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을 쓰는 이유는 단순하다.
현실적인 문제이기 때문이다.


당신은 말다툼 해본 적 있는가?
분명 저 새끼가 먼저 시비를 굴고, 개새끼처럼 굴어서, 참다참다 못해서 나도 반격을 했다. (욕을 한다)


그런데 제 3자가 그걸 보더니, 와서, 이렇게 말한다.
"그만해. 너네 둘다 똑같애."





당신은 화가 날 것이다.
그리고 그 사람에게도 이렇게 말할 것이다.
"끼어들지마 씨발아. 어디서 껴들어. 잘 알지도 못하는 게."



그러면 제4자가 그걸 보면서 이렇게 말한다.
"거봐라. 니가 다를 게 뭐가 있냐."




뭐가 잘못일까?
이 균열은, 당신이 생각해서 내뱉는 것과, 사람들이 당신을 보는 것은 다르다는 걸 보여준다.
여기엔 근시안적 오류가 있긴 하다. 하지만 지금은 그 얘길 접어두고,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지 보자.



사람은 오로지 이미지에 반응한다.
자 생각해보자.
당신은, 지금 뭘 보고 있을까? 글? 아니다.
당신이 바라보는 건, 모니터이고, 더 넓게 잡으면, 단지 눈 앞을 바라볼 뿐이다.
하지만, 당신의 눈 앞에는 수많은 오브제가 있다. 또는 컴퓨터 한대만 있을지 모른다.
당신은 그런 오브제들 사이에서, 지금 이 기호들을 보고 있다.
하지만 여기서 끝나는 것도 아니다. 당신이 속으로 딴 생각을 하고 있으면, 당신이 실제로 보고 있는 건, 그렇게 생각한 이미지들이다.
당신은 갑자기 "배고프네."라고 생각할 수도 있고, "여친 만날까"를 생각할 수도 있다.

당신이 상대방을 보고, 화가 났다고 해보자.
당신은 그것에 반응해서, 욕을 할 수 있다.

자, 그러면 제3자는 무엇을 볼까?
단순하다. 제3자는 욕하는 당신을 본다. 그게 이미지다.

당신은 '전후 맥락을 짚어주세요. 내가 왜 화내는지 알잖아요 개새끼야' 라고 말하며, 자신의 내면을 봐주길 요구할 수 있다.


하지만 냉정하게 따져보자. 그걸 제3자가 봐야될 이유가 뭐가 있나? 그냥 니놈 새끼의 호소일 뿐이다.
억지 부리지 말라는 거다.



당신은 좀 구조중심으로 생각을 해야 한다.
쫙 분류해서, 그것의 자극과 반응을 예상해두고, 그것을 꺼내는 식으로,
그렇게 생각해야 한다는 것이다.

다음의 예를 보자.

아까처럼, 어떤 개새끼가 당신한테 짖었다고 해보자.
당신이 화를 낼 수도 있다. 하지만 이것이 제3자에겐 어떻게 비춰지는가? 당신은 아무리 지랄을 해도, 그냥 제3자에겐 화를 내는 놈일 뿐이다.
제3자에겐 당신이 그렇게 비춰진다는 것이다.


머리가 좋다는 건,
이런 이미지의 관계를 고려한다는 뜻이다.


혹자는 이렇게 말할지도 모른다.
"야 솔직하게 살어. 뭘 그렇게 눈치보냐."


예상컨데, 그 혹자는 정치를 모르거나, 처세술 자체를 모르거나, 뭔가 하여튼 부메랑인걸 모르는 사람이다.
당신이 짓거린 흔적은 언젠가 악용된다. 돌아온다는 것이다. 당신은 나중에 어떤 경우던, 지금의 에피소드가 악용되거나 오용되는 경우를 보게 된다.
가령 당신은 그 상대방의 측근으로부터 "저 새끼 성질 더럽던데" 하는 얘기를 듣게 될지도 모르고, 그것이 극단적인 경우, 당신이 사업할 때 보이콧으로 가게 될 수도 있다.


왜 사람들이 유머를 사용했을까?
왜 사람들은 무시를 방어용으로 쓸까?

그리고, 왜 정치에서는 주로 리프레임을 즐겨 쓸까? (레이코프는 정치를 프레임 게임으로 규정한다.)


당신이 혼자 사는 거라면, 욕을 짓껄여도 상관없다.
하지만 당신이 팀으로 활동하고, 그것이 손익과 관계가 있다면, 당신은 욕을 하면 손해다.
당신이 만일 악동 이미지로 셀러브리티가 아니라면 손해볼 확률이 높다.
(악동은 그게 노이즈 마케팅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결국 스타일의 문제도 여기에 있다.
어떤 이미지를 가질 것인가?


보통 셀프이미지, 라는 말을 쓰는데,
그것은 당신의 머리속에 떠올린 이미지를 일컫는 게 아니다.
당신의 이미지는 표상을 말하는 게 아니다. 당신이 실제로 사람들에게 비춰졌을 때의 이미지를 말한다.

다시 말해서, 제3자가 알아볼 수 있는 형태로, 투영된 형태로 존재하는 이미지란 소리다.


이게 어렵게 들리면,
당신이 케이팝스타 심사위원이라고 가정해보자.
당신은 제3자들이, 당신앞에서 춤추고 노래하는 걸 본다. 하지만 당신이 실제로 보는 건 이미지라는 소리다.
당신은 그 중에서 맘에 드는 이미지를 선택할 뿐이다.


여기서 제3자는 이미지를 선택하고 제시하는 입장에 있다.
하지만 당신은 제3자를 보기만 하면 된다.
(이 이미지를 고려하는 문제에도 1인칭과 3인칭의 문제가 있다. 이는 다음에 쓰려고 한다.)


이 이미지 게임의 규칙은 다음과 같다.
당신이 어떤 생각을 품던 간에, 그것이 이미지로 나타난다는 것이고, 그것이 사람들에게 반응을 불러일으킨다는 것이다.


당신이 아무리 예쁘고 잘나도, 쌍욕을 하면, 쌍욕한 새끼밖에 안된다. 무슨 말인지 알겠는가?



셀프 이미지, 가 아니라, 투영된 이미지 형태다.
이미지 메이킹이다.
세계를 사로잡은 스타들은, 사람들에게 '소유하고싶은 충동'을 일으킨,
그런 이미지들을 제공하는데 성공한 사람들이다. 이건 굉장히 어려운 일이다.

왜 스타들이 기획사의 통제를 받을까?
이건 근시안의 오류 탓에, 스스로를 통제하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
말했듯이, 심사위원이 볼 때는 잘 보이지만,
지원자의 입장에선 이미지를 잡기가 만만치 않다. (기획사의 존재이유는 거기에 있다.)


이것은 당신의 삶에서도 마찬가지다.
당신은 자신의 이미지에 대해서 모른다. ㅎㅎ. 어떻게 알겠는가? 아무리 해봐야, 당신은 맹점으로 인해 왜곡된 자기 합리화밖에 못한다.


하지만 그것을 뚫어낼 방법이 없지는 않다.



어쨌건 이 글의 요지는 이미지 메이킹에 대한 글이다.
똑똑한 사람일수록 충동에 휩쓸리지 않는다. 그들의 머리는 계산기로 되어있다. 계산이 작동하면 손익이 뜨고, 유리한쪽으로 설계를 잡는다.
쉽게 흥분하지 않는다. 휩쓸리지 않는다. 흥분하더라도 상당히 정치적 계산이 끝나 있는 상태다. 이미지 메이킹에 유리한쪽으로 간다는 소리다.

예를 들어보자.
국가에 대한 충성심을 질문받을 때, 어떤 사람을 흥분하면서 '그게 질문이냐!!!'라고 성내기까지 한다. 그는 충동적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에게 열광할 것이다. 왜? 국가에 대한 애정이 그를 비합리적으로 까지 만들었다면, 그는 분명 나라를 너무 사랑하기 때문일 것이다.


고급스런 이미지 메이킹은 아주 교묘하게 들어가는 것이다.
그것은 오스카와 칸느를 동시에 정복할 정도의 수준을 요구한다.


잘 생각해봐야 한다.
물론 당신은 이걸 이루지 못할 것이다. 근시안적 오류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것을 생각해보길 바란다. 그 순간 당신은 지금까지 저질렀던 뻘짓에 대해, 반성할 시간을 가질 수 있을지도 모른다.
거기서 출발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