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한 사람은 단순히 가진 것이 적은 사람이 아니다. 가난한 사람은 자신이 원하는 것보다 가진 것이 적은 사람이다. 반대로 부유한 사람은 단순히 가진 것이 많은 사람이 아니라, 자신이 원하는 것보다 가진 것이 많은 사람이다. 그러므로 월 200만 원을 벌더라도 부유할 수 있고, 월 1000만 원을 벌더라도 가난할 수 있다. 어떤 성직자는 월 200만 원의 소득으로도 신께 감사하며 살아간다. 반면 어떤 사람은 월 500만 원을 벌면서도 자신이 최소한의 인간다운 삶조차 누리지 못한다고 느낀다. 이 차이는 단순히 소득의 차이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자신이 원하는 것의 크기와, 자신이 가진 것을 어떻게 받아들이는가의 차이에서 비롯된다. 무항산이면 무항심이라는 말은 맞다. 일정한 삶의 기반이 없으면 마음의 평정을 유지하기 어렵다. 그러나 항심을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항산의 크기는 사람마다 다르다. 누군가에게는 월 200만 원이면 충분할 수 있지만, 누군가에게는 월 1000만 원도 부족할 수 있다. 결국 문제는 돈의 절대량만이 아니라, 자기 욕망의 크기가 어디까지 커져 있는가에 있다. 원하는 것을 줄이고 작은 것에 만족하는 삶은 한국인들의 눈에는 비참해 보일지 모른다. 한국 사회는 더 많이 벌고, 더 좋은 집에 살고, 더 좋은 차를 타고, 더 그럴듯한 소비를 하는 삶을 성공이라고 가르쳐 왔다. 그래서 욕망을 줄이는 삶은 패배나 체념처럼 보이기 쉽다. 하지만 나는 오히려 원하는 것을 줄이고 작은 것에 만족하는 일이야말로 궁극적으로 행복에 다가가는 길이라고 생각한다. 행복은 반드시 더 많은 것을 얻어야만 찾아오는 것이 아니다. 때로는 이미 가진 것의 가치를 알아차리고, 당연하게 여기던 것들 속에서 만족을 발견할 때 찾아온다. 500년 전만 하더라도 설탕은 평생 한 번 맛보는 것이 소원일 정도로 귀한 물건이었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하루만 아르바이트를 해도 설탕 몇 포대를 살 수 있다. 과거의 왕과 귀족들도 누리지 못했던 것들을 지금의 평범한 사람들은 너무나 쉽게 누리고 있다. 그럼에도 우리는 자신이 얼마나 많은 것을 가지고 있는지 잘 느끼지 못한다. 이미 가진 것은 금세 당연해지고, 아직 갖지 못한 것만 크게 보이기 때문이다. 행복은 쟁취하는 것이 아니라 발견하는 것에 가깝다. 멀리 있는 거창한 무언가를 손에 넣어야만 행복해지는 것이 아니라, 이미 내 삶 안에 있는 것들의 가치를 알아차릴 때 행복은 비로소 모습을 드러낸다. 결국 행복은 외부의 조건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바라보는 우리의 마음 안에 있다. 그러므로 진정으로 부유한 사람은 많이 가진 사람이 아니라, 적게 원해도 무너지지 않는 사람이다. 행복은 더 많이 얻는 능력이 아니라, 이미 가진 것을 충분하다고 느낄 수 있는 능력에서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