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유튜브에서 노인 빈곤에 관한 뉴스를 본 적이 있다. 그런데 그 뉴스에 달린 댓글 중 하나가 유독 강렬하게 기억에 남았다. 한국계 미국인 노인의 댓글이었다.


내용은 대략 이랬다. 자신은 평생 열심히 살아서 지금은 연금을 한 달에 1만 달러나 받고, 자식들은 모두 의사나 교수인데, 뉴스에 나오는 노인들은 얼마나 게으르게 살았으면 나이를 먹고도 쪽방에 사느냐는 것이었다.


당연히 댓글창에서는 한바탕 논쟁이 벌어졌다. 호기심이 생긴 나는 그 댓글들을 꽤 오래 읽어보았다. 그 사람을 비판하는 한국 노인들도 많았고, 그 한국계 미국인 노인은 그 댓글 하나하나에 반박했다. 가끔 영어까지 섞어가며 상대를 조롱하기도 했다.


그는 자신의 신상에 대해서도 더 자세히 설명했다. 자신은 SNU, 즉 서울대를 나와 미국에서 석박사를 했고, 엔지니어로 수십 년간 일했으며, 70세가 넘은 지금도 가끔 수만 달러를 받고 회사 일을 도와준다는 내용이었다.


나는 그것이 사실인지 아닌지는 알 수 없었다. 다만 어느 정도는 사실일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했다. 글에서 느껴지는 문체와 사고방식이 젊은 사람이 흉내 낸 것이라고 보기에는 꽤 자연스러웠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가 이해할 수 없었던 점이 몇 가지 있었다.


첫째, 그는 왜 다른 사람의 사정을 잘 알지도 못하면서 함부로 게으르다고 평가하는가?


둘째, 왜 굳이 물어보지도 않은 자기 자랑을 길게 늘어놓는가?


셋째, 외국에서 수십 년을 살았다고 하면서도 사고방식은 어째서 그렇게까지 한국식 서열 의식과 자기 과시에서 벗어나지 못했는가?


그 사람만의 특이한 사례라고 볼 수도 있겠지만, 나는 이것이 한국 사회에서 그리 낯선 모습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한국인들의 댓글 문화에서 자주 보이는 특징 중 하나가 바로 자기 자랑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청년 빈곤이나 실업 문제가 심각하다는 뉴스가 올라오면, 어김없이 이런 식의 댓글이 달린다.


“나는 열심히 공부해서 좋은 대학을 나왔고, 좋은 회사에 취업해서 몇 살에 몇 억을 모았다. 대견한 내 자신을 칭찬한다.”


나는 그런 댓글을 볼 때마다 궁금해진다. 왜 굳이 그런 뉴스에서까지 자기 자랑을 해야 하는 것일까?


물론 자신이 열심히 살아온 것에 대해 자부심을 가지는 것 자체가 나쁘다는 뜻은 아니다. 누구나 자기 삶에 자부심을 가질 수 있다. 문제는 그 자랑이 어떤 맥락에서 나오는가이다. 다른 사람의 불행을 다룬 뉴스에서 “나는 잘했는데 너희는 왜 못했느냐”는 식의 태도를 보이는 것은, 상황이 좋지 못한 사람들에 대한 위로가 아니라 도발에 가깝다.


한국 사회에서는 자랑이라는 행위가 때때로 너무 가볍게 여겨지는 듯하다. 돈을 많이 벌었으면 자랑할 수 있고, 좋은 직장에 들어갔으면 자랑할 수 있고, 자식이 잘되었으면 자랑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과 지위를 자랑하는 것이 뭐가 문제냐고 반문하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동양에서든 서양에서든 겸손이라는 덕목을 괜히 중시해 온 것이 아니다. 나르시시즘에 대한 경계도 괜히 오래전부터 존재했던 것이 아니다. 스스로 자기 자신을 자랑스럽게 여기는 것은 자유다. 그러나 그것을 아무 맥락에서나 드러내는 것은 때때로 타인에게 실례가 될 수 있다. 특히 불행한 사람들 앞에서 자신의 성공을 과시하는 것은 매우 조심해야 할 일이다.


그렇다면 왜 한국에는 이런 식의 자기 과시와 나르시시즘이 유독 자주 보이는 것일까?


나는 그것이 한국 사회에 널리 퍼져 있는 ‘노력의 신화’와 무관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한국에서도 어지간한 사람이 아니라면, 선천적 장애를 가진 사람 앞에서 “건강한 나를 칭찬한다”고 말하지는 않는다. 만약 그런 말을 하는 사람이 있다면 대부분의 사람은 그를 매우 잔인한 사람으로 볼 것이다. 왜냐하면 선천적 장애는 개인의 노력으로 극복하기 어려운 영역이라는 사실을 대다수가 알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재산, 취업, 학벌, 건강 같은 문제에 대해서는 이야기가 달라진다. 많은 한국인들은 이런 것들이 거의 전적으로 개인의 노력에 의해 결정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좋은 대학에 갔거나 좋은 직장에 들어갔거나 돈을 많이 벌었다면, 그것을 자기 노력의 증거로 여긴다. 반대로 그렇지 못한 사람은 충분히 노력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쉽게 판단한다.


물론 노력은 중요하다. 학벌, 직업, 재산, 건강 같은 영역에서 개인의 노력이 큰 영향을 미치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그것들이 오로지 노력만으로 결정되는 것은 아니다. 타고난 조건, 가정환경, 사회적 배경, 건강, 시대적 상황, 우연한 기회와 불운도 매우 큰 영향을 미친다.


더구나 한 사람의 인생 서사는 당사자만이 온전히 알 수 있다. 겉으로 드러난 결과만 보고 “저 사람은 게을렀다”, “저 사람은 노력하지 않았다”고 함부로 판단하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


내가 나이를 아주 많이 먹은 것은 아니지만, 30년 넘게 살면서 느끼는 것이 있다. 인생은 생각보다 쉽게 무너질 수 있다는 것이다.


탄탄대로를 걸을 것 같았던 사람이 순식간에 나락으로 떨어지는 경우가 있다. 예상치 못한 사고를 당해 장애를 얻고 빈곤층이 되는 사람도 있다. 가족 중 한 명이 불치병에 걸려 경제적으로 무너지는 사람도 있다. 성실하게 일하던 사람이 산업재해나 질병, 사업 실패, 사기, 가족 문제로 한순간에 삶의 기반을 잃기도 한다.


그 사람이 평소에 아무리 노력했더라도, 운이 너무 나쁘면 그 노력은 순식간에 무위로 돌아갈 수 있다. 반대로 큰 노력을 하지 않았음에도 좋은 시대와 좋은 환경, 좋은 부모, 좋은 기회를 만나 안정된 삶을 사는 사람도 있다.


청태종의 말처럼, 천자도 하늘이 버리면 외로운 필부가 되고, 필부도 하늘이 도우면 천자가 될 수 있다. 물론 일반적인 삶에서는 노력한 사람이 보상을 받을 가능성이 더 높다. 그것까지 부정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노력한 대로 보상받지 못하는 경우도 분명히 존재한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다른 사람의 삶을 평가할 때 더 조심스러워야 한다.


예전에 한국인들의 비현실적 낙관성에 관한 자료를 본 적이 있다. 한국인들은 다른 나라 사람들에 비해 예기치 못한 불행이 자기에게 닥치지 않을 것이라고 믿는 경향이 강하다는 내용이었다. 쉽게 말해, “나는 괜찮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는 것이다.


하지만 인간의 삶은 수십 년에 걸쳐 이어진다. 그 긴 시간 동안 누구나 큰 불행을 만날 위험이 있다.


예를 들어 99%의 확률로 이기는 게임이 있다고 해보자. 그 게임을 한 판만 한다면 대부분의 사람은 이길 것이다. 열 판을 해도 지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100판을 한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한 판쯤은 질 가능성이 상당히 높아진다.


삶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매일 아침 집을 나설 때마다 아주 낮은 확률의 위험과 마주한다. 자동차 사고를 당할 확률, 갑자기 병에 걸릴 확률, 누군가의 범죄에 휘말릴 확률, 길을 걷다가 예상치 못한 사고를 당할 확률은 모두 낮다. 하지만 인생 전체로 보면 그 낮은 확률의 시행이 수없이 반복된다.


대부분의 사람은 그런 불운을 피하며 살아간다. 그러나 누군가는 반드시 그 낮은 확률의 불행을 맞는다. 그리고 우리는 그런 사람들을 뉴스에서 접한다.


문제는 그때 우리의 태도다. 우리는 그 사람에게 “왜 그렇게 살았느냐”고 말할 것인가, 아니면 “나에게도 저런 일이 일어날 수 있다”고 생각할 것인가?


나는 후자의 태도가 더 인간적이라고 생각한다.


인생에는 노력으로도 어쩔 수 없는 운과 변수가 존재한다. 이것을 인정하는 것은 패배주의가 아니다. 오히려 인간을 더 겸손하게 만드는 현실 인식이다. 내가 지금 가진 것들이 전부 내 노력만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 때, 우리는 타인의 불행 앞에서 조금 더 조심스러워질 수 있다.


성공한 사람이 자신의 노력을 자랑하는 것은 자유다. 하지만 그 성공이 전적으로 자신의 힘만으로 이루어졌다고 믿는 순간, 그는 쉽게 오만해진다. 그리고 오만한 사람은 불운한 사람을 보며 연민을 느끼기보다 멸시를 느낀다.


나는 그런 사회가 건강한 사회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가 불운을 당한 사람들에게 “노력하지 않았다”고 비난하기보다, 그들이 어떤 사정을 겪었는지 먼저 생각하고, 최소한의 동정과 연민을 베풀 수 있다면 사회는 조금 더 나아질 것이다.


성공한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끝없는 자기 자랑이 아니라 겸허함이다. 실패한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조롱이 아니라 다시 일어설 수 있는 기회다. 그리고 우리 모두에게 필요한 것은, 인간의 삶이 생각보다 쉽게 깨질 수 있는 것이라는 사실을 잊지 않는 태도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