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나마 소승은 한계를 인정함.


사회에 적극 개입하는 것도 악이란 거지.


지옥으로 가는 길은 선의로 포장되어 있다고, 뭘 선택해도 돌고 돌아 악이 발생함. 사회를 도우면 선을 호구 잡고 인질 잡아 먹고 사는 악도 돕게 됨.


맘에 여유가 없어 이기적인 거지에게 기부를 하면 그 거지가 술 빨고 약 빨고 또 거지나 낳아대고 구걸하는 입이 늘어남.


그렇다고 거지를 거세하거나 죽이는 것도 악임.


그러니 그냥 나로 인한 새로운 죄업이라도 최소화하고자 개인 수도에 힘 쓰게 된 것임.


나머지 평범하게 사는 교도들은 이렇게 비생산적인 수도승을 지원함으로써 그나마 생산의 죄를 더는 거고.


종교 불문 수도자가 애 안 낳고 고기 안 먹고 은둔하고 가난하게 살고 이러는 이유가 이게 그나마 당장 죄를 덜 짓는 길이기 때문임.


대승처럼 결과주의로 가면 반드시 길을 잃음. 


자꾸 사회에 관여하려 하는 것, 땡중들이 승병질하고 살생하는 것, 파계하고 애 낳는 것 다 결과 핑계대려면 못 댈 거 없음. 내가 희생한 거다 말할 수 있지. 


그리고 그렇게 생각을 전개하다 보면 사실 불교의 틀을 유지할 필요도 없게 됨.


이게 결과주의는 대부분 공리주의로 일원화되고, 그저 그때그때 말이 되도록 영원히 말을 꿰맞추는 체리피킹 철학이 되고 마는 이유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