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살아가면서 여러가지 형태의 어려움에 부딪힘.
억울한 일도 있고, 기쁜 일도 있고, 슬픈 일도 있어.

이런 여러 일들을 극복하고, 자신의 꿈을 향해 조금씩 나아가는거야. 그것이 소시민의 삶이겠지.
어떤 사람에게는 거대한 놀이공원을 만드는게 꿈일 수 있고, 어떤 사람에게는 자유롭게 요트를 타는게 꿈일 수 있다.

이렇게 사람들은 서로 다른 꿈과, 서로 다른 생각을 가지고.
이 세상을 열심히 살아가고 있어.
피지컬 100을 볼 때, 모래나르기의 밧줄 길이 문제, 배나르기의 중량 문제 등 여러 문제가 있었지만. 우리가 이것에 몰입할 수 있었던 이유는 참가자들이 3억이라는 목표를 갖고 최선을 다해 투쟁했기 때문이야.

그러한 투쟁이야 말로 잔혹하지만 동시에 소시민의 삶을 압축하여 보여주는 것이지. 그들을 응원하기도, 즐기며 보기도 하는 과정에서 그들이 우리와 가까운 사람처럼 공감이 되.

이런 상황에서 정해민이란 사람이 우승을 못한게 안타까운게 아니야. 그가 16강에서 떨어졌어도, 64강이서 떨어졌어도. 무언가 마음이 아픈 일이 있다면 그 자체만으로 도와주고 싶은거야.


분명 내가 제작진이거나, 우진용님이었으면.
상황을 원만히 해결할 방법이 있었을텐데. 같은 프로그램의 참가자의 의견을 존중하지 않는 듯한 태도로 그를 정신으로 힘들게 만들었어.
이것 때문에 사람들은 분노하는거야.


물론 논란이나 분쟁 자체를 좋아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이 경우에는 대부분 소시민으로써 그런 정해민의 아픔을 잘 알기 때문에 사람들이 더 공간해주는거라고.


이거를 마치 탑클래스 선수 vs 소시민 이런 구도로 나누어 평가하는 것은 인간의 가치를 커리어에서의 성공으로밖에 생각하지 못하는 것이며 그런 가치관에서는 평생 이 문제의 의미를 알 수 없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