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글은 좀 어렵다. 행동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근데 빨리 이해하고 싶다면, 내가 쓴 글을 다 읽지 말고,
내가 예를 든 것을 보길 바란다. 그리고, 스스로 생각해보자. 이 글을 가이드로 삼는 게 좋다.
내 글을 읽고 의도를 이해하려 들지 마라. 그러면 독해에 실패한다. 내 의도가 중요한 게 아니라, 내가 든 예시가 더 중요하다.
왜냐하면 그게 내 의도기 때문이다. 내 의도를 파악하려고 달려들면, 당신은 당신의 입셉션을 투영하는 것에 불과하게 된다.
지금 내가 무슨 역설을 말하고 있나 싶을 거다.
즉, 어설프게 '의도'를 찾겠다고 전제하고 내 글의 의도를 찾아내지 말라는 거다. 그것은 당신의 의도를 투영하는 것에 불과하다.
그러니까 당신의 의도가 '의도찾기'라는 의도로 투영되는 식이다. 그래서 의도를 찾으면, 그게 내 의도일까? 아, 난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가 살면서 얼마나 그런 실수를 많이 겪는가? '나는 니가 그렇게 생각할 줄 알았어'라고 하면서, 자기 하고싶은대로 해버리는 경우가 얼마나 많냐는 말이다. 의외로 사람들은 투사를 잘 모른다. 즉, 당신의 의도인데, 마치 그것이 내 의도인것처럼 여길 수 있다. 그 따위 짓을 하지 말라는 거다.
그러니까 내 의도를 미리 말하자면, 내 글을 전부 읽지 말고 예시만 읽어라, 그리고 좀 이해 안된다 싶으면 내 글을 참조해라. 내 글을 무시해도 된다.
살다보면 자아성찰이란 얘기를 듣게 된다.
그런데 생각해보자. 자아성찰이란 게 도대체 뭔가? 나를 들여다보는 게 '방법적'으로 뭐 어떻게 되는 건가?
사람들은 이런 방법들을 제시하지도 않으면서 자아성찰을 해라고 드립을 한다.
웃기는 일이다. '무엇을 해라'고 말하려면 '무엇을 어떻게 하는지' 방법부터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이는 학생들한테 '공부해라'고 하지만, 정작 '공부하는 방법'은 알려주지 않는 것과 같다.
도대체 뭘 어떻게 해라는것인가? 정작 방법 제시도 안하면서 '왜 못하냐'고 까지 말한다. 이래선 안된다.
다음의 상황도 마찬가지다.
나는 누구인가?
자기 소개를 해보세요.
당신은 한번이라도 '내가 누군지 알아내는 방법'에 대해서 고민해본 적 있는가?
아마 막연하게 했을 것이다. 하지만 인간의 사고방식은 막연하게 생각하면 단순히 그 막연했던 과정만 출력해낼 뿐이다. 결과적으로 막연해진다.
당신이 위 질문에 곧바로 반응하는 방식은 크게 3가지가 될 것이다.
1. 자기 안을 들여다보려고 한다. 하지만 아무것도 안보인다. 결국 멍해진다.
2. 자신이 무엇을 잘하는지, 무슨 경험이 있는지, 직업이 뭔지 떠올려본다.
3. 이름을 말한다. (거의 코미디 수준이다. 이름은 라벨에 불과하다.)
사실 지금 내가 제시하는 방법은 단순하다. 그 방법은 '외부'를 보면서, 그 이미지, 자신의 생각이 작동하는 과정에서 '자신'을 찾아야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당신이 너무 막연하게 생각했거나, 자각하지 못했거나, 언어의 혼란 탓에 생각이 흩뜨러진 것에 속한다.
그 근거는 다음과 같다.
1. 인간의 눈과 귀와 코와 피부는 외부를 향해서 열려있다. 근본적으로 기관이 외부를 향해 있기 때문에, 내부를 볼 수 없게끔 되어있다.
따라서, 당신은 '나는 누구인가?'를 알기 위해서 외부를 보면서 들어오는 이미지들에서 자신을 찾아야 한다. (기본적으로 망상이 전제된다.)
2. 당신을 가장 잘 반영하는 것은 '당신과 비슷하게 생긴 사람, 비슷한 처지에 있는 사람, 당신을 거울로 보거나, 카메라로 촬영한 모습'이다.
3. 또한 당신은 자신의 '가능세계의 모습, 동경하는 모습'등에서도 자신을 찾을 수 있다.
하지만 이 모두가 '외부'를 바라보다가, 당신의 내부에 들어온 이미지들에서 '찾는 것'이다.
찾는 것이 중요하다. 당신을 '생각해서 알게 되면, 당신은 사변에 들어가게 된다.
그렇게 되면, 당신은 자신을 오해하게 되고, 자신의 한계도 왜곡하게 된다.
싸이 흉내 내면서 쪽팔리게 행동하는 아이들이 있다. 슈스케4 1편 예선탈락한 여자를 보라. 그 여자가 대표적인 케이스다.
왜 그럴까? 그들은 사변으로 자기를 만들고 행동하기 때문이다. (좀 부적절한 표현이긴 하지만 그들은 검증을 안한다.)
물론 이는 가능세계에서 자신을 형성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어쨌거나 그것이 적절한지 아닌지는 또 따지기 힘들다.
(원리로만 따지면 사람은 무한대로 변할 수 있다. 다만 타자의 인정은 또 별도의 문제다.)
하지만 당신이 원빈과는 다르게 생겼고, 다른 인생을 걸어가고 있듯이,
당신의 '영역'은 존재한다. 아마 그것을 찾아야,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 알아낼 수 있을 것이다.
무슨 말이냐 하면, 당신이 진짜 어떤 사람인지 알고 싶으면, 당신과 비슷하게 생긴 사람, 당신과 비슷한 처지에 있는 사람, 당신과 비슷한 가능세계를 생각하고 있는 사람, 이런 사람들을 미리 만나보거나 조사하거나, 살펴보는 것이다. (물론 한계를 잡으면 안된다. 그럼에도 더 자신의 역사를 새로 만들 생각을 할 수 있어야 한다. 왜냐하면 그들도 처음에는 맨땅에 헤딩하는 식으로 살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모름지기 선구자는 항상 어떻게 될지 모르는 채 앞으로 나가는 사람이다. 후대가 확률에 기반해서 판단하는 것이다. 하지만 선대는 바위치기로 살아간다.)
당신이 누구인지, 찾는 것을 가장 방해하는 사람들은 당신 주변 사람들이다.
이유는 다음과 같다.
1. 당신을 안다고 구획짓는다.
2. 당신도 그들에게 알게 모르게 영향 받기 때문이다.
당신이 가능세계를 자주 염두에 둔다면, 당신은 현실과는 무관한 세계를 바라보며 살지도 모른다.
그래서 당신은 끊임없이 변화에 대한 열망에 차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문제는 당신의 주변 사람들이 그렇냐는 것이다.
기본 원리는 이미 앞서 말했다. "외부를 바라보면서, 나에게 들어온 이미지에서 나를 찾는다", 이건 상식적이니까 넘어가자.
눈이 앞을 향해 있으니, 당연히 앞을 볼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눈은 내부를 향해 있지 않으니, 뇌를 쌩으로 볼 수가 없다.
그러니 우리는 카메라로 뇌를 찍어서만, 뇌를 볼 수 있다. 우리 눈을 한바퀴 돌려서 내부를 보는 건 불가능하다는 소리다.
그러니 '내가 누구인가?'를 찾는 것도, 이런 식으로 찾을 수 밖에 없다.
내가 눈을 한바퀴 돌려서 내부를 들여다보게 할 수 없으니, 나는 외부를 보면서 나를 찾아야 한다.
필연적으로, 나는 '외부' 중에서도 '나에 가까운 대상'들과 '나와 먼 것 같은 대상'들을 보게 된다.
아니 어쩌면, 이것도 별로 좋은 설명은 아닐 것이다.
당신은 당신과 너무 다른 사람을 통해서도, 자신에 대해서 알아갈 수 있다.
하지만 나는 이렇게 항목을 던져놓고 끝을 맺으려 한다.
당신을 찾아내는데 가장 도움되는 사람들은 다음과 같다.
1. 당신과 비슷하게 생긴 사람
2. 당신과 사고방식이 비슷한 사람
3. 당신과 비슷한 처지에 놓인 사람
4. 당신이 동경하는 사람
5. 당신과 너무 다른 사람
6. 당신 자신. (거울 또는 카메라로 촬영한 당신)
6번은 애매하다.
당신은 언제나 왜곡과 방어의 유혹에 사로잡히게 될 것이다.
즉, 문제가 되는 것은, 그렇게 찾게 된 '거울과 카메라로 촬영된 당신'도 외부에 존재한다는 것이다 (당연하지 않겠는가)
그리고, 당신은 그것을 쳐다봄으로써, 당신의 머리 속에 이미지로 가지고 가게 된다. 그리고 거기서 당신을 찾는 식이다.
바로 거기서 필터의 문제, 왜곡의 문제, 방어의 문제, 이런 것들을 거치지 않을 수가 없을 것이다. (또한 편향의 문제도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6번이 가장 당신에 대해서 잘 말해줄 것이다.
뭐가 됐건, 기본 원리는 잊지 말자. 당신은 외부를 바라보고, 그렇게 들어온 이미지 내에서만 당신을 찾을 수 있다.
그렇지 않고서, '기억'을 통해서 찾는 것? 그것은 당신을 왜곡시킬 확률이 높다. '가능세계에서 찾는 것?'역시 마찬가지다. 당신은 복불복이 될 확률이 높다. 물론 그럼에도, '가능세계'에서 당신을 만드는 것, (사변일 수도 있는) 이 방법이 수많은 사람들이 가장 많이 쓰는 방법이다.
롤모델은 그런 원리에서 기능한다.
당신은 자신을 찾아내고 싶은 생각이 드는가?
찾고싶으니까 좀 더 예를 나열해봐. 저걸로는 못찾겠다. 뭐가 있을까.
나를 모른다는건 알겠네요
ㅂㅇ
양질의 글은 다시 읽힌다.
외부를 보면서 그 이미지, 자신의 생각이 작동하는 과정에서 나를 찾을 수 있다. 내 자신은 내부이니 내 자신을 외부화 해서 봐야한다. 이를 위해 나와 가장 비슷한 사람을 보는 것이 있을 거라고 말한다. 하지만 이보다 좋은 방법이 있다고 생각한다. 바로
자기객관화의 최고봉으로 CCTV로 찍어 나를 지켜보듯이 나자신을 3M 위에서 지켜보고 있다고 항상 유념하는 것이다. 즉 모든 상황과 사건 속에서 내거 어떻게 반응하고 대처하는지 스스로 3인칭 관찰자의 입장에서 파악해보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