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은 지식을 얻는 것에는 매우 효율적인 수단이다. 하지만 자기 목표가 여러 나라의 수도를 암기해서 자랑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의 인격을 완성하고 좋은 가치관, 태도를 내면화하거나 사유가 성숙해지거나 삶에서 자기만에 노하우를 얻는 것이라면 책만으로 그것을 이룰 수 있다는 것은 큰 착각이다.
1. 인격 완성과 가치관, 태도 내면화의 수단으로서의 책이 과대평가 된 이유
인격을 완성한다는 것은 자기 몸과 마음이 바른 언행을 할 수 있도록 좋은 태도와 마음가짐을 습관화하는 것이다. 누구나 좋은 가치관이 무엇인지는 직감적으로 알고 있지만, 그것을 실행하는 것과 아는 것은 다르다. 예를 들어, 내가 화를 무분별하게 내는 것이 좋지 않다는 것을 알아도 내가 화내는 것을 실제로 한 번 참아보는 경험을 하지 못하면 의미가 없다. 하지만 내가 실제로 화를 한 번 참으면, 뇌의 신경망의 회로가 화를 더 잘 참을 수 있도록 재배열돼서 이 태도가 몸에 밴다. 결국 인격 완성은 실행을 통해 좋은 습관이 몸과 마음에 배는 것이다.
가치관을 내면화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가치관은 어떠한 대상이나 현상을 바라보는 나의 가치 판단과 관점이다. 그리고 가치 판단과 관점은 단순히 지식을 통해서만 생기는 것이 아니라, 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 혹은 이 사람을 진정으로 사랑하고 배려하기 위해서, <나의 경험>을 통해 <내가 어떠한 언행을 해야하고> 그것을 <피드백>하는 과정 속에서 형성되는 것이다. "사랑이 위대하다"라는 가치관은, 연인과의 애착을 가진 경험과 연인을 위해 헌신하는 과정 속에서 할 수 있는 말이지, 감성적인 연애드라마 보고 눈물 흘리는 와중에 내 남편은 착취하면서 할 수 있는 말이 아니다.
태도 역시 마찬가지다. 언제부턴가 유튜브에서 무슨 일을 하든 메타인지를 통한 피드백이 중요한 태도라는 내용이 쏟아져나왔다. 그러나 그대가 메타인지가 중요하다는 유튜브만 본다고 메타인지를 할 수 없는 이유는
a. 실제로 메타인지하기 위해 끊임없이 분석적 사고를 해서 논리적 사유를 키우지 못했다.
b. 실패를 자기합리화하지 않고 명확히 바라보기 위해 괴로워하고, 그럼에도 용기를 가지고 실패를 직면함으로써 얻은 성숙한 마음을 갖지 못했다.
c. 메타인지하고 피드백하는 과정을 기록하고 그것을 실제로 습관화해서 삶 속에서 실행하지 못했다.
그렇다. "메타인지 해서 피드백해라"는 것을 글자떼기, 유튜브로 안다고 해봐야, 목표를 위해 끊임없이 사유하고, 실패하고, 결과를 피드백하는 <시행착오의 과정>이 없기 때문에 그대의 것이 아닌 것이다. 다른 말로 글자떼기로 아무리 많이 명언, 노하우, 지혜들을 '암기'해봤자, 삶에서의 시행착오를 통한 태도의 내면화가 없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책을 통해 인격을 완성할 수 있다는 것이 아니라 진실은 오히려 반대에 가깝다. 정확히 말하면 인격 완성과 가치관, 태도의 내면화는
a. 실제로 사유하는 방식
b. 실제로 올바른 관점으로 바라보고 감정을 다룬 경험을 통한 성숙한 마음
c. 습관화된 태도
를 통해 나오는 것이고, 책은 그러한 시행착오에 과정 중에서 나온 부산물에 더 가까운 것이다. 만약 책으로 내 인생이 변했다고 하는 사람이 있으면 그것은, 원래부터 습관화하고 있었던 암묵지를 의식화한 것에 가깝다. 그렇기에 아무런 경험도 안 하고 책만 읽은 사람보다, 무언가를 진정으로 열심히 노력하고 누군가를 진정으로 사랑해본 사람이 더 큰 성장을 하는 것이다.
2. 사유 성숙의 수단으로서의 책이 과대평가 된 이유
책을 많이 읽으면 정보를 조직화해서 정리해서 받아들이는 능력은 키워지지만, 자기만의 통찰로 무언가를 바라보는 새로운 관점을 구축하는 능력이 키워지는 것은 아니다. 자기만의 관점으로 무언가를 정리하려면
a. 개념을 엄밀히 정의하고
b. 단어가 전체 문장의 맥락 속에 합치되도록 표현을 정제해서
c. 최대한 많은 현상들을 설명할 수 있는 하나의 이론적 토대를 만들고
d. 자기의 핵심 주장을 정당화하기 위해, 다뤄야 하는 하위 주제들을 논리적 의존 관계에 따라 배치해서, 탄탄한 구조로 정리하는 것이다.
이 과정은 단순히 어떠한 논증문이 논리적으로 헛점이 있는지 파악하는 능력이 아니라, 자기가 가진 경험, 지식, 관점을 정리해서 하나의 체계로 설명하는 이론을 구축하는 능력이다. 이 과정은 자신의 정보를 체계적으로 조직하는 능력과, 자기가 가진 정보를 모두 포괄해서 설명할 수 있는 원리를 고안하는 능력은 책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글쓰기로 얻을 수 있는 것이다.
책으로 연습할 수 있는 것은, 정보가 형식 논리에 부합하는지 판단하는 능력과 정보를 정리해서 받아들이는 능력 뿐이다. 하지만 우리가 "이 사람이 사유가 성숙하다"라고 판단할 때는, 남의 이론을 달달 외워서 말해줄 때가 아니라 <어떠한 대상, 현상을 개념화하고 설명하는 자기만의 관점>이 심도깊을 때다. 그러나 <어떠한 대상, 현상을 개념화하고 설명하는 자기만의 관점>은 <자기가 그동안 구축한 이론>으로부터 파생되는 것이다. 한 가지 분야에 대해서 정리된 나의 생각이 다른 것으로 연결돼서 나만의 통찰이 나오는 것이지, 남의 이론을 외워봤자 그것을 어떻게 적용시킬지 감도 못 잡는다. 통찰은 보통 정보량에서 나오지 않고 스스로 개념들을 연결시킬 때 나오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독자들이 책을 읽어봤자 그 내용을 3일 이내에 까먹는 이유는, 그것이 내가 나의 사유와 경험을 통해 여러 곳에서 적용함으로써 나온 통찰이 아니라 암기한 것이기 때문이다. 여러 곳에 적용하고 오래 기억하는 경우가 있다면 이 경우에도 위에서 말했듯 원래부터 습관화하고 있었던 암묵지를 의식화한 것에 가깝다.
물론 책에 내용을 자기만의 관점으로 재해석해서 글을 쓴 경우에는 그것이 나의 것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이 경우에도 본질은 책이 아니라 글쓰기다. 하지만 대부분의 독자들은 책을 읽고 자기 관점으로 정리하긴 커녕, 새로운 지식을 깨달았다며 뿌듯해하고 아무것도 안 한다 3일만에 까먹는다.
3. 노하우를 얻는 수단으로서의 책이 과대평가 된 이유
나는 지식과 노하우, 지혜를 구분한다. 예시로 설명하자면, 지식은 <과학 법칙>으로 노하우, 지혜, 태도는 <그 과학법칙을 구현한 아이디어로 새제품을 만드는 것>으로 비유할 수 있다. 즉, 노하우, 지혜, 태도는 어떠한 맥락 속에서 <지식을 활용해 삶 속에서 적용할 수 있는 능력>을 의미한다. 우리한테 지식이라는 것은 그 자체만으로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지식이 삶 속에서 활용되고 적용이 되어서 내가 어떠한 성과를 얻었을 때 의미가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노하우, 지혜, 태도는 어떤 맥락 속에서 적용되는 것인가? 그것은 나의 성격, 나의 능력, 나의 가치관과 타인과 사회적 관습, 사회네트워크라는 맥락 속에서 적용되는 것이다. 그리고 책이라는 것은 한 사람만의 고유한 성격, 능력, 가치관이라는 관점에서 어떤 대상이나 현상을 체계화해서 정리한 것이다.
책으로 어떠한 '객관적인 데이터'를 얻는 것은 가능할지 모른다. 그러나 데이터를 연결해서 인사이트를 제시하는 것은 저자의 관점으로부터 파생된 것이다. 그렇게 데이터들을 자신의 성격과 자신의 관점으로 해석한 사회적인 맥락을 통해 개연성있고 설명력있는 하나의 체계를 만든 것이 그 책이 담은 노하우, 지혜, 태도인 것이다.
데이터를 해석하는 방식은 고정된 것이 아니다. 똑같은 데이터라도 A라는 통계 자료를 쓰는지 B라는 통계자료를 쓰는지에 따라 해석이 정반대로 갈릴 수 있다. 어렵게 생각하지 말고, 이 세상에 특정 분야에서 성공했다는 사람들이 하는 말이 다 똑같은지 생각해보자. 비교적 통일된 무언가가 있다고한들 세부적으로는 다 각양각색이다. 그러나 내가 그 어떤 경험도 하지 않고 특정 분야에서 성공한 사람의 말이 나한테 그대로 적용될 지 어떻게 아는가? 나만의 노하우를 통해 나의 체계를 만들고 데이터를 경험을 토대로 해석하지 않은 이상, 그러한 '노하우'들은 아무리 많이 본다한들 자기 망상만 제조할 뿐이다. 즉 나는 그들이 제시한 <데이터를 연결해서 해석하는 방식>이 나의 관점에서 똑같이 적용될 수 있는 지는 경험 없이는 죽었다깨어나도 알 수 없다는 것이다.
혹자는 그래도 나한테 어느정도 도움될 수 있는 부분은 있을 수 있으니 책이 도움될 수 있다는 반론을 제기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아무 정보 없이 시행착오 100번하는 것보다 책을 읽고 시행착오 20번하는 것이 나은 건 맞다. 하지만 그럼에도 책과 타인은 노하우를 위한 보조장치일 뿐이고 경험이 없으면 그것들은 의미가 없다. 첫째로 나는 무엇이 도움되고 무엇이 틀린지 정확히 알 수 없다. 그 어떤 분야든 설사 90프로가 나한테 맞는 노하우라해도, 나머지 10퍼센트가 어디서 틀린 지 전혀 알 수 없다면 나는 이 지식을 전혀 신뢰할 수 없다. 세상에는 세부적인 디테일 하나 틀려서 모든 것을 망치는 경우가 허다하기 때문이다. 오직 경험을 토대로 자기의 체계를 세운 사람만이 자기가 무엇을 알고 무엇을 모르는 지 책으로도 메타인지가 가능하다. 둘째로 책이 평균적인 노하우를 담고 있더라도, 나는 평균적인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평균 키, 몸무게가 173에 70이라도 정확히 여기에 부합하는 사람은 얼마 없다. 마찬가지다. 어떠한 가르침이 평균적으로 맞다고 한들, 내가 모든 것에서 평균적일 리가 없기에 분명 나한테 어긋나는 노하우가 있다. 결국 나는 다시 아무것도 알 수 없다는 결론이 나온다.
이는 인생의 태도에 관한 문제도 마찬가지다. 그 태도가 아무리 보편적으로 맞는 태도라고 해도, 내가 모든 것에서 보편적인 사람이 아니기에 나는 결국 내 노하우와 경험 없이는 그 어떤 것도 확신할 수 없다. 내가 무언가를 책을 통해 깨달았다 생각이 든다면, 이 경우에도 마찬가지로 그것은 정확히는 새로운 노하우를 배웠다기보다 원래부터 습관화하고 있었던 암묵지를 의식화한 것에 가깝다. 생각해보자. 내가 아애 모르는 정보를 책에서 봐봐야 그 경험이 맞는지 틀린 지도 모르는데 내가 어떻게 '깨달을' 수 있는가? 내가 무의식적으로 습득한 암묵지를 책이 태도와 노하우라는 형식으로 의식화해줬을 때 내가 '깨달은' 것처럼 보이는 것이다.
정리하자면 책은 내가 경험하지 않은 분야의 노하우는 그 어떠한 쓸모도 없고, 설사 그 노하우를 책을 통해 얻었다고 생각이 들어도 그것은 원래 습관화했던 암묵지를 의식화하는 것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이는 다시 말하면, 책은 노하우를 얻게 하는 것이 아니라, 실무 경험을 통해 자기만의 통찰이 구축되어 있을 때 보조 수단으로 쓸 수 있다는 것이다. 세상에는 자기 분야에서 성공한 사람들이 수도 없이 많지만, 그들이 모두 책을 쓰는 것도 아니고, 책을 쓰지 않더라도 축척된 노하우로 잘만 운영한다. 결국 책은 인간을 획기적으로 변화시키는 무협서가 아니라, 시행착오 과정 속에서 의미가 확장되는 증폭기다.
4. '성공의 만능열쇠'로 신격화된 독서의 거품을 꺼뜨려야하는 이유
책을 읽는 지적 에너지와 직접 경험적 통찰을 낳는 '실천과 생산'은 쓰이는 에너지가 다르다. 어떤 사람은 고통스러운 실행의 에너지를 회피하고 안락한 의자에 앉아 책만 읽고 "나는 오늘 생산적으로 살았다"는 착각에 빠진다. 특히 자기계발서를 읽으면 마치 내가 성장한 것 같은 도파민이 나온다. 하지만 이는 뇌가 실행을 건너뛰고 상상만으로 시뮬레이션한 생긴 가짜 보상일 뿐, 실제로 몸을 통해 습관이 바뀐 것은 아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이러한 '지적 대리만족'에서 나온 도파민을 성취감으로 착각하게 된다. 왜냐하면 독서는 사회적으로 '수준 높은 취미'라 과대포장되었기 때문이다. 유튜브나 게임을 하면 "내가 이렇게 살면 안 되겠구나."라며 죄책감을 느끼지만, 책을 읽으면 설령 내가 책인 읽고 아무런 실천도 하지 않더라도 "나는 생산적인 시간을 보냈다"는 면죄부를 얻는다. 결국 삶은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지만, 나는 수준 높은 사람이라는 착각과 자기방어기제만 강해진다. 책이 성공의 만능열쇠였다면, 책만 읽으면서 인생은 망한 사람이 없어야하지만, 현실에서는 심상치 않게 나온다. 그렇기에 내 글이 다소 극단적인 면이 있더라도, 균형잡힌 논의를 위해 이런 관점도 대중적으로 공유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5. 결론
책을 통해 자기의 인격을 완성하고 좋은 가치관, 태도를 내면화하거나 사유가 성숙해지거나 삶에서 자기만에 노하우를 얻는 것은 원인과 결과가 전도된 것이다. 시행착오를 통해 노하우, 지혜, 태도를 습득한 사람들이 책을 쓸 수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해 책이라는 것은 그 사람의 관점에서 특정 분야를 사회적 맥락에 맞게 해석하고 노하우로 재가공하는 과정 속에서 나온 부산물일뿐, 무협서의 비법서같이 성공할 수 있는 비법을 담은 것이 아닌 것이다. 그렇기에 책의 가치는 본래보다 훨씬 과대평가된 것이고, 앞으로 사회에서 실행 이전에 책만 보면서 자기는 수준 높은 취미를 향유하고 있다 착각하는 풍조는 지양되어야할 것이다.
시행착오 100번할 걸 20번으로 대폭 줄여주고 개인이 경험할 수 있는 시간적 공간적 한계가 있는 유한한 인생이면 비록 수신의 목적이라도 책이 쓸모가 없다고 하는 건 참 그렇지. 나아가 수신은 할 수 있을지라도 제가와 치국 평천하에는 역할을 하기 어렵겠지. 제가를 결혼 출산으로 가족을 구성한다는 의미로, 치국을 일로, 평천하를 세계를 평화롭게 한다는 의미로
보았을 때 앞으로도 책은 영향이 지대한 수단이 될 것. 본문의 형식논리를 얼추나마 갖추는 것도 못해서 의사결정자가 되기 힘든 사람이 많아지는 사회가 앞으로는 더 다가올 것이니까. 안그래도 독서를 하지 않는데 독서 무용론 펼치는 건 사태만 더 악화시키는 주장이다.
그리고 암묵지를 책에서 발견한 것일뿐이라는 말도 역시 딱 수신의 측면에서 적절해보인다. 자신이 미리 경험한 것을 책에서 봤다는 것이라서 독서 무용론의 논지전개에 포함되는 것 같고. 그러나 위같은 황금률적이고 인적종속적인 모습을 버려야 독해가 되지, 갖추고 있으면 우리나라에서 줄곧하는 관계에 의한 사람 규정을 심화시킬뿐임. 저 사람과 나 사이 관계가 어떠하니
이를 바탕으로 예의 내용을 세우는 것이면 그런 글쓰기에서 시작하는 개념수립마저도 역시 인적종속적일 수밖에 없을 것이고 이렇게 만들어진 엄밀한 개념정의는 결국 나밖에 없고 내가 인간척도라는 표현인 것이지. 이건 자신뿐만 아니라 상대도 그래야 단순한 측면에서 저 사람과 내가 똑같아지기 때문에 인간척도설이나 황금률적으로 살아도 문제가 없는 것이라고 보여짐.
그래서 난 이런 말들은 결국 사회에 떼가 묻어가는 사람을 표현한 것이라고 보고 있다. 인적종속적이라 경험하지 않으면 써줘도 읽지 못하므로 경험 많은 나이먹은 사람이 더 나은, 그런 연공체계를 구축하게되는 것이 본문의 방법임.
이런 사회에서 벗어낫는데 왜 이것만 보는지 알지 못하겠다. 차라리 둘 다 하자고 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