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식 평판사회에서는 나쁜 짓을 하지 않는 것보다, 나쁜 사람으로 보이지 않는 것이 더 중요하다. 그래서 사람들은 잔인하지 않으려 하기보다, 잔인한 사람으로 보이지 않으려 한다. 여기서 한국식 약자혐오의 독특한 방식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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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실제로는 남을 깔보고 싶어한다. 서열을 매기고 싶어한다. 약자를 낮게 보고 싶어한다. 실패한 사람을 자기보다 아래에 놓고 싶어한다. 그러나 동시에 자신이 악한 사람으로 보이는 것은 견디지 못한다. 그래서 반드시 도덕적 포장을 붙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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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공정한 사람이다.
나는 냉정하지만 합리적인 사람이다.
나는 진짜 약자는 배려하는 사람이다.
나는 현실을 말하는 사람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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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평판을 유지하면서도, 실제로는 약자를 향한 멸시를 포기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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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한국식 도덕적 알리바이의 핵심이다. 차라리 노골적으로 약자를 싫어한다고 말하면 정직하기라도 하다. 그러나 한국식 평판사회에서 그런 노골성은 천박한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사람들은 자신의 악의를 더 세련된 언어로 바꾼다. 멸시는 걱정이 되고, 차별은 현실이 되고, 냉소는 조언이 되고, 혐오는 자기관리 담론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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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악의가 사라진 것이 아니다. 악의가 사회적으로 유통 가능한 말투를 얻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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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방식은 평판사회에서 매우 효율적이다. 대놓고 사악하면 비난을 받는다. 하지만 자신이 인정한 극단적 예외만 제외한다고 말하면, 본인은 선을 지킨 사람처럼 보인다. 그러면서도 실질적으로는 거의 모든 사람에게 “너는 아니잖아?”라고 말할 수 있다. 너는 진짜 병자는 아니잖아. 너는 진짜 장애인은 아니잖아. 너는 진짜 극단적으로 불우한 사람은 아니잖아. 그러니 네 실패는 네 책임이라고 말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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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매우 비열한 구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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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와줄 생각은 없다.
이해할 생각도 없다.
그런데 이해심 있는 사람처럼 보이고는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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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자를 멸시하면서도 자신은 약자를 배려하는 사람처럼 보이고 싶어한다. 실패한 사람을 내려다보면서도 자신은 공정한 사람이라고 믿고 싶어한다. 타인의 고통을 깊이 들여다볼 생각은 없으면서, 자신이 너무 잔인한 사람으로 보이는 것만은 피하고 싶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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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것이 한국식 약자혐오의 핵심이라고 본다. 노골적인 혐오보다 더 역겨운 이유도 여기에 있다. 노골적인 혐오는 최소한 자기 정체를 드러낸다. 그러나 도덕적 알리바이를 단 혐오는 자신을 혐오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스스로를 상식인, 현실주의자, 자기관리를 아는 사람, 냉정하지만 공정한 사람으로 여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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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더 고치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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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가 나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최소한 죄책감이라도 느낄 수 있다. 하지만 자기가 공정하다고 믿는 사람은 죄책감이 없다. 오히려 자신이 상대를 교정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자신이 약자를 괴롭히는 것이 아니라, 약자에게 현실을 알려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자신이 멸시하는 것이 아니라, 노력하지 않은 사람에게 정당한 평가를 내리고 있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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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지점에서 혐오는 가장 위험한 형태가 된다. 혐오가 혐오로 인식되지 않고, 도덕으로 착각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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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식 평판사회는 사람들에게 선함을 가르친 것이 아니다. 선해 보이는 기술을 가르쳤다. 그래서 약자를 멸시할 때도 반드시 도덕적 면책조항을 붙인다. 자신은 진짜 어쩔 수 없는 사람까지 비난하는 잔인한 인간은 아니라고 말한다. 그러나 그가 인정하는 “진짜 어쩔 수 없음”의 범위는 언제나 지나치게 좁다. 결국 대부분의 약자와 실패자는 그 면책의 바깥으로 밀려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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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면책조항 때문에 그는 끝까지 자기 자신을 좋은 사람이라고 믿는다. 바로 그 점이 가장 질 나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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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식 약자혐오는 단순히 잔인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잔인하면서도 자신을 잔인하다고 인정하지 않는다. 남을 찌르면서도 자기 손은 깨끗하다고 믿는다. 약자를 재판하면서도 자신은 공정하다고 믿는다. 멸시를 행사하면서도 자신은 현실을 말했을 뿐이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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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한국식 도덕적 알리바이는 약자를 위한 말이 아니다. 그것은 약자를 비난하는 사람이 자기 평판을 보호하기 위해 만든 방패다. 남을 낮게 보고 싶지만, 낮은 인간으로 보이고 싶지는 않은 사회. 잔인함을 포기하지 않으면서도, 잔인한 사람이라는 평판은 피하고 싶은 사회. 그 모순이 바로 한국식 평판사회가 만들어낸 약자혐오의 방식이다.
굿굿