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권 유튜브 채널과 한국어 유튜브 채널을 보다 보면, 물론 모든 경우가 그렇지는 않지만 평균적인 댓글 분위기에서 상당한 차이를 느낄 때가 있다. 영어권 댓글에서는 창작자나 출연자에게 “잘했다”, “계속해라”, “응원한다”는 식의 격려가 비교적 많이 보인다. 반면 한국어 댓글에서는 비아냥, 훈계, 조롱, 인신공격에 가까운 말들이 훨씬 자주 눈에 띈다.
이 차이에 대해 어떤 한국인들은 이렇게 말한다.
“영어권 사람들은 그냥 립서비스를 하는 것이다. 그렇게 말한다고 책임져주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쓴소리를 해줘야 상대에게 도움이 된다.”
얼핏 들으면 그럴듯하다. 무조건 칭찬만 하는 것이 도움이 되는 것은 아니고, 때로는 듣기 싫은 말도 필요하다는 주장 자체는 틀리지 않다. 문제는 그들이 말하는 ‘쓴소리’가 정말 상대에게 도움이 되는 조언인가 하는 점이다.
진정한 쓴소리는 상대를 깎아내리는 말이 아니다. 상대의 상황을 어느 정도 이해하고, 문제점을 구체적으로 짚고, 개선 방향을 제시하며, 최소한의 존중을 유지하는 말이다. 즉 쓴소리에는 애정, 책임감, 구체성, 관계성이 필요하다. 부모, 스승, 친구, 동료처럼 어느 정도 신뢰 관계가 있는 사람 사이에서나 진짜 의미를 가질 수 있다.
하지만 유튜브 댓글창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대부분 서로를 전혀 모르는 타인이다. 그 사람의 사정도 모르고, 노력의 과정도 모르고, 실제 성격이나 환경도 모른다. 그런 상태에서 “이것도 모르냐”, “수준 낮다”, “한심하다”, “노력이 부족하다”, “재능 없다” 같은 말을 던지는 것은 조언이 아니다. 그것은 단지 훈계의 형식을 빌린 모욕일 뿐이다.
더구나 유튜브 댓글창에서 그런 말을 던지는 사람들은 실제로 상대를 도울 의지도, 능력도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들은 상대의 삶을 책임지지 않는다. 지속적으로 지켜보며 도와주지도 않는다. 구체적인 해결책을 제시하지도 않는다. 단지 잠깐 지나가면서 모욕적인 말을 남길 뿐이다. 그런데도 스스로는 “나는 립서비스를 하지 않고 현실적인 조언을 해주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바로 이 지점이 우스운 자기기만이다.
이런 태도는 언어 학습에서도 비슷하게 나타난다. 과거 영어와 독일어를 배울 때 인터넷에 작문을 올리면, 현지인들은 대체로 “잘하고 있다. 다만 이 표현은 이렇게 하면 더 자연스럽다”는 식으로 말하는 경우가 많았다. 즉 상대의 시도를 인정하면서도 구체적인 수정 방향을 제시했다. 틀린 부분을 지적하더라도, 그것이 학습을 계속하게 만드는 방식으로 전달되는 경우가 많았다.
반면 한국인들 중에는 “문법도 틀리고 단수·복수도 다 틀렸다”는 식으로만 말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래서 어떤 부분이 틀렸는지 물어보면, “내가 그걸 왜 말해줘야 하냐, 내가 네 과외선생이냐”는 식으로 반응했다. 이것은 조언도 아니고 비판도 아니다. 단지 상대가 틀렸다는 사실을 이용해 우월감을 확인하는 행위에 가깝다.
물론 모든 사람이 무료로 자세한 첨삭을 해줄 의무는 없다. 남의 글을 일일이 고쳐주는 것은 시간과 노력이 드는 일이다. 그러나 설명할 생각이 전혀 없다면 굳이 남의 글에 “다 틀렸다”는 식으로 비아냥거릴 이유도 없다. “내가 왜 알려줘야 하냐”고 말할 자유가 있다면, 애초에 “다 틀렸다”고 모욕적으로 말하지 않을 책임도 있다.
진짜 도움이 되는 비판이라면 최소한 무엇이 문제인지, 어떻게 고치면 되는지 말해줄 수 있어야 한다. “이 표현은 문법적으로 어색하다”, “여기서는 단수가 아니라 복수를 써야 한다”, “이 문장은 뜻은 통하지만 자연스럽지는 않다”처럼 구체적으로 말해야 한다. 반대로 “틀렸다”고만 말하고, 무엇이 틀렸는지 묻자 “그걸 내가 왜 말해줘야 하냐”고 하는 태도는 피드백이 아니라 오답 판정만 던지는 행위다.
이 사례는 ‘쓴소리’라는 말의 허상을 잘 보여준다. 쓴소리가 정말 상대를 위한 것이라면, 그 안에는 최소한의 구체성과 개선 방향이 있어야 한다. 하지만 많은 경우 현실의 ‘쓴소리’는 냉정한 조언이 아니라, 냉정한 척하는 무례함에 가깝다. 상대를 도울 생각은 없지만 상대의 부족함은 지적하고 싶어 한다. 도움은 주지 않으면서 평가자의 위치에는 서고 싶어 한다.
어쩌면 한국 사회에는 “미운 아이 떡 하나 더 주고, 예쁜 아이 매 한 대 더 때린다”는 식의 사고방식이 깊게 남아 있는지도 모른다. 좋아하는 사람일수록 더 엄하게 대해야 하고, 진짜 애정은 듣기 좋은 말이 아니라 따끔한 지적에 있다는 믿음이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격려나 칭찬을 가볍고 무책임한 립서비스로 보고, 반대로 거칠고 공격적인 말을 더 진실한 태도라고 착각한다.
하지만 여기에는 중요한 전제가 빠져 있다. 아이에게 엄하게 말할 수 있다는 생각은, 적어도 그 아이가 내 책임 안에 있는 존재라는 전제를 가진다. 부모나 교사처럼 아이를 보호하고 돌볼 책임이 있으며, 아이의 성향과 상황을 어느 정도 알고 있고, 그 말 이후에도 계속 관계를 이어가며 책임질 사람이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물론 그런 관계에서도 모욕과 폭력이 정당화되는 것은 아니지만, 최소한 훈육이라는 말이 성립하려면 책임과 관계가 필요하다.
그러나 인터넷에서 처음 보는 사람에게는 그런 전제가 전혀 없다. 댓글을 다는 사람은 상대의 인생을 책임지지 않는다. 상대가 어떤 환경에서 살아왔는지, 어떤 노력을 했는지, 어떤 상처를 가지고 있는지 알지 못한다. 앞으로 그 사람을 돌볼 것도 아니고, 자신의 말이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확인할 생각도 없다. 그런데도 마치 부모나 스승이라도 된 것처럼 “너를 위해서 하는 말”이라며 모욕적인 말을 던진다.
이것은 훈육이 아니다. 관계 없는 타인에게 보호자의 권위를 빌려와 행사하려는 태도일 뿐이다. 책임은 지지 않으면서 권위만 누리려는 것이다. 아이에게 하는 엄한 말조차 책임과 애정이 없으면 폭력에 가까워지는데, 하물며 인터넷에서 처음 보는 사람에게 던지는 비아냥이 어떻게 조언이 될 수 있겠는가.
영어권의 격려가 반드시 깊은 책임감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Great job”, “Keep going”, “You got this” 같은 말은 상대의 인생을 책임지겠다는 약속이 아니다. 그것은 가벼운 사회적 예의이자, 타인의 시도 자체를 존중하는 표현이다. 일종의 사회적 윤활유다. 설령 그것이 어느 정도 형식적인 말이라고 해도, 최소한 상대의 의욕을 꺾지는 않는다.
반면 ‘쓴소리’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모욕은 훨씬 더 무책임하다. 격려하는 사람은 상대를 책임지지 않을지 몰라도, 적어도 상처를 주지는 않는다. 그러나 모욕적인 댓글을 다는 사람은 상대에게 상처를 주면서도 그 결과에 대해서는 아무 책임도 지지 않는다. 그러면서 오히려 자신이 더 솔직하고, 현실적이고, 상대를 위하는 사람인 것처럼 행세한다.
결국 문제는 ‘립서비스냐 쓴소리냐’가 아니다. 핵심은 그 말이 실제로 상대에게 도움이 되는가이다. 책임 없는 칭찬보다 더 나쁜 것은 책임 없는 비난이다. 가벼운 격려는 적어도 누군가에게 힘이 될 수 있지만, 조언을 가장한 조롱은 상대의 의욕을 꺾고 감정적 상처만 남길 가능성이 크다.
많은 사람들이 예의를 가식으로 착각하고, 무례를 솔직함으로 착각한다. 그리고 자신의 공격성을 ‘쓴소리’라는 말로 포장한다. 그러나 진짜 쓴소리는 상대를 살리기 위한 말이다. 가짜 쓴소리는 상대를 깎아내리면서 자신을 높이기 위한 말이다.
한국어 댓글 문화에서 자주 보이는 문제는 바로 여기에 있다. 타인에게 별다른 도움을 줄 생각도 없으면서, 모욕적인 말을 던지고는 그것을 조언이라고 부른다. 그리고 영어권의 격려 문화를 “책임 없는 립서비스”라고 비웃는다. 하지만 실제로는, 아무 책임 없이 남을 응원하는 말보다 아무 책임 없이 남을 깎아내리는 말이 훨씬 더 해롭다.
따라서 유튜브 댓글창에서 흔히 보이는 ‘쓴소리’는 대개 진실한 조언이 아니다. 그것은 우월감의 표현이고, 감정 배설이며, 무례함의 자기정당화다. 정말 상대를 위한다면 비아냥거릴 필요가 없다. 진짜 조언을 하고 싶다면 구체적으로 말하면 된다. 그리고 구체적인 조언을 할 수 없다면, 최소한 상대를 모욕하지 않는 것이 기본적인 예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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