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히려, 자본의 진화는 마치 암세포와도 비슷한데가 있다.
놀라운건 자본이 단순히 경제학에만 머무르기를 거부하고 사회학, 정치학을 잠식한 것으로 모자라
윤리학, 더 나아가서는 철학의 영역까지 침범하고 있다는 것임.
실제로 현대의 자본은 정말 엄청나게 놀라운 진화를 거치는 바람에
자본의 논리가 거의 모든 분야의 논리를 집어삼키며 무소불위의 권력을 행사하기에 이르렀다고 보여짐.
초기 자본주의나 시장주의에 대한 비판은 경제학적 논리에 다른 분야, 예를 들어 사회나 윤리의 논리 등을 통해 대항함으로써 이루어졌다고 보는데,
이러한 자본에 대한 공격은 자본의 논리가 진화하도록 하는 밑거름이 된 것으로 보인다.
현대의 자본은 더이상 단순히 우리가 \"돈\"이라 이름 붙인 경제적인 가치만을 담고 있지 않고,
자본이 곧 생존이고, 자본이 곧 사회의 구성성분이고, 자본이 곧 정의이며, 심지어 자본이 곧 인간이기까지 하다.
지금 단계에 이르러서는 자본=욕심=악 이라는 단순한 어떤 계몽적/투쟁적 선악구도에서 더 이상 자본을 평가할 수 없고,
\"자본\"이라는 것 자체가 하나의 패러다임이 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즉 자본이 나타내는 가치라는 것이 어떤 물질적인 것에 대한 가치가 가지는 1차원적인 개념에서 점점 확장되어,
이제는 우리가 \"가치\"라고 부를 수 있는 거의 모든 것을 자본이 대표할 수 있게 되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실로 현대의 투쟁은 자본이 침투하는 것을 거부하기보다는, 적절한 가치평가를 받고자 하는 투쟁에 더 가까운 양상을 띈다.
전통적인 자본주의 비판이 더 이상 의미를 갖기 어렵게 되는 것이다.
현상적으로 자본이 모든 가치를 암세포처럼 잠식해감에 따라, 관념적으로도 \"자본\"이라는 단어와 \"가치\"라는 단어의 구분이 모호해지고 있다는 얘기.
오.. 뭘 먹고 자랐길래 이렇게 똑똑한가.. 짧은 내 머리로도 어느정도 이해가 되게 잘 쓰셨구만.. 전달력이 뛰어나구랴.. 자본과 가치의 경계선이 모호해진다라.. 백번 동감
닿으면안될곳에 닿았다 123456789에서0으로가고있다.. 과연 우리는 진화중인걸까 앞으로가는것만이 옳은걸까.. 공감
자본이 가치화와 그것을 단순한 어떤 계몽적/투쟁적 선악구도에서 더 이상 자본을 평가할 수 없다의 관계를 좀 더 알고싶습니다;;|
이건 자본이 윤리의 논리를 흡수했다는데에 어느 정도 맞닿아있는 부분으로 볼 수 있는데, 예를 들면 과거에는 자본가들이 배를 불리기 위해 노동계급을 희생시키고 있으며 이것은 노예주의와 다를바가 무엇이냐는 비판을 했지만, 이러한 노동계급과의 투쟁을 거친 자본은 \"사원복지\"라는 윤리적인 개념을 편입시키게 되었는데, 이 개념의 편입은 자본이 윤리적인 논리를 사용하기 때문이 아니라, 그렇게 함으로써 보다 양질의 인력을 효율적으로 유도할 수 있으며, 사원의 복지를 통해 만족도와 충성도 향상, 그리고 궁극적으로 생산성 향상을 도모할 수 있다는 분석이 기저에 깔려있지. 그리고 그 분석은 철저하게 수치화되어 있고 또 경제적인 논리로 분석되어 있다.
즉 인간의 만족감, 행복, 삶의 질, 충성심, 호감 등등을 모두 일종의 자본으로 변환시키고, 적절한 가치를 매겨 이를 수치화한 뒤 경제적인 논리로 처리한 것이지. 이에 따라 원래 윤리에 속했던 개념들이 자본의 논리에 종속되어 지배를 받게 되었다는 얘기.
공리주의 냄새가 나네여;;
윤리학적 관점에서는 공리주의 기저에 있는 결과론적 윤리관을 공유한다고 볼 수 있을듯. 점점 인간들의 사회가 비대해져가고 복잡해지면서 또 분열을 이루는 와중에 민주주의가 그 중심을 가로지르게 되었다보니, 일부 공리주의적 가치관이 구현되고 있다는 것은 필연적일지도...다만 그렇다고 단순하게 그거 하나로 현대의 윤리를 다 설명하기엔 한계가 있다고 봄.
덧글을 다시 읽다보니 혹시 저 예시에 국한해서 공리주의가 나온건가 싶어서...사실 이 패러다임에는 공리주의가 아닌 다른 어떤 윤리관을 끼워넣어도 다 성립함. 윤리관 자체를 바꿨다기보다 윤리관의 대상들에게 자본이란 속성을 부여한 느낌이라서.
갤러리 메인 이슈에 등록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이젠 거의 개인의 가치가 = 개인이 생산할 수 있는 자본 이 되었지요 인권 = 개인이 자본을 생산할 수 있는 기반에 대한 권리 뭐 이런 식으로 변화하는 세상에 살고 있는 듯 합니다...
그렇지 이게 지금 우리사회지.. 우리가 여기 글 싸고 논하는것도 유식이횽 돈 때문이다 ㅠㅠ 빨리 광고 하나씩들 눌러
언제는 아니었냐. 과거 근대화 이전, 공권력이 약자를 보호하기 전에는 인권이라 함은 개 풀뜯어먹는 소리였던건 마찬가지였다. 인권이란 힘이 있어야 행사할수 있는 권리이고 과거에는 힘이 무력이었다면 현재에는 자본도 한자리 꿰차고 있을뿐
그리고 사내아이 낳으면 일손이 늘었다고 좋아하고, 딸은 시집보낼때 폐물받고 팔아넘기던 과거 행태는 사람을 가치로 평가하던거 아님 뭐냐. 옛날에는 뭐 존나게 정의로웠던 것처럼 말하네
칼폴라니가 한 말이 떠오르네. 자본주의는 상품화시키지 말아야 할 것까지 상품화 시킨다고. 인간은 상품이 아니라고 주장할 인간들도 있는 모양인데, 스펙쌓고 성형수술하고 그러는거 전부 결혼시장이나 노동시장에서 자기의 상품적 가치를 높이기 위함임. 특히나 양극화된 한국사회에서 인간의 상품화 정도가 심하지.
자본은 만물을 상품화시키지.
난 윤리건 공리주의건 이쪽으로는 공부를 안해서 이론은 모르겠는데.. 애초에 왜 저런걸 문제라고 보는지 모르겠다.. 자본을 왜 독립적인 주체로 보는지도 모르겠고.. 자본은 사람이 돌리는거 아니냐. 그리고 사람이 다른 사람과 관련될때 자신에게 돌아오는 실익을 따지는건 당연한거 아님? 저 치들은 뭐 길가던 사람한테 자기재산 다퍼주나보지? 아니면 가족이 다치거나 죽을때 대비해서 보험도 안들어놓나? 사람을 자본으로 환원하는 행위니까?
능력자를 보고 \"저사람과 친해지면 나중에 도움받을 일이 있을거같아\" 이렇게 생각하는거와 \"저사람과 친해지면 나에게 **$의 자본 증가 효과를 가질거같아\" 이렇게 생각하는거와.. 뭐가 다르다는거냐. 그냥 왠지 기분나쁘다는거잔아. 매 순간 이런 가치판단을 수도없이 해 왔으면서 이렇게 치수로 매기는건 기분나쁘다는건가? 존나 가식쩌네 역겹다
ㄴㄴ 먼가 오해하고있는 것이 있는거 가타. 글쓴이는 단지 패러다임에 대해 이야기하고있을뿐인데 // 자본을 사람이 돌린다고 생각하는 자체가 아직 자본이 뭔지도 모르고 있다는 이야기인데. // 함 100억쯤 가지고 사업하다보면 느낄꺼야 이것이 내돈이 아니라 자본이구나 그러고. 쉽게 이야기하자면 내돈인데 내돈이 아니고 돈의 의지로 사업이 굴러가게된다는 이야기지.. 돈과 자본도 구분못하는 거같아서 돈이라고 썼는데 돈과 자본은 다른거 부터 알고 시작해야 이야기가 될텐데..
ㄴㄴ 자본은 가치라고 생각했는데 아님? 돈이건 부동산이건 사람이건 감정이건, 가치있는것, 유용한것을 수치로 평가한게 자본이라고 생각했는데. 자본 중심으로 돌아가는걸 자본주의라고 부르고. 내가 잘못알고있는거냐...// 그리고 자본을 사람이 돌리지 누가돌림? 100억이 전부 내돈이고 내가 내 의지만으로 어떻게 쓰이는지 관리하고 사용한다면 돈쓰는 내가 자본 아니냐. 은행이나 이곳저곳서 대출받고 투자자 모집하고 주식 찍어서 만들어놓은 100억이면 여러 이해관계가 엃혀서 복잡하게 돌아갈텐데 그걸보고 자본을 주체라고 보는건 아니지싶다.
공지글이라 들어와봤더니 머리만아프네....
우리가 진화되는건인가 아님 원래 부터 가지고있던 어떤것을 아직다 끌어내지 못한것인가
지랄도 정도껏
멍청한새끼 \'자본\'의 뜻은 아냐. 안다면 이런 글을 쌀수가 없다.
자꾸 자본 자본 거리는데 니가말하는 \'자본\'은 \'돈\'을 의미하는거다. 원래 의미의 자본은 자기증식하는 돈을 가리키는거고. 용어부터 똑바로 하고 가자.
자본이란 말 써도 별로 틀린거 없어 뵈는데
애초 물질주의는 물질을 가지고 싶다가 아니라, 그 물질을 소유함으로써 \'저 물질을 안가지면 나는 생존의 혹은 사회적인 위협을 받을지도 몰라\'라는 두려움에서 해방되는 자유를 말하는거다. 자본이 물질과 동의어가 된다면 결국 사람들은 지금 당장 굶어죽을문제가 아니라, 앞으로 굶어죽을지 모른다는 두려움이나, 저 물질을 소유하지 않으면 난 사회적으로 하등급이 될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의해 기를 쓰고 그 물질을 소유하려는 거지.글쓴이가 자본을 지금 물질과 같은 동의어로 사용하고 있다면, 그건 근본적으로 삶이란게 앞으로의 생존에 대한 두려움을 기반으로 한 인간의 행동들이잖아. 죽음 앞에 두렵지 않은자 누가 있으랴라는 말처럼. 고로 예나 지금이나 미래가 두려우니 돈, 양식 모으려는건, 인간, 생물 행동의 기반이다
애초에 돈도 언어나 수학이랑 똑같은 사람과 사람사이의 커뮤니케이션이기 때문에 그런 식의 진화가 엄청 빠르지.
지금 수학을 보면 현 세계에 대한 파악과는 완전 딴판으로 앞질러나가서 다른 세상을 만들어 내고 있고
언어는 이미 오래전부터 신화니 뭐니 해서 현실과 다른 세상을 만들고 있지.
또한 예술계통은? 미술은 현실에서부터 독립적인 미를 찾아내는데 성공했고 음악또한 그런현상을 보이고있어.
이건 자본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의 의미부여와 상상력과 사회적 체계가 만들어낸 힘의 문제지.
단지, 자본이 그렇게 유별나게 강력한 이유는 단지 거기에 욕망이 첨가 되었다 정도의 문제겠지. 하지만 돈이 그런 암처럼 증식하지만 철학이나 수학이나 언어나 예술이나 의미에 매달려있는 학문들은 죄다 그래.
아, 시발. 글 적다보니 첫댓글에 오류있네. \'사람과 사람사이의 커뮤니케이션\'이 아니라 그냥 \'의미부여로 만들어졌\'기 때문이라고 봐줘. 커뮤니케이션도 의미부여잖아.
솔직히 수학처럼 완전 별세계를 만들어서 철학처럼 무지막지하게 광범위한 학문이 아닌 이상 학문의 영역을 침범할 수 없는 학문을 제외하면 학문과 다른 요소와 연계는 거의 당연하다시피 한거 아니야?
내가 올린 글로 이런저런 다양한 논의들이 많이 있어서 고맙고 뿌듯하네. 몇가지 제기된 부분에 대해 나름의 의견을 말하자면, \"자본\"을 어떤 인격적 특성을 가진 개체로 보고 그 주체성을 의식한 사람이 있는데, 내가 여기서 다룬 자본의 개념에는 주체성까지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게꼭 틀렸다 맞다 보다도 내 이론에는 그 개념까지는 딱히 끌어오지 않았다고 봐야지. 그것 역시 나름의 재미있는 논의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마찬가지로 거기에 반대해서 자본의 주체성을 부정한 사람도 있는데, 그 입장 역시 타당성은 있을테고, 또 내가 본문에서 주장한 이론과는 아마도 조금 더 맞닿아 있을 것이다. 실제로 내가 여기서 다룬 자본은 하나의 객체나 현상적 요소로서일 뿐이지 주체성이 부여된 어떤 인격적 개체는 아니었거든. 많은 부분 그렇겠지만, 특히 이 자본의 인격적 인식이나 주체성에 대해서는 그 해석이 많이 열려있는 것이라 \"자본은 OO인데 왜 XX라고 하냐?\"라는 식으로 딱 잘라 정의를 내려 뭐는 맞고 뭐는 틀리다 할 부분이 아니라고 생각됨.
여기서 제기된 자본의 정의 자체에 문제를 제기하고, 특히 \"자가 증식\"이라는 개념과 돈, 혹은 \"화폐 가치\"로 정의하는 것이 자본이란 단어의 올바른 사용이라는 문제제기도 있었다. 이것 역시 물론 타당한데가 있지만, 이런 문제제기를 했다는 자체가 거꾸로 말하자면 내가 자본이라는 단어를 통해 나타낸 개념이 무엇인지에 대한 파악이나 이해는 가능했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그렇기에 그런 문제제기를 한 사람들은 오히려 본인은 언어적 소통 자체에 큰 어려움을 겪지 않고 간파해 볼 수 있었다는 얘기가 된다. 다만 용어의 불확실성으로 인한 소통의 문제나 오독의 여지에 대해 지적한 것이니 그 부분은 나도 고려가 필요할 듯 하다. 하지만 솔직히 위에서 말한 이유로 소통의 문제가 적음이 증명된 셈이니 무난하다 생각된다.
다만, \"화폐 가치\"의 개념이 옳은 정의라는 입장은 현재의 논의 내에서 사실 큰 무리 없이 수용이 가능하므로 별 문제가 없는데, \"자가 증식\"의 개념이 자본의 필수불가결한 정의라는 점에는 동의하기 어렵다. 자본론이나 어떤 특정 경제/사회 이론의 범주 하에서 성립되는 개념일지 모르나 오히려 그 정의는 더욱 심하게 폐쇄적이고 한정적인 정의이기 때문에, 자본의 패러다임을 확장하고자 하는 이 논의에서 다른 아주 한정적인 논의의 개념을 강제할 당위성은 없다고 생각이 된다. 오히려, 가장 일반적인 경제학적 정의로서의 자본의 개념은 이 글의 논의에 아주 잘 부합된다고 본다.
어떤 개념에 대한 \"정의\"와 그 개념에 대한 \"이론적 해석\"을 혼동해서는 안된다고 본다. 그 둘이 물론 상호영향을 주는 것도 사실이고, 다소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그 존재 의의와 형성 과정에서의 고려점 및 시사점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기 때문.
마지막으로 볼코프의 지적에서, 어떤 학문이든 구조나 패러다임이 존재하고 그것을 통해 인식을 시도하고자 하는 것은 마찬가지인데, 중요한것은 그 영향력이 어느정도인지, 또 그게 어느선까지 받아들여지는지, 그리고 어느 영역까지 잠식했는지에 이 담론의 포인트가 있는 것임. 예를 들어 \"만물은 음악의 패러다임으로 다 설명이 가능하다!\"라고 소수의 음악학자들이 주장하는 패러다임과, 사회 전반에 걸쳐 적용되는 패러다임의 차이인거지.
사회적 현상의 파편만 보면 그럴싸해 보이는 글이겠지.자본주의는 긍정적인 면이 더 많기 때문에 유지되고 있지만 중세 기사도가 진리였던 시대가 있듯 지나가는 과정일 뿐이야.인간은 변해가는 것이 아니라 욕망에 적극적이 되었을 뿐이지.의식의 주체는 항상 자신의 도덕을 감시하고 있지.즉 네가 잘못한 것은 네가 제일 잘알듯이.도덕적 관점은 네가 얼마나 타락했느냐에 좌우 될뿐 결코 자본주의가 더이상 선악으로 판단할수 없다고 착각하는것은 단순한 사고일 뿐이지.전쟁의 승리는 최후에 웃는자 이듯 아직 인간 역사가 안끝났으니 자본주의를 부정할수 없다고 단정하는 것은 디시질다운 생각일 뿐이다.
솔직히 자본이 모든 가치를 표방하는것에대한 걱정이나 의문은 사실 당연한거아닌가? 돌연변이적은 문제들이아니라
사실자본주의라는게 고대시대부터있어왔잖아 편리성때문에 화페를주조했고 그화폐에 사회적약속이나 동급의 가치를 부여해서 사용해왔지 난 더신기한게 돈이라는가치자체가 약속이라는 신용 사회의 믿음이 이토록 적용되어졌다는게 신기하다 ㅋ 결국 화폐에대한 굳건한 믿음은 단지종이조가리에 불가한 화폐를 금본위제도라는 동급의 가치를 약속하는 마지막 보증까지도 없애버렸잖아
이래서 고정관념이란 무서운건지...다들 내가 자본 혹은 자본주의를 비판하고 있다고 당연시하는 이유가 뭐지? 난 그런 어떤 부정적인 시각을 드러낸 부분은 전혀 없었다고 보는데. 오히려 이 자본의 패러다임에 대한 내 태도는 극히 가치중립적이다. 그리고 snakeagle의 말 중 자본주의를 부정할 수 없다고 단정하는 것은 역사적 맥락에서 짧은 판단일 뿐이라고 했는데, 나는 거꾸로 생각한다. 오히려 역사적인 맥락으로 볼 때 더더욱 부정하기 어려우며, 그럴수록 인정 및 긍정이 있어야 극복 또는 초월을 통한 새로운 시발점이 비로소 생겨난다고 본다. 그렇다고 내가 굳이 자본주의를 어떤 극복의 대상으로 상정한 것도 아닌데, snakeagle은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듯해서 하는 얘기.
아주 근본적으로 자본주의는 돌연변이적문제들을 표출하는게아니라 그본이되는 화폐라는 자체가 모든 노력가 대가에 상응하도록 원초부터 설계되었기때문아닌가?
자본=욕망으로 연결시키는 snakeagle의 관점은 전통적 자본주의 및 그 비판에서는 충분한 타당성이 있지만, 현재의 자본을 단순히 욕망 하나의 가치척도만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 나는 그렇지 않다고 보았고 바로 거기서 이 이론이 출발했다고 볼 수 있다. 물론 snakeagle이 말하는 가치평가에서 내가 완전히 자유로울 수야 없는 노릇이지. 나 또한 나 스스로의 패러다임에 의해 제한되는거니까. 하지만 도덕적 관점을 언급한 것은 내 논의에서 어느 정도 그 부분에 대한 답변 또한 포함하고 있는데, 그 부분에 대해서 정확히 어떻게 설명하고자 하는지는 들어보고 싶군.
$이 말하는 \"자본주의\"하고 여기서 말하는 자본의 패러다임이 꼭 일치하거나 심지어는 연장선상에 있는 것이라고 보기에도 약간 무리가 있을수 있다. 전통적 자본주의하고는 이미 꽤 거리가 있게 되어버렸다고 생각하거든.
나도 이글에대해서는 전혀비판적이지않아 문장형식은훌륭하고 ㅋ 피상적으로는 복잡한명제를 간단하게 분리해놓은 거같다고할까?
그러니까 ㅎ 현재의자본주의에서 전범위를걸쳐 자본이 다른가치를 잠식하고 심지어 대표까지하고있다는거잖아 이말이 하고싶은거맞지?
자본이 다른 가치들을 대체했다기보다, 기존의 거의 모든 가치에 자본의 속성을 부여하고 있다, 라는 표현이 조금 더 정확할 것이다.
근데 물물교환의 폐헤와 편리성을 위해서 화폐를 주조하게된이상 그순간부터 고대문명의 그시간부터 화폐는 가치를 대표하고있었던거잖아 사실 화폐에 대한인류의 믿음이 이정도까지 커진걸보면신기하긴하다 유동적인 화폐를 이토록 신임하는걸보면 화폐의사회성은 그어떤물건보다 높은거같아
화폐 가치를 필두로 한 경제라는 것은 물론 오래전부터 있어왔지. 사회도, 정치도, 도덕도, 윤리도, 종교도 다 오래전부터 있어왔다. 하지만 어떤 도그마 또는 어떤 패러다임이 사회 전반에 만연하게 되느냐 하는 현상적인 부분은 당연히 시사하는 바가 있다는 것. 그리고 이것은 아직완전히 정리된 부분은 아닌데, 자본이 기존의 어떤 패러다임과도 다르게 갖는 차별점 혹은 특징 중에 하나는 \"생존\"과의 밀접한 연결 속에 있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음.
한참 앞에 나온 얘기에 대해 좀 비판 할게 있는데, 형이 말하는 \'자본의 패러다임\'(물론 자본주의와는 조금 다르겠지)에 어떤 윤리관이든 대입해서 성립할 수 있다고 했는데, 칸트 윤리학을 대입 했을 때 어떻게 성립하는지 궁금하군. 벤담이나 루소같은 사람들은 \'공리\'와 \'계약\'이라는 개념때문에 비교적 쉬워보이긴 한데, 칸트의 \'정언명령\' 개념이 자본과 어떻게 연결될지 무척 궁금해. 근데 마르크스와 니체 이후의 철학은 (실제적인 행동 양식에 관한) 윤리학이랄게 없어서 딱히 얘기 꺼낼게 없네.
생각보다 좀 포괄적인 관점에서의 적용이라고 해야겠지. 일단 먼저 칸트의 정언명령을 이제 실질적인 도덕적 기준으로 변환하는 작업이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도덕적 기준이란건 다분히 상황과 맥락, 더 거시적으로는 시대와 문화에 의존적이니까 그 부분은 여기서 얘기하는 패러다임의 몫은 아닐 것이다. 그리고 어떠한 \"기준\"이란 것은 곧 어떠한 \"가치\"와 상응하게 되는데, 예를 들어 \"사회가 정의로운가 아닌가\"의 기준을 \"인간이 얼마나 자유로운지\"를 기준으로 한다면, \"자유\"라는 가치에 대응하고 있는 것처럼 말이야. 그렇다면 자본은 \"자유\"에게 그 가치에 걸맞는 자본적 가치를 설정시킴으로써 그 가치에 대한 자본적 존중을 실체화하는거지.
인간도 어쩔 수없는 동물인지라 끝없는 욕망을추구하기때문에, 욕망을 충족시킬 수 있는 것을 진리로 삼는 행위가 가장 쉬우면서 최적의 선택일 것이고 욕망을 충족시킬 수 있는 \'돈\'에 진리성을 부여하지. 결국은 인간의 역사는 아무 생각없이 발전한거야.
욕망에 진리성을 부여했다기 보다, 기존에 욕망과는 분리된 것이라고 생각되었던 가치에, 또 기존에 오직 욕망 따위에만 부여되는 것이라고 생각되었던 자본의 속성이 부여되고 있다는거지.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조금 확장시켜 얘기하자면 어떤 형이상학적 패러다임의 변화에 좀 더 가깝다.
사후적이지 선각적일 수 없다는건, 사실 철학이라는 학문 하나에 국한된 비판은 아닌 것 같은데? 오히려 \"학문\"의 형태를 띄고 있는 거의 모든 분야의 학문 전반에 대한 회의이자 비판이 아닌지. 경제학자들을 가리켜 \"자신이 어제한 예측이 왜 오늘 맞아떨어지지 않았는지 내일 설명해낼 수 있는 사람\"이라고 한 비판도 유명하고 말이야. 철학은 어떤 출발점이나 시발점이어왔던 역사가 많기 때문에, 철학이 사후적이라고 말하는 것은 조금 의아한 평가가 아닐 수 없네.
이 패러다임에서 자본이 상징하는 것을 단순히 욕망이라고만 읽어내는 해석은 조금 답답하다. 욕망이 다른 가치들을 끌어내리고 그 자리를 빼았았다는 이야기가 아니라, 자본이라는 속성이 욕망 외에 다른 가치에도 부여되고 있다는 현상에 대한 고찰인데 말이야.
그러니까 실례를 들면 예전엔 돈많은 부잣집 딸이라면 천박하게 봤지만, 이제 패리스 힐튼이 오히려 시대의 아이콘이자, 자유로움의 상징으로, 천박함으로 무시할 수 없는, 돈의 위엄, 일상 질서와 엄숙함에서의 탈피로 사람들이 동경하는 대상이자 가치 파급자가 된 것과 비슷하다고 보면 될까? 드라마 시크릿 가든에서 처럼 현빈이 이제 재벌가 아들, 돈많은 걸로 내세우는게 아니라, 돈이 많은 재벌 아들이지만 또 그렇기에 좋은 교육을 받았고, 사회 지도층 운운할 수 있을만큼의 사회적 자신감을 지닌 자로 묘사된다는 것. 자본에 욕망이 비추어지면서, 또한 사람들이 자본 자체를 존경하게 되는 것, 그걸 말하는건지 헷갈린다. 이거 비슷한 이야기를 움베르트 에코의 칼럼에서 본 것 같은데. 참조바람.
패리스 힐튼의 예는 내가 말하고자 하는 바와는 전혀 다르다. 위에서 보면 \"사원복지\"에 대해 설명한 리플이 있는데 그 리플을 참조 바람.
자본주의에서 모든 가치는 자본으로 환원된다... 자본주의 모든 가치의 적도는 바로 자본이다. 그리고 우리는 자본주의 세상에서 살고 있다.
많은 생각을 하게하네요.
자본을 보는 시선만 약간 바꾸면 많이 바뀔..
개똥철학 ㅉㅉ
글쓴이는 뉴스도 안보나? 요즘 이딴 글 싸지르면 경찰에 잡혀감.
이런 글 쌀때는 콜센터 111에 문의하고 싸라
너는 자본이 처월적인 짱이다...라는 결론은 서두에 떤져놓고 아무런 설명도 안하고 그냥 계속 짱이다라고만 반복하고있다. 글 쌀줄 모르냐?
자본주의 사회에서 모든 가치가 자본으로 환원된다고 했는데, 그렇지 않은 경우는 어떻게 설명할 수 있나요? 예를들어, 우리가 친구를 만나는 것은 그 친구가 경제,사회적 가치가 높기때문에 나에게 어떠한 득이 될것이다.. 이런 마음으로 만나는건 아니잖아요. 단순히 친구와 만나는 시간이 즐겁고 유쾌하고해서 만나는건데.. 설마 친구와 만나는동안 느끼는 나의 즐거움, 유쾌함도 자본이라는 가치로 환원된다는건가요? 와우.. 어렵네요!! 공부 많이 해야 겠습니다.
어렵게 자본이란말쓰지말고 걍 머니
내가 댁이 말한 사원복지 리플 곰곰히 읽어봤는데 그게 결국 현빈의 사회 지도층 운운 발언과 그게 히트한 거랑 같은 맥락 아냐? 횽, 글을 너무 어렵게 쓰면서 자기만 아는 암호로 몰아넣어가지 말고,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게 쉽게 만들려고 생각해봐. 그냥 학문적인 글이나 사유보다, 그 말을 그 분야가 아닌 사람에게 얼마나 이해시킬 수 있느냐가, 그것이 가장 중요한 능력이라 생각해. 그럴려면 항상 내가 가진 이론이 우리 현실 상황에 어떻게 적용되며, 어떤 예시분야가 될 수 있는지를 잘 생각 좀 해봐.
자본주의의 자기보존 메카니즘은 언제나 사람보다 돈이 우선시되더군. 마치 \'자본\' 그 자체가 유기체처럼 자신을 보존하기 위해 저항하듯이 말이야. 난 천칭이나 새로운 기준으로서 자본의 기반의 강해지고 있는걸 타락이라고 생각함. 자본이 돌아야만 연명할 수 있는 사회에게 있어 부패란 부산물이 아니라, \'본질\' 그 자체지
이러한 이기적 메카니즘이 사회운용원리의 일종이라고 생각하는건 지나치게 낙관적이라고 생각한다. 체제 자체가 완전히 다시 짜여져야 할 정도로 결함 투성이야
사원복지의 예시와 패리스힐튼/현빈의 사회지도층 예시에는 거리감이 있다고 나는 느끼는데, 여전히 같은 맥락으로 느낀다면 내가 읽지 못하는 어떤 맥락을 보고 있거나 다른 관점에서 둘을 묶어 생각할 수 있는지도 모르겠다. 내가 보는 관점으론 그 둘은 약간 다른 예시라고 하는 것은, 패리스힐튼이 정당화되거나 동경의 대상이 된다는 것은 신분상승이라거나 욕망 자체를 다른 전통적 윤리적 가치보다 우선시하는 것을 합리화시키는 것이라면, 내가 제시한 모델에서는 그런 근본적 욕망과 윤리적 가치를 둘 다 똑같이 자본으로 환산한 뒤 그 둘을 동일한 잣대로다룬다는 것이다. 그리고 사원복지라는 윤리적 가치는 단순히 월급짜게 주고 착취하는 것보다 더 높은 기대가치를 가지므로 그 윤리적 가치를 받아들이게 된다는 얘기.
모든 가치가 자본으로 환원되었다, 라고 종결지은 것은 아니니 d의 문제제기는 충분히 정당하다. 나는 단지 기존에는 자본과 대립하거나 혹은 의식적으로 자본보다 우월한, 혹은 고상한/가치있는 개념으로 생각되어졌던 어떤 것들이 이제는 자본으로 수치화되고 있다는 현상에 대해 설명한 것이다. 약간 치사하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극단적으로는 \"기회비용\"이라는 경제 개념은 엄청나게 많은 것들에게 잠정적으로 간접적 자본화를 시키는 개념이라고 볼 수도 있다. 돈이 되는 무엇무엇 대신 나는 더 가치 있는 ~~을 하겠다 --> 라는 판단은, 경제적으로 해석할 때 ~~라는 행동에 그러한 기회비용을 부여할 수 있게 해주니까 말이야.
나름 최대한 단순한 어휘와 표현으로 명료하게 풀어내려고 쓴 글인데 암호로 느꼈다니 부족함을 느낀다. 지금으로선 이게 내 나름 최대한 쉽게 풀어쓴 거였는데, 덧글로 계속해서 논박을 하고 보충을 하는 것 역시 이해를 돕기 위한 노력이라고 봐주셈.
자본주의의 메커니즘이 사람보다 돈을 우선시한다. 꼭 틀린 말은 아니라고 본다. 하지만 \"돈\" 자체는 아무것도 나타내지 않아. 그 \"돈\"이 상징하는 어떤 가치가 반드시 있게 마련이지. 중요한건, 여기서 논하는 자본주의는 모든 것을 자본으로 환원시킨 뒤, 그 자본화된 수치들을 다루게 된다는거야. 사람의 자본적 가치가 다른 무엇의 자본적 가치보다 못하다면 사람을 덜 중시하게 되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사회적으로 사람을 중시해야 된다는 인간론이 크게 득세한다면? 그것은 곧 \"인간존중\"이라는 개념의 자본적 가치가 상승한다는 것으로 바꾸어 말할 수 있다는 거지. 고평가된 주식처럼 말이야.
이 체제가 어떤 종결자나 완전체라는 식으로 나도 생각한 것도 아니고, 그 문제점을 제기하지도 않았고, 물론 그러니 어떤 극복해야할 당위성이란 것도 제시가 안되고, 따라서 돌파구나 해법에 대한 의견 역시 제시가 안되고 있다. 나는 아무래도 이런 극단적 자본화 확산의 양상에 대해 가치판단을 보류하고 있어서 그런 듯 해. 실로, 자본이 가치 판단의 패러다임이라고 상정한 지금 단계에서 이에 대한 가치판단을 한다는 자체가 몹시 어렵기도 하고 말이야.
글쓴이의 말을 보면 자본과 가치의경계가 모호해지고 있다고 했는데, 그건 인식의 차이가 아닐까? 내가 토익 공부를 하며 높은 점수를 받는게, 단지 토익이라는 어떤 공적인(대다수가 인정하거나, 대다수가 시험을보는) 시험에대한 나의 영어공부의 완성정도를 파악하기위해 하는거라면 그건 자기만족을 위한것이고, 충분히 가치의 개념이 적용되는거 아닐까? 하지만 타인이보면 그건 스펙을 쌓는거고 결국 그 사람의 자본력을 높이기위한 행동이라고 판단하잖아, 그럼 가치야? 자본이야? 글쓴이는 대다수의 사람들의 입장에서 쓴거지? 그럼 자본이려나, 아 그리고 질문. 자본이란것은, 다른개념의 속성을 취하던지 아니면 다른개념이 자본에게 속성을 주었던지 하면서 다른개념과 자본이 동일시 될수있어? 그럴 수있다면, 어떤것이 그렇지?
동의합니다. 돈이 인간을 먹고있죠 개개인의 이성과 감정모두 돈의 영향을 피할수없고요 우리사회가 정의한 정상성을 누리려면 꽤나 많은 돈이필요합니다.
개쩌네. 글도 쩔고 리플도 쩔고 오랜만에 디씨에서 정독하느라 고생했다
오래된 글이지만 나도 글쓴이에게 동의하는 점이 있어서 그냥 쓴다. 난 덕훈데 만화, 애니메이션 부분에서 그런 자본화 논리가 득세하고 있는 것 같다. 요즘 나오는 미소녀 몇명이 나와서 잡답하는 씹덕애니메이션에 대해서 논쟁을 하면 작품성이 없어서 안좋다는 편과 수요가 있으니까 그런게 나온다는 편으로 나뉘게 된다. 후자의 의견은 대충 그런게 돈이 되고 만화, 애니메이션도 돈버는 사업이니까 그럴 수밖에 없다고 하는데 물론 생산자 입장에서는 그런 논리가 통하겠지만 문제는 소비자들도 그러한 논리를 받아들이며 생산자의 자본적인 의도의 작품을 옹호하고 자본적인 논리로 합리화하게 된다는 것이다. 만화, 애니 등에 예술성을 말하면 비웃는 사람도 있겠지만 엄연히 스토리가 있는 장르의 하나로써 최소한의 작품성은 갖춰야 한다고 본
작품을 소비하는 사람들은 적어도 자본적인 관점에서 그것을 옹호할게 아니라 그 안에 있는 가치 즉, 스토리, 구성, 캐릭터, 미술, 참신함, 감동, 의미있음 등으로 작품을 옹호하거나 평가해된다. 어느정도 수준의 소비자가 있는 풀에서 좋은 작품이 나올 수 있지 단순히 그런게 팔리니까 요즘에 그런 게 나온다는 수동적이고 얕은 생각을 가지고 있으면 애니계는 점점 다양성을 잃고 폐쇄적이 되어갈 것이고 지금도 그렇다. 이건 위 맥락하고는 상관없고 그냥 내가 하던 생각인데 자본적인 생각은 진화론이나 무의식만큼이나 어디 적용하기 쉬운것 같다.
한 마디로 \'자본을 제외한 다른 모든 가치가 자본으로 환원된 후에 측정된 것으로 가치의 정도를 나타낸다.\' 그러므로 자본으로 환원된 가치의 정도가 낮으면 그 본연의 가치가 고평가 되든 저평가 되든 왜곡될 수도 있다는 함축적인 결론에도 도달할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