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에도 그랬지만
아가리를 닥치고
말하지 말고
눈 앞을 보고, 들려오는 소리를 들어보고, 바람을 맞아보고, 바람/공기의 온도를 느껴보고,
내 발이 바닥을 밟고 서있는 그러한 힘을 느껴보고, 움직일 때 느껴지는 운동감을 느껴보자.

결국, 인간은 여기서 출발한다.
그것을 한 개인이 체계적으로 정리했건 안했건,
그것은 정리를 했느냐 못했느냐의 문제이지, 우리는 이것을 이미 느끼면서 살아간다.

왜 문법이란 게 생겼을까?
문법은 사유의 틀이다. 다시 말해 인식의 틀이다.
내용을 제거했을 때, 인식의 틀이 나온다.
언어의 문법이라는 것은 그러한 인식의 틀이다.
그런데 언어학 한답시고 까불어제끼떤 씨발놈들 몇명들이, 마치 그러한 것을 '언어의 고유한 것'이라는 지랄 똥싸는 소리를 해서
말 배우는 사람들을 그 후대 대대로 골로 보내버렸다.

1형식
2형식
3형식
4형식
5형식이 있다고?

지랄 똥싸는 소리하고 있네.



인간은 정확히 '감성'과 '지성(오성이라고도 하는) 그 두 가지 큰 틀에서 시작한다.
그리고, 그 둘을 매개하는 '도식'을 갖고 있고,
여기서 몇 가지 더 추가해야할 것이 있지만, '감성과 지성의 전체를' 과정'이라는 것으로 풀이해낼 수 있다.
(자 그런데 고민해보라. 도대체 이러한 '시니피앙'으로 기록해놓은 것은 무엇 때문일까?)

다시 말해서
인간은 '감각, 체험, 느낌'에서 시작하고, 그것에서 자연스럽게 인간의 '지성'이 개입된다.
물론 여기에 어느 종류의 것이 얼마만큼 있는지는 의견이 분분하다.
그리고, 그것은 개인이 반드시 스스로 찾아내야 하는 것이다.
선험철학은 어떤 것이 아니라, 누구나 자기 대가리 속에 존재하는 스위치를 찾아내야 하는, 튜토리얼 같은 것이다.
(아마 이것이 알레테이아의 진정한 뉘앙스였을 것이다. 우리는 걷고 있지만 걷는다는 게 왜 가능한지 모른다. 그런 걸 찾아내라는 거다.)

위의 이야기를 다시 이어보자.
1형식, 2형식, 3형식, 4형식, 5형식은

제자백가 시절에 수많게 쏟아져내려왔던 일개 지식인들을,
후대가 자기들 편하게 묶고 정리한 것처럼,
또는,
후대 사람들이 구분하기 쉽게 각각의 예술가들을 '인상파, 야수파, 초현실주의, 하이퍼리얼리즘, 팝아트'등등으로 묶어서 땡처리할려고 하듯,
분류해놓은 것에 불과하다.

가령,
1형식은 인식의 틀로 따지면 ''능동'에 가깝고
2형식은 인식의 틀로 따지면 전형적인 S는 P이다의 것이다. (이는 분분한 철학의 역사를 가진다. 형상을 부여하느니, 속성이 부대끼느니 등등)
3형식은 인식의 틀로 따지면 ,, 고전의 것과 무관하게 '힘과 관련된 사건도식에 가까운 것이고,
4형식은 인식의 틀로 따지면 알다시피 '소유'와 관련된다. 그 중에서 누군가가 누군가에게 전달하고 받는 그런 것과 관계 있다.
5형식은 인식의 틀로 따질 것도 없고, 4형식에 그것의 속성을 추가시킨 것에 불과하다.

어떻게 이런 조잡한 틀을 가지고, (요즘도 그러한가?) , 문법이라고 우기며 뻔뻔하게 나댈 수 있을까?


잘 생각해보자.
위의 숫자 1,2,3,4,5는 편의상 묶어놓은 것이고, 아주 빈번하게 쓴다고 생각되는 것을, 어떤 놈의 새끼가 요약노트 정리하듯, 정리한 것을
다른 사람들이 편하다고 쓴 것에 불과하다.
다시 말해서, 저런 식의 문법은 누군가의 문법에 불과한 것이지, 저것이 어떤 지배적인 권위를 가질 필요는 없는 것이다.

오히려 다른, 틀을, 재빨리 갈아끼우던가,
더 좋은 틀이 있으면, 그것을 더 강력한 설득력을 바탕으로 뒤집어엎어야 되는 것이다.


문법은 언어학의 소유물이 아니다.
더 정확하게 말해서, 인간의 인식 자체가 '기호'로 나온다. (시니피앙)
여기서, 그러한 시니피에의 체계, 특히, 그 중에서도 '인식의 틀'과 관련된 시니피에의 체계가, 그 문법이란 것의 역할을 한다.
다시 말해서, '인식의 틀'로 '조직을 땋았을 때, 그것이 문법이 된다.
그렇게 볼 때, 위의 1,2,3,4,5형식이라는 것은 아주 위험한 문법이다. 아주 쓰레기 문법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저 문법틀의 지배적인 힘에 넘어가지 말아야 한다. 다시 말해서, 언어학을 폐기시키고, 언어를 철학의 일부로 편입시켜서 아주 가짢게 다뤄야 한다.
(이런 문법이란 것의 생김새는, (또는 내적 원리는) 심리학에서 '기억을 용이하게 해주는 방법으로서, 조직을 짜내서 정리해놓는 것과 같다.
결국 우리가 이론이라고 하는 것들도,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것들을 모두 구조적으로 연결시켜놓은 것들이다. 그것은 그렇게 만들어져야 되는 게 아니라, 누군가가 그렇게 연결시켜놓은 것이다. '인위적인 것이 있다 분명히. 그것이 너무 자연스러워서 눈치채지 못하겠든 간에, 무에서 시작하면 모든 것은 인위성이 되니, 그런 감각을 반드시 갖고 있자. 그래야 자명한 것에도 의심을 할 수 있다. 논리학의 오류는 너무 감쪽같아서 오류라고 지정해둔 것이라는 것을 잊지말자. 그 연결의 오류도 있지만, 그게 오류임에도 불구하고 감쪽같이 속아넘어가니까 의도적으로 오류라고 정리해놓는 것이다. 거기에도 기억을 위한 조직이 있다. 결국 그런식의 '오류'50가지, 등의 그룹핑은 기억을 쉽게 하기 위해서이기도 한 것이다.)


비약을 잠깐 하자.
저것이 귀결되는 바는, 결국 한 사람의 선험적 조건이, 문법이 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결국 그렇게 나타나는 문법은 무엇인가? 방금 말했듯이 선험적 조건이다 (아주 골치아픈 단어일 것이다.)
그렇다면 그렇게 선험적 조건이 우리가 알아볼 수 있게 기록되는 것은 무엇인가? 시니피앙이다.


자 이제 다시 한바퀴 돌아보자.
결국 시니피앙의 정체는 우리의 '생각(총체적인 프로세스를 다 가리켜서)이다.
그렇다는 말은 시니피앙은 그러한 생각을 나타내는 기호다. 곧, 그것은 '기억'과도 연관된다. (기록하기 위한 용도가 1번이다.)
다시 말해, 밥이라는 시니피앙은, 우리가 그 밥이고 부르는 그 시니피에를 기리기 위해서다. (표현에 뉘앙스를 대강 고려하고 넘어가자)
그 말은, 우리의 시니피앙은 1차적으로 '기억체계'를 구성하는 것으로서, 기억을 위한 것이기도 하다는 소리다.
(아주 사적이다. 언어는 그렇게 기억을 위한 것으로서 탄생한다. (사실상 우리가 감탄하고 반응하는 것도, 감탄할 때 쓰는 시니피앙을 만들어놓고, 그러한 순간이 되면 자연스럽게 그러한 기억된 코드로 발화하자는 것과 같다. 잘 생각해보자 이 부분을.)



자 이제 본론으로 돌아가자.
결국 한 사람이 보유한 시니피앙은, 그 사람이 가장 기억해야될 것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러니까 입사를 준비하는 사람은 자신이 준비하는 회사에 대한 수많은 시니피에들을 기억하게 하는, 그러한 시니피앙들로 자신을 괴롭힌다.
그는 하루종일 그러한 시니피앙을 입에 달고 산다. '저는 대학에서 회계를 전공했으며, 그러한 것이 귀사의 업무를 맡을 때 도움이 되리라고 블라블라"

그러면, 자신이 기억해야 무엇일까? 물론 그것은 알아서 찾아야 할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철학을 하고, 과학을 하고, 좀 더 진실된 것을 찾으려는 사람은 어떻게 시니피앙을 체계화시켜야할까?



솔직해지자.
우리가 어떻게 생각을 하고, 사유를 하고, 앎을 얻어내고,
우리는 신체에서 출발해야 한다. 맨 처음 언급했듯이, 우리는 처음부터 말을 하지 않는다. 아가리를 닥치고 눈으로 앞을 보고 있다.
거기서 출발하자.
우리는 '감각하고 지각하는'데서 부터 시작한다.
바로 정확히 거기서 시작하자. 우리는 분명 '감각하고 지각하는 것'을 하고 있다.
그런데 우리는 처음에는 '감각'과 '지각'이라는 용어를 몰랐을 것이다.
그래서 '응응응' 거시기 뭔가'를 한다고, 말했을 것이다. 그렇게 '응응응'을 하는 것 같기는 한데, 이걸 뭐라고 '기억시킬까?'라고 하면서,
하나의 용어가 탄생한다. 그것을 '감각'이라는 단어로 부르기로 하자는 것이다.
(이 용어는 유래가 있다. '감'이라는 어떤 전기상태의 흐름과 느낌을, '각'이라는 일깨운다는 것으로서,
그 '감각'이라는 용어는 우리가 몸에서 흐르는 그것을 깨우거나 깨여서, 뭔가 챘다,라는 것을 나타내는 '신호'다.
여기에 분명 그 시니피에의 뉘앙스가 있지 않은가? 즉, 바로 거기서 출발하는 것이다.)

즉 하나의 용어는 상당히 '반복성'이 있는 것을 근거로 한다. 그리고 반복성이 있다는 것은 우리를 매번 마주치게 한다는 것이며, 중요한 것이다.
따라서, '감각'이라는 용어가 생명력이 지속되는 것은, 우리가 매일 마주치기 때문이다.
이런 식으로, 헿헿이나 데헷, 같은 식의 용어가 아닌 이상,
우리가 어떤 용어를 만들 때에는 아주 '현실적이고' '구체적이고' 필요에 의해서, '필요'에 의해서 만들어진다.

이제 우리가 전통적으로 내려온 수많은 용어들이
어떤 기원을 갖고 있고, 어떤 근거를 갖고 있는지 알았다면,
당장 우리가 쓰는 용어들을 잘 살펴보자. 거기에 내 '사고'의 트랙들이 나타나있기 때문이다.

하루종일 보카 영어집을 들여다봐서, 기분이 좆같은가?
그렇다면 정확히 그것은, 당신의 인생과 관계도 없는 감각과 지각을 고의로 느껴야하기 때문이다.
당신이 서든어택 매니아라면, 아주 자연스럽게 서든어택과 관련된 수많은 용어를 그냥 알게 된다 (서든어택이라는 시니피에가 들어왔기 때문이다)



내 시니피앙은, 내 시니피에의 세계를 기록해놓은 것이다.
이것을 놓치면 안된다. 내가 쓰는 언어는 내가 살고 있는 세계를 반영한다. 왜냐하면 기억체계이기 때문이다.
자신의 시니피앙을 점검하자

하지만, 이런 공익광고적 뉘앙스로 끝낼 생각은 없다.
이 문제를 더 파고들어보자.

결국 당신이 파고들어서 찾아내야되는 것은 무엇인가?
지면의 문제로, 몇 가지 항목을 남겨두기로 하자. (다른 것이 있다면 찾아보길 바란다. 스스로 다 찾아내야 한다.)

1. 감각/지각-체험-느낌-지성-판단-피드백, 등등, (기억, 실수, 환상, 모든 것을 포함한다)
이런 식의 인간의 '몸'과 관련된 프로세스와 관련된 시니피에의 모든 시니피앙을 찾아낼 것.
(이것이 가장 중요하다. 결국 인간의 문법/언어의 문법은 여기서 나온다.

2. 당신에게 문제로 던져지는 그 모든 것
- 여성의 심리
- 남성의 심리
- 취직
- 대학입시
- 사업
- 법적 소송
- 싸움 잘하는 법
- 협상하는 법
- 몸 좋아지는 방법

3. 기억할 것
과거의 모든 '시니피앙의 체계'를 의심할 것.
지금도 꼬마들에게 전달되는 1,2,3,4,5형식은 아주 좆까라마이싱에 해당되는, 어떤 쓰레기 허접의 '사유 틀'이다.
그걸 왜 받아들이고 있는가? 시니피앙은 결국 시니피에의 신음일 뿐인데?, 그 말은 결국 시니피에의 기억체계일 뿐인데?
1,2,3,4,5형식이 그렇게도 효율적인 체계인가? 집어치워라.
이미 인지언어학에서는 '사건(힘), 존재, 소유, 구조'등의 도식을 이용해서, 문법 체계를 바꿔버리는 시도도 나오고 있다.
하지만, 위의 인지언어학보다, 스스로 자기 자신의 대가리를 점검해서, 어떤 선험적 조건이 있는지 찾아내서, 그것의 시니피에의 기억체계를 만들어라.
그게 문법이기 때문이다.


이 문제는 스스로 더 고민해보도록 하자. (자기 머리에 기민하게 들어가야 한다. 그런데 들어갈려면 자기 머리로 바로 들어가는 게 아니라, 주어진 외부의 것을 접한 다음, 그것이 자기 머리 속에 들어갈 때, 그 과정에서 자기 머리를 들여다봐야 한다. 조금만 생각해보면 이게 무슨 소린지 금방 알 것이다)


끝으로 화두를 던져놓고 잠깐 맺어보려 한다.
1. 시니피에에 기초했을 때,
인간의 시니피앙은 '기억을 위한 것(기억체계), 또는 '몸과 관련된 모든 신호'다.
이것은 무슨 뜻이 될까?

이것은 '문제(앞에 던져진 것)'와도 관련있다.
결국, 어떤 어휘들을 잡아야 될 것인가? 왜 책을 읽는 것일까? 하고도 연관된다.
어떤 삶을 살 것인가? 하고도 연관될 것이다.
하지만, 이 '시니피에/시니피앙'부터 고찰하는 것이 가장 근본이 될 것이다.
그런데 이건 아주 대다수에게 필요한 것이지만, 이것을 접근하려 할 때는, 홀로 들어가야할 것이다.
(몸을 먼저 분명히 체계잡은 다음, 그 다음 '문제'를 다루는 것. (그러나 실제 순서는 상관없을 것이다. 문제를 통해서도 몸을 볼 수 있으니까)

몸, 감각, 지각, 체험, 느낌, 지성(인지),
아주 방대한 백과사전적 접근도 필요하다고 본다.
만만한 문제가 아니다. 진짜 말 그대로, 알레테이아의 과정이다. (아주 현실적인 의미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