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에 결론이 있다.
'강남스타일이 왜 성공했는지 설명해라.'
니가 입사를 치르거나, 논술을 치는데
이렇게 문제가 나왔다고 하자.
너는 대강 왜 성공했는지 감은 있을 거다.
대략 다음과 같을 거다
1. 노래가 좋다
2. 흥이 난다
3. 춤이 쉽다
4. 웃기다
5. 일렉트로닉 팝은 현재 미국에서 가장 먹히는 곡이다.
6. 사람들이 패러디를 했다.
7. 톱스타들이 트위터에 언급을 했다
8. 스쿠터 브라운이 프로모션을 잘했다.
하지만 여기서 끝일까? 아니다.
이 질문은 다시 또 질문을 불러낸다.
1. 노래가 흥이 난다고 다 싸이처럼 성공하나?
2. 춤이 쉽다고 다 싸이처럼 성고하나?
3. 웃긴다고 다 성공하나? 그러면 개그맨이 가수하면 더 성공잘하지 않는가?
4. 미국에 일렉트로닉 팝이 한 두개인가? 근데 왜 싸이가 성공하는가?
5. 사람들이 패러디를 하는 이유는 뭔가?
6. 톱스타들이 싸이를 주목하는 이유는 뭔가?
7. 스쿠터 브라운이 프로모션을 잘하면 다 성공하나?
당신은 또 고민하게 된다. 이번엔 좀 심각한 고민이다.
왜냐하면 당신이 모르던 부분이 밝혀졌기 때문이고, 그 부분을 채워넣어야되기 때문이다.
당신은 이 때 두 가지 감정을 느낄 수 있다.
1. 호기심
2. 죄책감 (또는 당혹감, 수치심)
1번은 흥미로운 질문이 나와서 기쁜 것이고,
2번은 괜히 아는척 깝쳤다가 쌉혔기 때문에 창피해진 것이다.
보통 사람드은 2번에서 좌절을 느끼고, 더 이상 나가려들지 않는다. 그래서 아가리를 닥치고 조용히 지내려 한다.
하지만 그래선 발전이 없다.
차라리 모르는 걸 발견했다는 것을 기쁨으로 삼고, 목적으로 삼아야 한다.
사실 이는 뇌과학적인 테마이기도 하다. 왜 사람들은 '안다고 믿는 것'과 '실제로 아는 것'이 갈려지는가?
그것은 '표상'과 관련된 납득에 대한 느낌의 문제다. 인간은 이미지를 만들면 뇌의 내부에서 감정을 느끼게 되는데, 그것이 기쁨을 자극할 때 납득을 하게 되는 경우가 있다고 한다. (정확한 가설인지 아닌지는 모름. 아직 미약한 설명임)
당신이 사물을 어렴풋이 떠올려도, 당신은 그것을 아는 것처럼 반응한다.
가령 이런 문제를 풀어보라.
'컴퓨터가 작동하는 원리'에 대해서 생각해보라.
너는 의외로 모를 것이다. 왜 컴퓨터가 작동할까? 하나하나 다 설명할 수 있는가? 엔지니어처럼 설명할 수 있는가? 없을 것이다.
끽해야
1. 전원 연결. 전기 통함.
2. 컴퓨터 칩들이 연결되어있음.
뭐 대략 이정도 아닐까?
하지만 더 진지하게 질문해보라.
1. 전원 연결이 왜 컴퓨터 작동에 영향을 주는가?
2. 칩이 연결되어있다는 게 왜 작동에 영향을 주는가?
당신은 엔지니어가 아닌 이상 이를 모른다.
사실 그래서 엔지니어의 존재가 여기에 있다. 엔지니어는 이를 알고 다루는 사람들이다.
일단 이렇게 해두자.
1. 안다고 믿는 것과
2. 실제로 아는 것은 다르다.
실제로 안다는 것은 작동과정을 설명할 줄 안다는 것이다.
이는 막연한 이미지를 갖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기계공의 입장과 비슷하다.
인간은 결국 모르는 게 있을 수 밖에 없다. 그러면 모르는 걸 아는 걸로 바꿔야 한다.
헌데 사람들은 2번에서 멈추기도 한다. 그러지 말라는 것이다. 쪽팔리고 창피하고 죄스러운 게 아니다.
모르는 게 당연한 거고, 알아야 될 필요가 있는 거다.
그리고 당신이 실제로 아느냐 모르느냐를 구분하게 만드는 것은 '질문과 설명'이다.
너가 질문을 해보고, 설명을 해보면, 실제로 아는지 모르는지 확실하게 구분할 수 있다. 안다고 믿는것과 실제로 아는 것은 다르다.
늘
스스로에게 질문하고, 설명해보라.
거기서 막히면 실제로는 모르는 것이다.
그것을 발견하고 기뻐해야 한다. 왜냐하면 모른다는 것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만일 당신이 질문하거나 설명하지 않았다면, 아마 절대로 몰랐을 문제들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당신은 어버버 거릴 위험을 대비할 수 있게 된다.
님글 좋아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