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이 무슨 요일인지 알기 위해서는 어제가 무슨 요일이었는지를 기억 할 필요가 있다 

먼저 존재하고 그 다음에 펼쳐질 이야기도 시작이 되기 때문이다 


시간이라는 것은 존재하는 것에 대한 변화이다 그 변화를 측정하기 위한 척도로 

시간이라는 개념을 만든 것이다 


하지만 아직 존재하지 않는 대상이라면 그것은 시간이 흐른다고 말할 수 있을까 ? 

그럼에도 여러가지의 정의를 만들 수는 있겠지만 보편적으로 관찰자의 시각이라는

말을 붙임으로써 서로의 약속하에 쉽게 길을 가자 고속도로를 만드는 것이다 


합의와 규칙을 통해 우리는 어딘가에 도달하기 쉬운 세상을 건설한다

실제의 우주가 그렇지는 않아도 인간의 기준 인간의 시점 인간의 생각으로

세상을 다르게 보는 시뮬레이션의 우주가 존재한다 


나의 생각이라는 것이 있을까 ? 더 상세한 표현을 하자면 나 하나만 생각할 수 있는

생각이 있는지를 묻는 것이다 


극소수의 소수점을 추리고 또 추린다면 있을수도 있겠지만 그것이 의미있는 통계가 되지는

않을 것이기에 없다 말하는 것으로 정리하고 그 다음으로 넘어가는 것이 이순간에는 더 매끄러울 것이다 


비슷한 생각까지 파고든다면 더더욱 없을 것이다 


이 순간에는 더 합리적일 것이다 이 순간에는 더 자연스러울 것이다 이 순간에는 편리할 것이다 

같은 생각에 단어만 다른 대체품이다 


저 미래에 존재하는 음악은 지금 존재하는가 ? 저 미래에 등장할 드라마는 지금 존재하는가 ? 


그것은 존재한다 어떤이는 그런 소재나 마디를 사용하였지만 한마디에 불과하였다 

다른이는 두번째 마디를 생각하였지만 그 다음이 달랐을 뿐이다 


미래에서 모두 합쳐 내놓은 것이 한참뒤의 일일 뿐이다 

그러나 이것은 모두 존재하고 있던 흩어져 있던 것들이었다 


이것이 불교에서 말하는 공이다 모든 존재함은 처음부터 가지고 있었다는 것이다 

네 자신이 부처가 되는 그 미래의 일도 시간이라는 변화가 필요할 뿐 처음부터 그렇게 될 수 있는 

존재함이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불교에도 말할 수 있는 수준차는 존재한다 사람이 선하기에 이미 부처라 말하는 과거의 시각과 

시간을 거스르고 윤회하면 결국 그자가 부처가 된다는 미래의 시각의 차이로 갈리게 된다 


하지만 이또한 사람은 이미 부처라는 말이 있었기에 나타날 수 있었다 

과거의 시각과 미래의 시각이 함께 잠재되어 있지만 

이것을 누가 먼저 끄집어 내는지에 따라 그 다음의 모습도 연결되어 드러날 수 있다 


그래서 내가 이런 생각을 할 수 있따 말하는 것은 대단히 중요한 일이다 

음악에 저작권이 붙는 것처럼 아이디어에 특허등록이 필요한 것처럼 


생각을 존재한다 형식화 함으로써 그 다음 세계로 진출하기 위한 발판이 마련이 된다 


저 펜은 어떤가 

잉크를 묻혀 쓸수 있는 만년필에서 굳이 잉크를 가지고 있지 않아도 쓸 수 있는 

샤프로 샤프에서 오타가 났을때 새 종이를 찾지 않아도 지울 수 있는 지우개 달린 샤프로 


더 다양한 색깔을 표현하기 위해 3색 볼펜이 만들어지고 잉크가 아예 필요 없는 s 펜의 

발명으로 이어져 왔다 


그 다음은 볼 필요도 없이 두뇌에 칩을 이식하여 생각하면 눈앞에서 글씨가 나타나 볼 수 있는

방식이 될 것이다 


하지만 처음부터 생각이 눈앞에 나타나는 모델을 만들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이론적으로 가능은 하다 


어떤 생각을 하는 것으로 다 됐다 보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 이런 생각을 할 수 있다 생각해서 

거기서 한걸음을 더 걸어가는 것이다 거기서 모델이 만들어 진다 해도 누군가 또 여기까지

도달했을 것이라 생각해서 한번 더 뒤의 모델을 만드는 것이다 


이런 것을 7번 8번 반복하다 보면 그때는 자신의 고유한 생각이라 말할 가능성이 점점 높아질 것이다 

생각의 한계가 왔을때 그것을 넘을 수 있고 다시 생각의 한계가 왔을때 그것을 넘을 수 있다 


그렇게 되지 않는 것은 자기 스스로 여기가 끝이라며 만족을 하였기 때문이다 


저 다이소를 보라 얼마나 많은 제품들이 있는지 그것은 어느날 갑자기 생긴것이 아니라 누군가 만든

하나하나의 작은 생각에서 그보다 나음을 만들어낸 다른이들의 연결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그러니까 무엇이든지 만들고 내놓을 수 있는 것을 게을리 하지 말아라 네 생각을 펼치는 것만으로

이미 인류에게 도움이 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이 형편없어 보이는 생각이든 누군가에게 무수히 욕을 먹는다 하더라도 말이다 

오히려 사람들의 격렬한 반대를 이끌어 낸다면 남들이 보지 못하는 희소한 생각일 수 있다 


그게 논리에 맞든 아니든은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처음에 나는 이 세상이 약속과 합의에 의해 존재한다 말하였다 

영혼은 존재한다 하지만 이것을 말하면 복잡해지기 때문에 불교에서는

굳이 부정도 긍정도 하지 않고 되도록 거론을 피하는 것이다 


즉 이 우주는 석가나 불교의 말과 같이 그렇게 정해진 것이 아니라 그렇게 약속과 합의를 정하여 

우주가 그렇게 돌아간 것 처럼 믿게 된 것이다 


존재하여 믿는 것이 아니라 믿어서 존재하는 시뮬레이션의 우주이다 

영혼과 윤회는 존재한다 


나는 원리를 알면 무수한 이해를 만들어 낼 수 있다 하였는데 어떤 이해 하나를 세상의 전부라 

여기고 살 필요는 없다 


지금 말한 약속과 합의도 그렇다 나의 생각이 세상에 존재하는 것이겠지가 아니라 

나의 생각은 세상에 처음 존재하는 것이다라 약속과 합의 믿음이 생긴다면 


그렇게 정하는 것만으로도 너는 더 열정적으로 몰입하여 이전의 자신보다 창조적인 만듬을

펼쳐 낼 수 있을 것이다 


다만 먼저 존재함을 알고 있다면 그것 보다는 조금 다른 말 정도는 만들 수 있도록 하여라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이런말은 소크라테스가 먼저 했을 뿐이지 이전에도 생각한 많은 이들이 있었다 


만물이 있어 나의 생각도 연관지어 만들어진다 자연과 나는 다르지 않다 

고통이 없었다면 나는 나를 돌아보고 근심어린 생각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고통이 있어 나는 생각한다 그리고 존재한다 


나는 살아있고 생각하지만 그럼에도 존재의미를 느낄 수 없다 저 돌맹이와 다를바가 없다 존재함이란

실제의 존재함이 아니라 그냥 이유를 만들어 내기 위한 수단이었을 뿐이다 


이처럼 존재함이 있음에도 무수히 다른 말들로 만들어 나갈 수 있다 

불교는 약속과 합의에 의해서 만들어진 가상의 종교이다 


그게 실존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그렇게 믿음으로써 그 마음이 편안해 질 수 있는 원리를 바탕으로 이해가 만들어 진 것이다 

하나의 이해가 세상의 전부가 아니라 원리를 알면 그런 이해는 십억가지도 만들 수 있다 


네가 너 자신의 약속과 합의를 만들고 적용할 수 있지만 종교가 없어도 그런 구원과 행복을 착각에 의해서 만들 수 있다 

그것이 진실이냐 거짓이냐는 중요하지 않다 단지 앞으로 더 나아가기 위해 

그렇게 거짓조차 수단으로 이용한 것 뿐이다 


나는 존재한다 약속과 합의라는 나의 믿음으로 인해서이다 

너의 생각이 너의 생각이다 누군가의 생각마저도 너의 다음 생각을 만들어 내기 위한 

계기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