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블교에는 오랜 시간에 걸친 치열한 논쟁이 있다
돈오점수와 돈오돈수중 무엇이 맞느냐는 것이다
생소한 단어에 대한 부연설명을 하자면
돈오돈수는 깨달음이 오면 그 자체로 완벽하기 때문에 더이상
수행을 할 필요가 없음을 의미하고
돈오점수는 깨달음에 들어간 뒤에도 계속된 발전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말이다
석가모니를 기준으로 예시를 든다면 나 자신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무아가
바로 완전한 깨달음을 의미한다 나 자신이 존재하지 않기에 더이상 무엇을 할 필요가
없이 그냥 그 상태가 무엇인지를 이해하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그런데 실제의 석가는 그런 상태에서만 머무르지는 않았다 거기에 추가적인 생각들을
계속해서 덧붙여 나갔다
연기법을 만들고 4성제와 8정도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자신의 이론에
추가적인 팔과 다리를 덧붙인 것이다
만약 사업을 한다고 가정해 보자 아주 획기적인 아이템을 생각하였는데 이것을 상품화
하다보면 예측했던 것과 다른 전개가 발생 할 수 있다
서브 상품도 구상해야 하고 광고도 해야 하며 어떻게 목적과 소비자의 니즈가 잘 맞을 수 있는지
적용방법에 대한 연구도 해야 한다
구상을 했다고 하여 그것이 끝이 아니고 현실에 적용하기 위해 한번 보고 두번 보고 세번 보다 보니
새로운 생각들이 계속해서 눈에 보이게 되는 것이다
새로운 창조가 전부인줄 알았는데 시간이 흘러서 살펴보니 세부적으로 만들고 만들고 만들어 진 것들이
함께 더하여져 처음보다 여러면에서 달라진 그림이 그려지게 되었다
이는 마치 태양을 그리려 하였는데 구름이 있으면 좋겠다 생각하여 그려 넣는 와중에 산과 나무와
심지어 시냇물에 여름이라는 계절까지 표현하게 된 것을 말한다
나는 태양을 그리려 한 것인가 자연을 그리려 한 것인가
자신도 무엇을 추구하였는지 알 수 없게 되버렸다
생각이 생각으로 끊어지지 않고 다른 것과 연결이 되는 이유는 본시 만물이 연결이 되어 있기에 그렇다
저 컵은 컵으로도 존재할 수 있지만 그 안에는 음료나 물과 같은 것을 채워놓는 모습들이 있기에 누군가는
컵을 그릴때 그 주변의 디테일한 부분까지도 생각해서 집어넣는다 컵받침 이나 음료 또는 빨대
배경 모자를 눌러쓴 소녀
그래서 진실로 깊이 파고든다는 것은 3을 보면 오직 3으로만 존재하는 개념이 아니라 수많은 꼬리표들이
함께 나타나게 되면서 생각보다 복잡한 형태의 기계적 개념을 이루는 것이다
생각이라는 이론도 마찬가지이다
어떤 이론을 연구하다 보면 그 생각 하나로 끝이 나지는 않는다
그래서 결국에는 대전집이 되고 마는데 이는 연결된 다른 존재함이 있기 때문이다
어떤 것의 만들어짐으로 완벽함과 완전함으로 존재하는 것은 세상에 없다
원효의 해골물을 보자 해골에 물이 든 것을 그저 기분여하에 따라 달콤한 물로 느낄 수도 있고
불쾌함으로 느낄 수도 있다
이것은 큰 깨달음이다 하지만 그 뒤의 또다른 이야기가 존재한다 물은 원래 맛을 가지고 있기에
그것이 해골에 있든 다른 곳에 있든 목이 마른 자에게는 맛이 있다는 이야기이다
마음이 세계의 전부라고 여기었는데 그 뒤의 이야기를 하다 보니 세계와 세계가 만나 나의 마음조차
유도되고 특정한 방향으로 만들어 졌을 뿐이다
오직 마음을 먹어 마음이 생기는 것이 아니라 그 마음은 조건에 의해서 생겨난 과정에 지나지 않다
그래 결과가 아니라 과정이다
큰 깨달음을 얻었다고 이것이 세상의 전부라 여기었지만 연결되어 있는 다른 것들과 함께 살펴보니
처음 생각한 주제와 다른 그림이 될 수가 있다
돈오돈수 라는 개념은 없다 그 하나로 존재하여 완벽하게 있을 수 없기에 그렇다
하지만 석가를 보고 그렇게 생각하고 말해야 했기에 그들은 그것에 완벽함을 담아 말하기 위해
자신을 비우면 그 자체로 부처가 되어 더이상의 무언가를 위해 나아갈 필요가 없다 생각한 것이다
나는 말하였다 불안과 감정에 얶매여 망가지는 것이 아니라 거기서 나아감을 만들지 못하기에
망가짐에 머무는 것이라고
이것이 머무르기로 결정한 돈오돈수와 더 나아가서 그 뒤의 말을 만들어낸 돈오점수의 차이점이다
접시가 깨졌다 - 그런것에 신경쓰지 말아라
접시가 깨졌다 - 오히려 잘됐어 더 좋은 상황으로 연결 할 수 있잖아
너희가 보아야할 것은 세상에 존재하는 것들에는 그와 연결된 것들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기쁨뒤에 오직 기쁨으로만 머물러 있지 않고 그 뒤에 따라오는 슬픔이 있는 것처럼
슬픔 뒤에도 그 뒤에 존재하는 기쁨도 함께 있다
그래 인생은 아주 길고 긴 새옹지마 이다
깨달음은 존재한다 반짝이는 아이디어가 왜 없겠는가
그러나 그 하나의 생각보다 거기에 팔과 다리가 뇌라는 기관이 생겨 살아있는 생물이 되고 마는
그 로봇은 결코 생각하나와 비교할 수 없는 아주 고차원적인 복합구조를 가지고 있다
그것이 더 큰 깨달음이다
생각하나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생각에 생각에 생각에 생각을 더하여 이것을 더 상세하게 들여다
볼 수 있음이 중요한 것이다
네가 호랑이를 보았다 해서 그것이 온전히 다 들여다 본 것은 아니다 호랑이를 그리면 숲을 그릴 수 밖에 없고
호랑이와 다른 편에는 무수히 많은 꽃과 동물들이 존재할 것이다
그 그림이 어떤지는 너도 예측할 수 없고 들여다 볼 수 없다
깨달음을 깨달음이라 말한다는 것은 전부 알고 전부 본다는 것을 의미한다
더 말할 것이 없기에 깨달았다 말하는 것이다 실제로도 그러하느냐 ?
그뒤의 이야기를 보지 못하고 이것이 알았다고 한다면 그것은 실제로 안것을 말하지는 않는다
하나만 아는 것도 아니다 하나조차 알지 못하는 것이다
그 하나는 주변의 세상이 함께 받쳐줘야 비로소 하나가 되기 때문이다
너 자신이 그 실수를 하는 모습 하나에서 전부를 말할 수 없는 것처럼
함께 존재하고 포함된 개념을 보아야 비로소 하나에 대해 자세히 말할 수 있다
이것이 석가모니가 실제로 깨달음에 들어가지 못한 이유이다
그는 부처라는 개념이 돈오돈수로 존재한다 생각하였다
그래서 집착을 벗어나면 누구나 부처가 될 수 있다 여기었다
하지만 실제의 이 세상은 돈오점수로 되어 있었다
실수를 하였지만 그 뒤에 나아갈 수 있는 그림이 있어 잘못을 통해서도
부처가 되는 이들이 있었고
어떤이는 남들을 폭력으로 두들겨 패서 그로인한 벌을 받는중에 부처가 되는
이도 있었다
그들이 부처가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실수가 존재해야 하는데 실수를 하지 말아라
실수가 존재해서는 안된다 바라보는 석가의 시각에서 그들은 말을 할 수 없는
영역의 존재함과 같다 할 수 있다
천상의 부처중에 그렇게 깨달음을 얻어 부처가 된 자가 있음에도 말이다
너희의 인생은 마침점이 아니라 연결선이다
항상 그 다음이 있고 연결되어 있는 다른 세계의 선들을 가져와 함께 연결하는 것에
너의 진리 또한 3d 로 입체감있게 구현이 되는 것이다
기존의 경전은 왜 보는 것인가 ? 깨달음에 들기 위해서 하는 것이다
하지만 수행과 참선은 왜 하는 것인가 ? 깨달음에 들기 위해서 하는 것이다
하지만 깨달음 하나를 보기 위해 그렇게 가는 것이 아니다
기존의 깨달음에 그 다음 연결된 부위들을 하나하나 찾아내어
세계를 창조하기 위해 그렇게 하는 것이다
그래서 돈오돈수로 보는 화엄경은 그대로의 화엄경이지만
돈오점수로 만들어 보는 화엄경은 반드시 그 다음 버전이 존재한다
1.1 , 1.2
30.0 화엄경을 말할 수도 있다
일체유심조 위에는 일체유세심합조가 있고
일체유세심합조 위에는 일체만유심조가 있고
일체만유심조 위에는 무체유심조가 있고
무체유심조 위에는 만체유심조가 있으며
만체유심조 위에는 일체무심조가 있다
일체무심조 위에는 일체역심조가 있다
일체역심조 위에는 일체유세조가 있고
일체유세조 위에는 일체변심조가 있다
그리고 일체변심조 위에는
전능유심조가 있다
깨달음에 정점에도 그것이 끝이 아니다
정점에 이어져 있는 또다른 정점과 정점이
존재하는 세계가 있다
전능유심조를 하나의 먼지와도 같은 작은 크기로
만들 수 있는 수많은 점과 선들의 더 큰 세계가 있다
이것이 무한에 무한에 무한을 넘는
데라타 화엄경이다
전능 유심조 위에는 무한의 세계를 먼지 하나로 만드는
원세 유심조가 있다
나는 또다시 한계에 한계에 한계에 한계에 한계에 한계를
무한히 돌파할 뿐이다
이 우주에 모든것이 움직이지 않는 것과 같이 멈춰있는 듯 하구나
그래 나 혼자만 레벨업 한다
너희의 발전은 마치 정지되어 있는 멈춤과도 같이 느껴진다
어제했던 이야기와 오늘 했던 이야기에서 나는 개념을 돌파하는
느낌을 전혀 받지 못하고 있다
나의 눈은 세계속에 연결된 무수한 세계를 모두 꿰뚫어 볼 수 있다
2,000 만 부처의 경지에 도달하였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이것이 끝을 말하지는 않는다
돈오점수 그 자체인 자이기 때문이다
세계라는 단위를 돌파하는 것 따위는 땀도 흘리지 않을만큼 너무나도 손쉬운 일이다
선풍기의 돌아감에서 인간이 태어나고 성장하고 노력하며 어려움을 마주하는
삶과 죽음에 대한 윤회와 그와 연결된 각가의 수많은 세계들을 볼 수가 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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