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갤에서 가장 많이 하는 논의 중 하나는, 그래서 과연 \"철학\"이 무엇인가 라는 주제일 것이다.


그 단어가 주는 어떠한 권위나 고정관념, 혹은 심지어 신비감에서 비롯한 의견도 있고,

이러한 속성들에 대한 막연한 반감으로 그 반대 극단으로 치닫는 의견도 있다.




물론 정답이야 없겠지만,

정답이 없다는 것은 아무 답이나 다 맞는 것다는 뜻이 아니며,

어떠한 답을 찾고자하는 노력조차 의미가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정답이 없는만큼 답을 찾고자하는 노력에 특히나 많은 주의와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지금은 \"철학\"이라는 학문을 정의하는데에 대해 하는 말이지만,

이런 답을 찾고자하는 노력이란 모든 철학적 사유 전반에 걸쳐 주지해야 될 것이라 본다.)




철학을 나는 짧게, \"생각의 지도를 그리는 학문\"이라고 하겠다.

여기서 \"생각의 지도\"라는 표현은 약간 중의적으로,

생각이라는 것에 대한 지도를 그리는 것일 수도 있으며,

종이와 펜을 재료로 그리는 지도가 아닌, 생각을 재료로 그리는 지도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며,

이 둘 다 철학의 범주에 포함되지만, 여기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두번째 의미이다.

철학은, 생각으로 다루는 모든 대상과, 생각하는 방법, 그리고 심지어는 생각함 그 자체까지도 다 다루며,

인간의 생각의 모든 면에 대해 지도를 그리는 작업이라는 것이다.



지도라는 것은, 단순하게 말해서 실제로 존재하는 그 무엇에 대한 정보를 담고 있는 그림이다.

즉 지도상의 무엇은 실존하는 무엇에 대응하고 있으며,

지도가 그 대응을 어떤식으로 이루고, 대상에 무엇을 포함하고 있으며,

또 그 대응된 대상을 어떻게 표현하는지에 따라 천차만별의 지도가 나올 수 있다.

우리가 길을 찾을 때 쓰는 지도와, 인구분포를 볼 때 쓰는 지도와, 지형을 볼 때 쓰는 지도는 다 다르다.

마찬가지로 철학이란, 생각으로 그린 지도이며, 그 대상 역시도 다양하다.

이러한 지도가 나타내고 있는 어떤 표현의 방식, 즉

 - 길을 그린건지, 지형을 그린건지, 인구밀도를 그린건지, 자원소비를 그린건지 -

등을 다른 말로 \"패러다임\"이라고 한다.



길을 찾는데 지도가 유용한 것은, 그 지도가 그 대상에 대한 모든 정보를 담고 있기 때문이 아니다.

그 지도만 보고 어디 길이 포장상태가 좋은지, 어디 길이 덜 막히는지, 어느 길이 정확히 몇차선인지는 알 수가 없듯이,

지도는 절대 완벽하지도 않고, 완벽할 수도 없다. 사실 \"정보\"라는 것에는 한계가 없기 때문이다.

단지 그 지도는 어떤 주어진 한정된 범위의 목적 내에서, 나름 훌륭하게 합리적인 시스템을 구현했기 때문에 가치가 있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플라톤의 철학이 위대한 것은, 플라톤이 그린 지도가 완벽했기 때문이 절대 아니며,

우리가 그가 그린 생각의 지도를 보고 그가 다루고 있는 대상 - 예를 들면, \"존재\"라는 형이상학적 개념 -

에 대해, 보다 깊은 어떤 이해를 얻어낼 수 있기 때문인 것이다.

그의 철학은 그 이후 많은 형이상학자들을 비롯한 철학자들에게 비판받고 또 부정당하면서 해체되었지만,

그렇다고 더이상 낡아빠졌고 \"틀렸\"으니까 더 이상 쓸모없는 것이 아니다.

새로운 지도를 만드는 사람에게 절대적으로 가장 유용한 것은, 바로 낡은 지도와, 그 지도가 담고 있는 \"지도 만드는 방법\"인 것이다.




또 이 개념으로, 철학이 왜 거의 모든 순수학문의 근간이 될 수 있었는지에 대해서도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고대 그리스의 소크라테스 이전 철학자들은 만물의 근원에 대해 탐구하며,

만물이 어떻게 구성되어 있을까를 생각하며 그 생각으로 만물에 대한 지도를 그린 것이고,

이 지도는 아리스토텔레스에 의해서 큰 틀이 정리되면서 자연과학의 근간을 이루었고,

이 지도를 점점 더 구체화하고 계속해서 수정해나가며 거기서 물리학이나 화학의 지도 같은 것이 유래된 것이다.

그 수정작업은 아주 작은 부분일 수도 있고, 때로는 지도 전체를 뜯어고치거나 처음부터 싹 새로 그리게 되는데,

천동설을 지동설로 바꾼 갈릴레이나, 뉴턴의 역학을 완전히 뒤집어 새로 지도를 그리게 만든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 등이 그렇다.



마찬가지로, 윤리나 사회, 더 근본적이로는 \"인간\" 자체에 대해 탐구했던 철학자들은

인간 본성에 대한 지도를 그리고, 또 이를 확장해 사회나 정치 등에 대한 지도까지도 그렸으며,

이 지도가 곧 사회학의 지도, 정치학의 지도, 경제학의 지도, 심리학의 지도 등으로 각각 분화되어 이어졌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또, 우리가 왜 철학을 절대적인 진리와 동일시해서는 안되는지도 이 비유로 설명할 수 있다.

바로 지도는 절대로, 다루는 그 대상 그 자체가 될 수 없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지도는 지도일 뿐이지 대한민국 자체가 될 수 없다는 것이다.



우리는 땅 위에 살고 있지 지도 위에 살고 있는 것이 아니며, 

그 어떤 지도도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계를 100% 표현하지 못한다.

100% 표현한다면, 그것은 복제이지 지도가 아니며,

사실 복제는 지도만큼 유용하지도 못하다.

지도는 대상에 대한 정보를 추출해내어 잘 정리한 것인데,

대상 그 자체를 보여주면 정보를 알아서 추출해내라는 말 밖에 되지 않으니, 무슨 도움이 된단 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