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렵게 생각하지 마시고
가족이란 말의 해명이 안되어서 혼란이 생긴 것 같으니, 다시 얘기해봅시다.


제 취지를 밝히는 것으로, 오해를 제거해보겠습니다.
밑에 분이 쓰신 글을 읽어보았는데, 제가 쓴 글의 취지랑은 전혀 무관한 발언을 하셨더군요.



한가족이란 말은 전체적이고 획일적이란 얘기가 아닙니다.
그리고 그 밑의 제 글의 요지는 우리는 모두 하나다, 라는 얘기가 아니라, 우리는 한 공간에 있다는 얘기입니다.

아버지는 무뚝뚝하고
어머니는 활발한데
아들은 냉소적일 수 있듯이
딸은 감성적이고 섬세해서 나뭇잎이 떨어지는 것만 봐도 눈물을 흘릴 수 있듯이

또한
저마다
아버지가 격투기를 좋아하고
어머니가 개콘을 좋아하고
아들이 악플러일 수 있고
딸은 쥴리어드 스쿨에서 바이올린을 전공할 수 있듯이

저마다의 차이가 있습니다.
그럼에도 이들을 한가족이라고 불릴 수 있겠죠.



대강 그런 뉘앙스입니다.
왜 가족간에 각방이 생길까요? 왜 아들은 자기방을 요구하고, 엄마아빠는 안방을 놓고, 딸은 자기방이 필요하다고 말할까요.



대개 그런 뉘앙스입니다.


생각의 차이
취향의 차이

이런 것들이 분명 존재하고
더 나아가

정서의 문제도 있습니다

수치심
나르시즘

등등이 있겠죠


그걸 고려하면, 그러한 차이에 대한 입장이 조형으로 나타나기도 한다는 겁니다.
제가 생각할 때, 그것이 '벽'이 생기고 '구획'이 나눠지는 이유로 보는 것이죠.
하지만, 그것 역시, 제가 상상력을 발휘해서 올라가보자고 제안했듯,
꼭대기의 위치에서 아래를 내려다보고, 인공적으로 설치된 벽을 제거하면, 저마다의 '개인'을 추구하는 방향에 불과하다는 것이죠.


즉,
서로 '다르다'는 것을 주장하지만, 뉘앙스로 보자면, '다름'을 지향하는 공통점이 있다는 것이죠.
그러한 공통점을 근거로, 볼 때, 그들은 묶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어쩌면 제가 생각하는 가족이 그런 형상일 것입니다.


이는 어떤 가정에서 자랐냐의 문제와도 직결되겠죠.
저는 서로가 다르지만, 한데 어울릴 수 있는 것을 가족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다만 가족이란 단어에 얽매일 필요는 없습니다.
제가 '가족'이라고 말한 것을 무시하고, 이미지로만 받아들이시면 됩니다.


다시 말해, 제가 '가족'이란 말을 쓴 뉘앙스는 다음과 같습니다.
타자와 다르게, 좀 더 가깝게 같은 공간을 공유하고 있는, 사람들의 집합을 일컫는 말,
그러니 우리는 모두 한가족이다,라는 제목의 뉘앙스는, 우리 모두가 대개 같은 공간을 공유하고 있다는 얘기입니다. 뻔한 얘기인거죠.
하지만 제가 이 뻔한 얘기를 전달하려고 했던 이유는, 이러한 상상력에 기초할 때 사람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결국 태도에 대한 얘기를 하려고 한 것입니다.


즉 우리는 무한한거나 또는 무한한 뉘앙스로 한정된 공간 내에서, 살고 있지만,
저마다 인공적인 벽을 설치하고 살아간다는 것인데,
근본은 무한한/또는 무한해보이는 한정된 공간 내에서 살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을 주장하려고 하기 보다는, 이런 상상력에 기초하여 세상을 바라볼 때,


적어도,
당신이 두려워하거나, 낯설어하는 상대 여성, 또는 상대 남성에 대해서,
조금은 낯설음을 내릴 수 있지 않겠는가, 하는 제안인거죠.




왜냐하면 우리는 가끔 벽을 느낄 때, 과대망상을 품기도 하니까요.



헌데 이 얘기는 후에 알아서 응용할 부분이고, 골자는 공간에 대한 상상력입니다.



그러니 밑의 분이 쓰신, 일종의 반론은 제 취지와는 무관합니다.
욕심과 (이 욕심은 왜 나왔는지 모르겠군요.)
그리고 서로간의 고통의 차이, 감각의 차이, 가 동일할 수 있겠는가의 문제,
(그러니 한가족이 될 수 없다고 주장하는 것 같은데, 제 글의 취지와는 맞지 않는 반론입니다. 저는 공간의 공유를 기준으로 쓴 것이니까요)


이런 문제를 다룬 것입니다.
아무튼 참조하시길 바랍니다.
다시한번 골자를 찝어주면 제가 제시하고자 한 것은 다음과 같습니다.

1. 삶에 대한 태도의 기저영역으로서 '공간에 대한 상상력'
2. 공간과 벽
3. 그에 따른 삶의 태도의 차이 (및 변화)

이후의 응용은 각자 알아서 하실 문제이니 여기까지만 써놓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