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기득권은 자살률을 낮추는 데 진정으로 관심이 없어 보인다. 적어도 내가 보기에는 그렇다. 자살을 줄이려면 단순히 “힘내라”, “상담을 받아라” 같은 말로는 부족하다. 사람들이 자신의 삶에서 행복을 느낄 수 있는 가치관을 배울 수 있어야 하고, 경쟁에서 밀려난 사람도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잃지 않도록 사회의 기준이 바뀌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최소한 세 가지가 필요하다. 첫째, 경쟁의 압력을 어느 정도 줄여야 한다. 둘째, 실패한 사람이나 약자를 멸시하는 문화를 완화해야 한다. 셋째, 약자들이 완전히 무력한 상태로 몰리지 않도록 최소한의 자기방어 수단과 사회적 발언권을 보장해야 한다.

하지만 한국의 기득권은 이 셋 중 어느 것도 원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경쟁은 유지되어야 하고, 약자에 대한 멸시는 질서라는 이름으로 방치되며, 억울한 사람이 저항하면 오히려 더 위험한 존재로 취급된다. 결국 그들에게 가장 편리한 약자는 분노하지도 않고, 저항하지도 않고, 조용히 사라지는 사람이다.


이것이 한국 사회의 가장 잔인한 지점이라고 생각한다. 사회는 자살을 안타까운 일이라고 말하지만, 정작 사람들이 죽음으로 몰리게 만드는 구조를 바꾸려 하지는 않는다. 죽음을 애도하는 척하면서도, 죽음을 만들어내는 경쟁과 멸시와 무력감은 그대로 보존한다. 그래서 나는 한국 사회가 자살을 진심으로 줄이고 싶어 한다기보다는, 자살이 사회적 분노나 저항으로 번지지 않기만을 바라는 것처럼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