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사회의 여러 현상을 보다 보면 신기하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불과 한두 세대 전까지만 해도 교사들이 학생을 거의 샌드백처럼 두들겨 패고, 촌지를 받는 문화가 적지 않게 존재했다. 그런데 학생 인권 조례가 등장한 지 10여 년이 지나자 이제는 반대로 교권이 심각하게 침해된다고 한다.
성범죄 문제도 마찬가지다. 과거에는 여성들이 성폭력을 당해도 제대로 신고조차 하지 못하는 일이 많았다. 그런데 오늘날에는 일부 사건에서 성범죄 무고 논란이 크게 부각되고, 남성들 사이에서는 “억울하게 가해자로 몰릴 수 있다”는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출산율도 그렇다. 반세기 전까지만 해도 한국은 세계에서 출산율이 높은 나라 중 하나였다. 그러나 21세기에 들어서는 세계에서 가장 출산율이 낮은 나라가 되었다.
이처럼 한국에서는 사회의 성향이 짧은 시간 안에 극단적으로 뒤바뀌는 일이 자주 일어난다. 변화의 속도가 너무 빠르다 보니, 많은 기성세대가 시대착오적인 사고방식을 갖고 있는 것도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인지 모른다.
그렇다면 원인은 무엇일까?
물론 저출산의 원인이 하나일 수는 없다. 집값, 고용 불안, 교육비, 성별 갈등, 장시간 노동, 수도권 집중, 개인주의의 확산 등 수많은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다. 하지만 나는 그중에서도 매우 중요한 원인 하나가 주류 담론에서 충분히 다뤄지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바로 상호 존중의 부족이다.
한국 사회에는 서로를 있는 그대로 존중하는 문화가 약하다. 그리고 이 상호 존중의 부족은 사회적 신뢰의 결핍으로 이어진다. 나는 저출산 역시 단순히 돈이 없어서 생기는 문제가 아니라, 서로를 믿고 함께 살아갈 수 있다는 감각이 붕괴된 결과라고 본다.
내가 일본을 방문했을 때 느꼈던 것이 하나 있다. 일본에서는 한국에서라면 사회적으로 하찮게 여겨질 만한 직업을 가진 사람도 자기 일에 자부심을 갖고 있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개업 300주년을 기념하는 식당에 간 적이 있었는데, 대대로 가업을 이어온 주인의 자부심은 매우 인상적이었다.
독일을 비롯한 유럽 국가에서도 비슷한 것을 느꼈다. 그곳 사람들은 대도시가 아니어도 자기 출신 지역에 애정과 자부심을 갖는 경우가 많았다. 작은 도시, 작은 마을에도 나름의 역사와 정체성이 있고, 사람들은 그것을 부끄러워하기보다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다.
반면 한국은 어떤가?
한국에서는 사회적으로 인식이 좋지 않은 직업을 가진 사람들조차 스스로 자기 직업을 비하하는 경우가 많다. “너는 이런 일 하지 마라”, “공부 안 하면 저런 일 한다”는 말은 너무나 흔하다. 지방에 사는 사람들 역시 자기가 사는 지역을 스스로 낮춰 부르는 경우가 많다. 가난한 동네에 사는 사람은 자기 동네를 부끄러워하고, 지방 출신은 수도권 사람 앞에서 열등감을 느끼기도 한다.
그런데 이런 태도가 과연 저절로 생겼을까?
나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한국 사회는 오랫동안 사회적으로 ‘못나 보이는’ 사람, 가난한 지역에 사는 사람, 소득이 낮은 직업을 가진 사람을 노골적으로 깔보아 왔다. 그리고 그런 비하에 저항하는 사람들을 유난스럽다거나 피해의식이 있다고 몰아붙였다.
그 결과 사회적으로 낮게 평가받는 직업을 가진 사람들은 자기 일에 자부심을 갖기 어려워졌다. 지방 사람들은 자기 지역을 사랑하기보다 탈출해야 할 곳으로 여기게 되었다. 이것이 쌓이고 쌓여 서비스의 질 저하, 지역 공동체의 붕괴, 수도권 집중, 지방 소멸로 이어졌다고 본다.
내가 맛있는 저녁을 먹고 싶다면 식당 주인에게 충분한 돈을 지불하는 것도 중요하다. 하지만 그 사람이 요리하는 일을 가치 있는 일로 느끼도록 존중하는 것도 중요하다. 심지어 그것은 돈이 들지도 않는다. 존중받는 사람은 자기 일에 자부심을 갖기 쉽고, 자기 일에 자부심을 가진 사람은 더 나은 결과를 만들어낼 가능성이 높다.
교육 문제도 마찬가지다.
성실하고 협동심 있는 학생을 길러내려면, 그들에게 학업에 대한 좋은 동기를 만들어 주어야 한다. 그런데 한국 교육은 오랫동안 학생들에게 배움의 기쁨을 가르치기보다 남을 찍어눌러야 한다는 파괴적 경쟁심을 가르쳤다. 그것마저 통하지 않으면 강압적으로 통제하고, 때로는 체벌로 눌렀다. 학생이 자기 의견을 내는 것은 건방진 일로 여겨졌다.
그러다가 학생 인권이 강조되고 교사가 예전처럼 일방적으로 갑질할 수 없는 상황이 되자, 이번에는 일부 학생과 학부모의 을질에 의해 교권이 침해되는 일이 벌어졌다. 이것은 단순히 학생 인권 조례 하나의 문제가 아니다. 애초에 교사와 학생 사이에 상호 존중의 문화가 없었기 때문에 생긴 문제다.
교사가 학생을 인격체로 존중하고, 학생도 교사를 전문성을 가진 어른으로 존중하는 문화가 있었다면 이런 갈등은 훨씬 줄어들었을 것이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이런 방향으로 문제를 풀기보다, 과거로 돌아가 다시 학생을 강하게 통제해야 한다는 식의 주장이 나오곤 한다. 그렇게 해서 문제가 해결될 리 없다.
어린아이를 인격체로 존중하고 그 의견을 경청해야, 그 아이는 정신적으로 성숙한 사람으로 자랄 수 있다. 지방에 사는 사람을 존중해야, 그들이 자기 지역에 자부심을 가질 수 있다. 여성과 어머니의 역할을 존중해야, 여성들이 출산과 양육을 일방적인 희생으로만 받아들이지 않게 된다. 가장의 역할을 존중해야, 남성 역시 좋은 아버지가 되고자 하는 동기를 가질 수 있다.
청소부, 요리사, 택시기사, 배달 노동자, 공장 노동자를 존중해야 그들이 자기 직업에 직업 정신을 가질 수 있다. 군인을 존중해야 강한 군대가 만들어진다. 객관적인 보상도 중요하지만, 보상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인간은 돈만으로 움직이는 존재가 아니다. 존중과 인정 역시 매우 중요한 동기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어땠는가?
과거 많은 남성들은 돈을 벌어온다는 이유로 가정주부와 어머니의 역할을 낮게 보았다. 오늘날에는 반대로 일부 여성들이 수입이 적다는 이유로 남편의 역할을 낮게 본다. 직업으로, 학벌로, 사는 지역으로, 집값으로 사람을 깔보는 태도는 여전히 흔하다. 심지어 군필자라고 거들먹거리는 남성들조차 정작 현역 군인이나 병사들을 존중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그러면서 어떻게 사기 높은 군대를 기대할 수 있겠는가?
나는 현대 한국의 저출산이 단순히 금전적 이유만으로 발생한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한국의 경제 수준은 세계 평균과 비교하면 분명히 높은 편이다. 그런데도 한국이 세계 최저 수준의 출산율을 기록하는 이유는, 많은 사람들이 가정을 이루는 것을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특히 많은 여성들이 출산과 양육을 인생에서 손해 보는 일로 인식한다. 이것은 단순히 젊은 여성들이 갑자기 이기적으로 변했기 때문이 아니다. 기성세대 여성들이 젊은 세대 여성들에게 “결혼하면 손해 본다”, “아이 낳으면 고생만 한다”, “남자 믿지 마라”는 식의 메시지를 오랫동안 전달해 왔기 때문이다.
그런데 기성세대 여성들이 왜 그런 생각을 갖게 되었는지를 생각해 보면, 과거 기성세대 남성들이 아내와 어머니의 역할을 충분히 존중하지 않았던 영향도 무시할 수 없다. 누군가의 희생을 당연하게 여기면, 그 희생은 다음 세대에서 거부된다. 사람을 존중하지 않는 태도는 결국 부메랑이 되어 사회 전체에 돌아온다.
한국 사회의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한국인들은 자신이 조금만 우위에 있다고 느끼면 쉽게 남을 깔본다. 반대로 열위에 있다고 느끼는 사람은 그것에 저항하기보다, 언젠가 권력 관계가 뒤집히기를 기다린다. 그리고 실제로 권력 관계가 뒤집히면, 과거에 당했던 방식 그대로 남을 깔보며 복수하려 한다.
즉, 한국 사회에는 상호 존중보다 갑질과 을질의 순환이 더 익숙하다.
윗사람은 아랫사람을 존중하지 않고, 아랫사람은 윗사람을 신뢰하지 않는다. 부자는 가난한 사람을 게으르다고 여기고, 가난한 사람은 부자를 적대한다. 수도권 사람은 지방을 낮게 보고, 지방 사람은 자기 지역을 부끄러워한다. 남성은 여성의 역할을 낮게 보고, 여성은 남성의 역할을 낮게 본다. 교사는 학생을 믿지 않고, 학생과 학부모는 교사를 믿지 않는다.
이런 사회에서 결혼과 출산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질 수 있을까?
결혼은 결국 타인과 삶을 공유하는 일이다. 출산은 자기보다 약한 존재를 책임지는 일이다. 그런데 사회 전체에 상호 존중과 신뢰가 부족하다면, 사람들은 타인과 얽히는 것 자체를 위험으로 느낄 수밖에 없다. 결혼은 손해가 되고, 출산은 부담이 되며, 가족은 안식처가 아니라 또 하나의 전쟁터가 된다.
한국의 명품 소비가 높은 것도 이 문제와 무관하지 않다고 본다. 한국 사회에서는 자신이 가진 물건이나 사는 곳, 입는 옷, 타는 차가 남보다 뒤처진다고 느껴지는 순간 불안감이 생긴다. 설사 스스로는 괜찮다고 생각하더라도, 주변에서 끊임없이 비교하고 압박한다. 결국 사람들은 남에게 깔보이지 않기 위해 명품을 산다.
어떤 사람에게 명품은 취향의 소비일 수 있다. 하지만 한국 사회에서 명품은 종종 자기 방어 수단이 된다. 남에게 무시당하지 않기 위한 갑옷 같은 것이다. 이것은 마치 국가가 외부의 위협을 두려워해 군비를 늘리는 것과 비슷하다. 한국인의 명품 소비에는 욕망도 있지만, 동시에 모멸당하지 않으려는 불안도 들어 있다.
이렇게 갑질과 을질이 끊임없이 충돌하는 사회에서 많은 한국인들은 결국 국가가 솔로몬처럼 공정하게 문제를 해결해주기를 기대한다. 하지만 국가가 모든 관계의 문제를 해결해 줄 수는 없다. 사람들 사이의 기본적인 상호 존중이 사라진 사회에서는 아무리 법과 제도를 늘려도 갈등은 계속된다.
사실 처음부터 서로가 존중했다면 필요 없었을 갈등이 너무 많다.
서로 간섭하지 않고 존중한다면, 우위에 있는 사람은 언젠가 열위로 떨어질까 두려워하며 방어적으로 굴 필요가 없다. 열위에 있는 사람도 패배감과 자기혐오에 빠질 필요가 없다. 각자의 자리에서 존중받을 수 있다면, 사람들은 굳이 남을 깎아내리며 자기 가치를 증명하려 하지 않아도 된다.
물론 상호 존중이 저출산 문제를 완벽하게 해결해 주지는 않는다. 저출산의 모든 원인이 상호 존중의 부족이라고 말할 수도 없다. 집값, 노동시장, 교육비, 지역 격차, 성별 갈등, 장시간 노동 같은 문제는 분명히 따로 해결해야 한다.
그러나 나는 한국에 상호 존중과 개인주의가 제대로 정착한다면, 지금보다 상황은 훨씬 나아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사람들은 결혼을 덜 두려워하게 되고, 출산을 일방적인 희생으로만 여기지 않게 되며, 지방과 직업과 가족 안에서 자기 삶을 조금 더 긍정할 수 있게 될 것이다.
한국 사회에 필요한 것은 단순히 더 많은 돈, 더 많은 정책, 더 강한 통제만이 아니다.
서로를 깔보지 않는 태도.
각자의 직업과 지역과 삶의 방식을 존중하는 태도.
그리고 타인을 내 기준으로 줄 세우지 않는 태도.
어쩌면 한국 사회의 가장 큰 결핍은 돈이 아니라 이것일지도 모른다.
굿굿