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두
실전에 대비하라는 말이 무엇이고, 어떻게 대비하는 게 좋은지를 얘기해보자.
철학도 결국 문제해결이다. 당대의 시대 조건에 따라 문제시 되던 것들을 철학적으로 해결하려고 하는 것이다.
이 때 철학적이라는 것은 '사유의 틀'까지 파고들어간다는 것을 말하는데, 결국엔 개념화의 문제로 가게 된다.
인간이 어떻게 개념을 잡고 있는지를 태클걸고, 문제 삼는 것이 철학적 문제해결이라는 것이다.

당신을 근본적으로 재해체시키고, 재구성시켜야 된다면, 개념 수준까지 들어가야 한다.
이 때 개념은 '개념화의 결과'를 말한다. 따라서 개념 수준까지 들어간다는 말은 개념화 과정을 뜯어보겠다는 말과 같다.
당신이 아무렇지 않게 쓰는 개념을 하나하나 발생에서 형성까지 근본적으로 검토하는 것이다.
이것이 철학적 접근일 것이다. (이렇게 접근하지 않는 접근법을 뭐라고 부를까? 얼치기 철학이라고 부르자.)

* 편의상, 이 글에서 제시된 개념을 '실전'과 엮는다고 했는데,
실전은 쉽게 말해 '타자와의 마주침'이라고 해두자. 결국 실전이란 것은 나의 내부가 외부와 마주치는 것이기 때문이다.

나도 이 글에서 그런 상황들을 제시하겠지만, 당신도 여기 나온 개념들을 보면서 당신의 실제 현실과 대비시켜봐야 한다.

글쓰는 과정의 2가지 유형
글쓰기에는 2가지 접근이 있는 듯 하다.
탐구
증명

탐구
보통 '작가 노트'라고 해서, 스케치한 흔적이 있는 것은 탐구에 가깝다.
이 탐구의 특징은 개념이 명료하지 않고, 잡스럽고 산만하다는데 있다.
다시 말해 개념을 명료화시키기 이전의 정리되지 않은 스케치 흔적이 많다는 것이다.
내가 쓴 글들도 대개는 탐구에 가깝다. 왜냐하면 나는 개념을 명료하게 파악하지 않고, '파악하는 중'의 흔적을 보인 적이 많았기 때문이다.
사실 철갤에 나타나는 대부분의 글들이 이런 식이다. 그래서 명료한 글은 얼마되지 않는다. 그렇다고 이런 유형을 폄하하는 게 아니다.
다만 이 유형은 탐구에 해당된다는 것이다. (한계가 있다면 탐구형 글쓰기는 명료화시키지 않으면 이해되기 어려워진다.)

증명
증명은 탐구 이후에 가능한 글이다. 모든 것이 명료한 상태에서, 자신이 왜 명료한지를 증명해주는 식이다.
수학으로 비유하면 검산에 해당한다. 그래서 '개념 정의, 연역'이 주가되는 글쓰기다. 즉 이미 정당화된 전제가 있고, 그것을 풀어내는 식이다.
이 글이 먹히는 이유는 '앎과 모름'의 경계 때문이다. 저자는 알지만 독자는 모를 때, 이 글은 수요가 생긴다. 왜냐하면 독자가 궁금해하기 때문이다.

글쓰기의 의미
결국 두 가지와 무관하지 않다. 사실 언어는 소리다. 그러면 글쓰기란 무엇인가? 소리를 뱉는 과정이다.
소리를 뱉는다는 것은 뭘 의미하는가? 당신이 어떤 사고를 거쳤다는 것을 말한다.
결국엔 당신은 탐구를 하거나 증명을 한다. 그렇다는 말은 타자의 글을 읽는 것도 마찬가지다.
당신은 타자의 '글'을 읽어서는 안되고, 타자가 '탐구하고 증명하려는 과정'을 봐야 한다.
읽는다는 건 '해독'의 뉘앙스가 있지만, 본다는 말에는 운동의 뉘앙스가 있다. 더 정확하게는 당신은 '운동'해야한다.
다시 말해 그 상대방의 파악과정, 개념화과정, 결과를 볼 수 있어야 한다. 정확한 의사소통은 순수하게 이것을 말하고, 그 외것은 이것에 도달하지 못한 언저리가 된다. 카프카의 성을 생각하라. 당신이 전자로 읽지 않으면 언제나 뺑뺑이 돌게 된다.

기억
(일반) = 이전의 인상이나 경험을 의식 속에 간직하거나 도로 생각해 냄.
(심리) = 사물이나 사상(事象)에 대한 정보를 마음속에 받아들이고 저장하고 인출하는 정신 기능.

당신은 (일반)과 (심리)가 왜 설명의 차이를 이루는지 알아야 한다.
사소하지만 '정보를 마음속에 받아들이고 저장하고 인출한다는 표현과 '의식 속에 간직하거나 도로 생각해낸다는 것'을 구별해보자.
전자는 좀 더 과학적인 표현이다. 기계적인 느낌마저 준다. 기억이란 회상의 문제가 아니라 '인출'의 문제라고 보는 것이다. 정보의 뉘앙스가 난다.
반면 후자는 일상적이다. 굳이 비교하자면 정보라기 보다는 회상의 뉘앙스에 가깝다. 간직하고 생각해내는 것과 저장하고 인출하는 것의 뉘앙스를 구별하자.

* 미묘한 뉘앙스이긴 하나, '저장'과 '입력'에 대해서도 알아두자. 이는 나중의 논의를 위해 필요하다.
이 두 용어는 뉘앙스를 체감해놓자. 당신의 사고는 일종의 조형이다. 정보들이 빚어져서 체계가 된 것이다. (그 결과가 모형이다)
입력
- 컴퓨터나 인간의 시스템에 의해 처리되어 특정한 목적에 필요한 정보를 만들어 내기위한 자료.

저장 - 약호화된 정보를 기억 체계 속에 유지시키는 것.


편향

- 편향 (bias), 이전 경험의 회상에서 현재의 지식과 신념, 감정 등의 왜곡된 영향의 문제

- 과거로부터 무엇을 기억하는가는 실제로 무슨일이 일어났는가보다 그들이 지금 무엇을 생각하고, 느끼고 혹은 믿고 있는가를 더 잘 말해준다.

- 부시와 고어의 지지자들 모두 2000년 12월 이후 그들이 어떻게 느꼈는지에 일치하도록 그 당시의 기억을 다시 썻다.

- 또한 다른 연구자들은 후이라 현재 정서가 과거 경험에 대한 회상을 편향되게 만들 수 있다는 것을 발견

- 실제 슬픈 기억을 회상하는 것을 돕는 것 이외에 슬픈 정서는 그렇게 슬프지 않았던 기억에 대한 회상을 편향되게 할 수도 잇따.

- 편향이 기억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세가지 방식은 과거를 현재에 대체하는 것, 과거와 현재의 차이를 과장하는 것, 우리를 더 낫게 보이도록 과거를 왜곡하는 것


(자극/반응)
인간은 자극과 반응을 한다. 근데 정확히 말하면 반응과 자극을 한다.
이론적으로는 자극이 있어야 반응을 할 것이다. 하지만 실제 현실에서는 반응을 해야지만, 그 반응의 원인인 자극을 생각하게 된다.
다시 말해, 자극은 사후적 개념이다. 혹시 이해가 안가면 최초의 순간으로 가야 한다.
5살짜리 아이가 가스렌지에 손을 데서 '아 뜨거'하며 손을 땠다고 해보자.
제3자는 그게 뭔지 알고 있다. 불은 뜨겁기 때문에 닿이면 손을 때는 반응을 보인다.
하지만 아이가 그것을 알아내는 과정은 '반응(아 뜨거)'를 하고, 그 다음 곰곰히 분석을 한 다음 원인(자극=불)을 찾아낸다.

자극과 반응의 사전적 정의는 다음과 같다

자극
유기체에 작용하여 반응을 일으킬 수 있거나 일으킬 가능성이 있는 사상(事象).
좁은 뜻으로는 유기체의 수용기(受容器)에 작용하는 물리적 에너지를 이른다.


반응
자극에 대하여 유기체가 하는 행동.

자극과 반응의 관계
하지만 이를 머리속으로 연결시켜보라. 분명 자극이 있어야 반응이 있겠지만, 실제로는 반응을 하고 난 다음에 자극을 찾아내는 식이다.
당신은 불에 데이는 순간 "불에 데였으니까 아 뜨거 하겠지?" 라고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코미디가 된다.
(웃음은 근본적으로 오류/결함/비정상에 대한 반응이다.)
(물론 이를 미소와 구별할 수 있다. 편의상 웃음을 2가지로 나누고, 전자를 웃음, 후자를 미소라고 해두자.
 미소는 예쁜 것, 사랑스러운 것을 보고 나서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것이다.
 하지만 웃음은 오류/결함/비정상을 보고 생겨나는 것이다. 가령 술취한 사람이 꼬장부리는 걸 보면서 풋 하며 웃는 것은 웃음이다.)
 물론 웃음과 미소가 결합되기도 하는 복합적 증세가 있겠으나, 그것은 혼성으로 처리해두자. 웃음도 언젠가 설명할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