쓸모없는 잉여로 밀어낼 때, 그 빈자리에 무엇이 들어오는지 우리는 냉정하게 봐야 한다.


사람 하나가 사회의 ‘악성 재고’가 되면, 사회적으로는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의 처리 비용과 유지 비용이 발생한다. 복지 비용, 치안 비용, 교정 비용, 의료 비용, 사회적 불안, 그리고 신뢰의 붕괴가 뒤따른다.


“기계화”와 “인공지능”이 사람의 일자리를 대체한다고 하더라도, 그로 인해 밀려난 사람들은 단순히 장부에서 지워지는 숫자가 아니다. 그들이 잃는 것은 임금만이 아니다. 사회에 대한 신뢰, 자기 삶에 대한 의미, 공동체에 소속되어 있다는 감각도 함께 잃는다.


그 손실은 기계가 만들어낸 생산성 향상을 뛰어넘는 사회적 비용으로 되돌아올 수 있다.


그러나 과거의 국가들은 이 사실을 자주 외면했다. 자유주의 진영은 경제적 효율과 성장이라는 이름으로, 공산주의 진영은 국가적 목표와 집단적 이상이라는 이름으로, 수많은 인간을 하나의 소모품처럼 다루었다. 가장 기초적인 사회적 원칙, 즉 인간은 물건이 아니라는 사실을 너무 쉽게 잊었다.


실패한 사람을 물건의 악성 재고처럼 여길 때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우리는 이미 역사를 통해 여러 번 보았다.


지금 사람들은 산업혁명의 러다이트 운동을 비웃으며, 21세기의 기계화와 인공지능을 열심히 외치고 있다. 그러나 그 당시 노동자들이 왜 그렇게 분노했는지, 왜 서로 연대하고 기계를 부수기 시작했는지에 대해서는 깊이 생각하지 않는다.


또한 과거에 비해 수백 배 풍족해진 자원을 가진 오늘날의 세계가 왜 전환기마다 사람을 버리지 않고 함께 가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충분히 말하지 않는다.


책임 없는 자유와 무한한 성장이라는 행복한 꿈에서 깨어나고 나면, 우리는 결국 불편한 현실과 마주하게 된다. 그 현실은 이렇게 묻는다.


버려진 사람들은 어디로 가는가.


일자리를 잃은 사람들은 무엇으로 살아가는가.


존엄을 잃은 사람들은 사회를 어떻게 바라보게 되는가.


그리고 이 질문을 외면한 국가는 언젠가 더 큰 비용을 치르게 된다.


그러니 혹시라도 당신이 괴물의 입속에서 벗어나, 도착하는 낙원이 어디이든 간에, 한 가지는 잊지 않기를 바란다.


사람을 위해 살고, 사람을 위해 일하고, 사람에 대해 생각하고, 사람을 존중하기를 바란다.


그것이 당신이 가질 수 있는 가장 큰 자원이자 자산일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