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자신감을 가져라”, “포기하지 마라”, “노력하면 된다” 같은 말을 들을 때는 다소 삐딱하게 들을 필요가 있다.
물론 이런 말이 항상 나쁘다는 뜻은 아니다. 때로는 사람이 조금만 더 버티면 길이 열릴 때도 있고, 불안과 열등감 때문에 실제 능력보다 빨리 포기하는 경우도 있다. 그런 사람에게 용기를 주는 말은 필요하다.
하지만 한국 사회에서 이런 말은 너무 자주 무책임하게 사용된다. 상대의 조건과 한계, 실패했을 때의 비용, 그 노력이 정말 가치 있는지에 대한 고민 없이 무조건 “포기하지 마라”고 말한다. 문제는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이 정작 그 사람의 실패를 책임져주지 않는다는 점이다.
왜 사람들은 남에게 포기하지 말라고 말할까. 정말로 그 사람을 위해서만 그런 것일까. 나는 꼭 그렇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누군가가 포기하지 않고 계속 발버둥쳐야, 그 과정에서 이익을 보는 사람들이 있다. 학원은 공부를 포기하지 않는 학생에게서 돈을 벌고, 회사는 버티는 노동자에게서 이익을 얻고, 사회는 개인이 자기 한계를 인정하지 않고 계속 경쟁에 뛰어들어야 유지된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모든 것을 이룰 수는 없다. 키가 작아도, 못생겨도, 집이 가난해도, 머리가 나빠도 노력하면 다 된다는 말은 듣기에는 아름답지만 현실과는 다르다. 그런 말을 믿고 끝까지 자기 자신을 학대하면, 결국 가장 크게 손해 보는 사람은 자기 자신이다.
설령 어떤 것을 얻는 데 성공한다고 해도 문제가 끝나는 것은 아니다. 어렵게 얻은 것은 금방 잃을 수도 있고, 얻고 나서 보니 생각만큼 가치가 없을 수도 있다. 남들이 대단하다고 말하는 목표가 정말 내 인생을 행복하게 만드는지는 별개의 문제다.
그러므로 어떤 것을 내려놓는다고 해서 그것이 곧 인생을 포기하는 것은 아니다. 공부를 못하면 공부가 아닌 다른 길을 찾으면 된다. 집이 가난하다면 돈이 많이 들지 않는 즐거움을 찾으면 된다. 키가 작다면 여자에게 인정받기 위해 사지연장술까지 고민하며 자신을 몰아붙일 것이 아니라, 애초에 그 경쟁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즐거움을 찾을 수도 있다.
포기는 언제나 패배가 아니다. 때로는 포기가 자기 자신을 지키는 방법이다. 불가능한 것을 붙잡고 평생을 불행하게 사는 것보다, 가능한 것 안에서 만족을 찾는 것이 훨씬 현명할 수 있다.
문제는 헛된 노력이다. 성취 가능성은 낮고, 성공해도 대가가 지나치게 크며, 실패했을 때 아무도 책임져주지 않는 노력 말이다. 그런 노력을 권하던 사람들은 막상 실패하면 도와주지 않는다. 오히려 “네가 충분히 노력하지 않았다”고 말하며 가장 먼저 손가락질할 가능성이 높다.
나는 동남아에서 외국인에게 성을 파는 여성들과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그들 중 상당수는 허영이 강해 보였다. 태국에서 몸을 파는 여성들 가운데는 라오스 출신이거나 태국 동부의 가난한 지역 출신인 경우가 많았다. 그런데 그들은 고가의 아이폰 프로 맥스를 들고 다니고, 인스타그램에는 호텔 수영장과 클럽 사진이 가득했다.
물론 그들도 각자의 사정이 있을 것이다. 가난, 가족 부양, 교육 부족, 지역 격차 같은 현실적인 문제가 있었을 수 있다. 그러나 동시에 내가 본 일부 사람들에게서는 분명한 소비 욕망과 허영심도 느껴졌다.
태국 동부나 라오스 출신 여성이 방콕에 와서 평범한 일을 한다면 높은 소득을 얻기 어렵다. 방콕의 물가를 감당하고 나면 저축도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런 조건에서 최신 아이폰, 호텔, 클럽, 화려한 소비 생활을 유지하려면 평범한 노동만으로는 어렵다.
그들이 선택한 나름의 노력은 성매매였을 수 있다. 하지만 나는 고가의 아이폰과 호텔 수영장, 클럽 출입을 위해 자기 몸과 존엄을 그런 방식으로 사용하는 것이 과연 그만한 가치가 있는지 의문이다.
그런 것을 포기하는 것이 그렇게까지 힘든가. 저가 안드로이드폰이나 오래된 중고 아이폰을 쓰면 된다. 고급 호텔 수영장이 아니라 동네 카페나 공원에서 시간을 보내면 된다.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소비를 줄이고, 자신의 욕망을 현실에 맞추면 삶은 훨씬 편해질 수 있다.
자기 욕심과 현실적 능력이 너무 크게 어긋나면 사람은 어둠의 길로 가기 쉽다. 문제는 가난 그 자체만이 아니다. 가난한 사람이 자기 조건 안에서 만족을 찾으면 삶은 비참하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가난한 사람이 부자의 소비를 욕망하고, 자신의 현실을 인정하지 못하면 불행은 커진다.
한국 사회도 비슷하다. 사람들은 끊임없이 더 좋은 대학, 더 좋은 직장, 더 비싼 아파트, 더 좋은 차, 더 높은 외모 가치, 더 화려한 소비를 추구하라고 말한다. 그리고 그것을 포기하면 패배자라고 부른다. 하지만 정말 패배자는 무엇인가. 자기 조건에 맞는 삶을 찾은 사람인가, 아니면 남들이 정한 욕망을 따라가다 자신을 망가뜨리는 사람인가.
나는 오히려 내려놓을 줄 아는 사람이 강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자신에게 맞지 않는 경쟁에서 빠져나오는 사람, 남들이 부추기는 욕망을 거절하는 사람, 자기 현실에 맞는 즐거움을 찾는 사람이야말로 쉽게 착취당하지 않는다.
“포기하지 마라”는 말은 때로 사람을 살릴 수 있다. 그러나 어떤 경우에는 사람을 더 깊은 지옥으로 밀어 넣는다. 중요한 것은 포기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무엇을 포기하지 않을 것인가를 제대로 고르는 일이다. 헛된 욕망은 포기해야 하고, 자기 자신은 포기하지 말아야 한다.
굿굿
ㄹㅇ
잘읽었습니다
실패로써 배우는 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