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 여자들과 한국 여자들에게 말을 걸었을 때의 반응 차이를 보면서 느낀 것이 있다.


물론 이것은 내 개인적 경험에 기반한 것이고, 모든 사람에게 일반화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적어도 내가 겪은 범위 안에서는 그 차이가 꽤 뚜렷했다.


서양 여자들은 나이에 관계없이 대체로 나를 크게 경계하지 않았다. 처음 보는 사이인데도 자연스럽게 웃으며 대화하고, 그 자리에서 10분 이상 스몰토크를 한 적도 많았다. 대화가 특별한 목적을 가지고 이루어진다기보다, 그 순간의 가벼운 친교나 분위기 자체를 즐기는 느낌이 있었다.


반면 한국 여자들과는 그런 경험이 거의 없다. 처음 보는 한국 여자와 자연스럽게 스몰토크를 해본 기억이 거의 없다. 말을 걸면 대화가 이어지기보다, 일단 경계부터 하는 듯한 반응이 많았다. 물론 낯선 사람을 경계하는 것이 무조건 잘못이라는 뜻은 아니다. 특히 한국 사회에서 여성들이 낯선 남성을 조심하는 이유가 있을 수 있다는 점도 이해한다. 그러나 내가 느끼기에는 그것이 단순한 조심성이나 수줍음과는 조금 다르게 다가왔다.


아시아적 문화 때문이라고만 보기도 어렵다. 일본 여자, 중국 여자, 동남아 여자들과도 처음 보는 사이에 스몰토크를 한 적이 많다. 그들도 서양인처럼 무조건 개방적인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대화 자체를 불쾌한 침범처럼 받아들이는 느낌은 한국 여자들보다 훨씬 적었다.


한국 여자들의 반응은 겉으로 보면 수줍음처럼 보일 수 있다. 실제로 서양 여자들 중에서도 수줍음이 많은 사람은 처음에는 조심스럽게 반응한다. 그러나 차이가 있다. 수줍은 사람은 긴장해도 상대를 하나의 사람으로 대한다. 반면 내가 느낀 한국 여자들의 경계심은 단순한 수줍음이 아니라, 상대를 평가하고 서열을 재기 전까지는 대화 자체를 허용하지 않으려는 태도처럼 느껴질 때가 많았다.


마치 “이 사람이 나와 대화할 만한 사람인가”, “이 사람과 대화하는 것이 내 체면이나 이미지에 손해가 되지는 않는가”, “이 사람이 나보다 낮은 위치의 사람이라면 괜히 상대해서 내 가치가 떨어지는 것은 아닌가”를 먼저 계산하는 듯한 인상을 받을 때가 있다.


그래서 한국 여자들이 수줍은 척하거나 착한 척하는 모습을 보면, 나는 순수한 수줍음으로 받아들이기 어렵다. 서양 여자가 낯을 가리면 “저 사람은 성격이 조심스럽구나”라고 느끼지만, 한국 여자가 비슷한 반응을 보이면 “저 사람은 지금 나를 경계하면서 서열을 재고 있는 것 아닌가”라는 생각이 먼저 든다.


더 불쾌한 지점은 대화 자체를 동등한 친교로 보지 않는 듯한 태도다. 대화는 원래 서로가 분위기를 나누고, 잠깐의 즐거움을 공유하는 행위일 수 있다. 그런데 한국 여자들 중에는 대화를 마치 자신이 상대에게 “해주는 것”처럼 여기는 사람이 있는 것 같다. 그러다 보니 대화의 시작부터 손해와 이득을 따지는 듯한 느낌을 준다.


“내가 왜 이 사람과 대화해야 하지?”

“이 대화가 나에게 무슨 이익이 있지?”

“내가 상대해주면 저 사람이 착각하는 것 아닌가?”


이런 계산이 먼저 깔려 있는 듯한 반응은 대화를 매우 피곤하게 만든다. 단순히 낯을 가리는 사람에게서는 이런 인상을 받지 않는다. 낯가림은 긴장이고, 수줍음은 성격이다. 그러나 손익 계산과 서열 판단이 섞인 경계심은 상대를 존중하지 않는 태도에 가깝다.


내가 한국 여자들의 수줍음을 다른 나라 여자들의 수줍음과 다르게 느끼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것은 단순히 부끄러워하는 느낌이 아니라, 상대와의 관계에서 자신의 위치가 손해 보지 않도록 방어하고 계산하는 느낌에 가깝다. 그래서 대화가 자연스럽게 흐르기 어렵다.

결국 내가 불편하게 느끼는 것은 한국 여자들이 낯선 사람에게 조심스럽다는 사실 자체가 아니다. 문제는 그 조심성이 인간적인 거리감이나 예의의 형태가 아니라, 서열 판단과 손익 계산의 형태로 나타나는 듯하다는 점이다. 그런 태도는 상대방에게 “나는 너와 동등하게 대화하고 싶지 않다”는 메시지처럼 전달된다.


그래서 나는 한국 여자들과의 스몰토크가 어렵다고 느낀다. 대화가 시작되기도 전에 이미 평가받고 있다는 느낌, 대화가 친교가 아니라 허락받아야 하는 행위처럼 느껴지는 분위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