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과 인성은 무관하다.


다만, 위 명제가 참인 이유는 "지식은 머릿속에서 나오지만, 앎은 그 사람 전체로서의 인성에서 나온다"는 근본 명제 때문이다. 


노벨 생리의학상 수상자, 로저 스페리가 갈파했듯이

두뇌에서 나오는 주장이나 지식은 전혀 믿을 것이 못 된다.

머릿속의 이성으로 하는 의식활동은 100% 사실을 100% 거짓으로 합리적 논리적으로 바꿀수 있으며,

100% 거짓을 100% 진실로도 합리적 논리적으로 바꿀수 있다.


하지만  전체로서의 인성으로부터 나오는 앎의 주장은

모든 사람들이 공통으로 느끼고 모든 사람들에게 동일한 객관적인 것이다.

각 개인의 두뇌는 국소적(local)이지만 보통물질로서의 모든 사람들의 내부에너지인 신기는

운화기 공간을 통로로 하여 비국소적(non-local)으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인간만이 이성을 가졌다는 미명아래 물질과 인간을 구분하고,

이성을 가진 인간이 이성이 없는 자연을 정복 소유하고 이성을 사용하지 않는 타인을 지배 착취할 수 있다는

이른바 인본주의(humanism)와 개인주의(individualism)적 인식론과 세계관에서는

국소적인 개인의 두뇌가 조작해내는 지식만을 추구할 수밖에 없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지만 말이다.




어쨌든, 나는 앞에서 양자역학을 이해하기 위한 50%에 대해서 언급했었지만,

우리가 그 나머지 50%와 함께 양자역학을 온전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앎의 본질의 문제와 맞닥뜨려야만 한다.


21세기 들어 물리학계에는 우주의 궁극적 구성요소를 "정보"라고 하는 주장이 세를 얻고 있다. 양자정보이론 등에서 말하는 '정보'란 무엇인가? 이것이 바로 앎의 본질 문제이다. 그래서 안톤 차일링거는 물질세계의 근본을 '정보'라고 결론을 내리고 "우리의 세계관은 어떻게 변할 것인가?"라는 문제를 제기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우리는 많은 것이 아직 불분명하고 몇 가지 매우 중요한 질문이 아직 대답을 기다리고 있는 영역에 발을 들여놓기 시작했다. 실재와 정보를 포괄하는 개념의 본성에 관한 질문, 즉 앎의 본질에 대한 질문도 그런 질문 중 하나이다."



나의 닉네임을 '지식부정'이라고 한 것도 바로 이와 같은 의미에서 그렇게 한 것이다. 나는 '지식'이 아니라 '앎(사실 그대로의 지식)'을 추구하기 때문이다.


그렇다.

지식과 인성은 무관하다.

다만, 지식은 두뇌에서 나오지만 앎은 전체로서의 그 사람의 인성에서 나온다.

그리고 인성과 무관한 지식이 통용되는 사회는 필연적으로 비인간적이고 부자연적인 문명을 낳을 수밖에 없음은 물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