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나이에 천재성 업적 보여준 전 과기부장관, 한림원장 정근모 박사가 원탑이라 생각함
서울대 50주년 대학신문(설대교내신문)특집호에 역대 서울대 3대천재 기사가 있었음. 2분은 문과이고, 이과는 정근모박사임.
1) 월반, 전국초등학교 졸업? 시험 수석. 과거엔 그런거 있었다는.
2) 경기중학교 수석입학 및 수석졸업
3) 경기고 수석입학 (16세?) 및 1학년 1학기후, 학교서 건의해서 중퇴시킴. 당장 서울대 셤치라고, 더 배울게없다는. 그래서 1학년2학기에 검정고시후, 바로 서울대 입시치름
4) 서울대 전체 차석 입학(17세?). 물리학과 입학 및 수석졸업
5) 서울대 행정대학원 수석입학. 당시 일할게 없어서 전공변경했다는.  이 사실이 전국신문에 보도됨. 물리천재가 타전공입학했다는 것이 화제거리였음. 검색하면 나옴
7) 곧 바로 서울대총장이 미시간주립대로 강제유학 보냄. 그후론 미시간주립대총장이 극진히 보살핌. 정박사의 멘토, 스승임
8) 석박사 통합과정? 미시간주립대 물리학과에서 2년만에 박사취득. 학교 역사상 최단기 박사취득 기록세움. 21세
9) 23세에 미국 모모 주립대 조교수. 이것은 지금 중앙일보에 연재되고 있음
10) 프린스턴대 고등연구소 입사. 당시 오펜하이머가 그 연구소 세미나 좌장담당, 그외 당대 천재들 밑에서 연구
11) 한국과학원(현 카이스트+과학원) 설립. 펀드를 미정부로부터 받아냈음. 그래서, 박정희 대통령에게 한국서도 최고연구기관 설립하자고, 자기가 미국정부로부터 거액펀드받았다고 편지씀. 이에 박통이 동의. 그후 정부주도로 과학원 설립. 이게 카이스트 모태가 되었음. 착공식? 당시 사진도 검색됨. 박통, 정박사도 나옴.
12) 한국과학원 부원장. 31세. 젊은나이라서 일부러 부원장 을 역임했다고 함
13) 그후론 국제원자력기구 창립멤버 및 핵물리 관련 국제무대에서 각종 활동함
14) 김영삼 정부때, 과기부장관 제의로 귀국. 지금 국책연구소의 PBS 제도 도입함. 국내 연구기관의 자생력제고를 위한다는 명분이었음. 취지는 좋았으나, 지금은 폐단도 많음
15) 방폐장 건설 공론화, 굴업도 사태(방폐장건립 반대시위가 극에 달해서 도의적 책임지게 됨)로 사퇴
16) 그후 지금까지 대내외 과학기술기관 장 역임, 및 과학기술분야 자문활동중

어린, 젊은 나이로 보면 이런 업적, 경력 이룬 학자는 없음
그럼에도 어릴때, 대학때도 국가에 대한 사명감으로 살았다고 함. 특히 늘 겸손했음. 언론과 국제사회가 그를 알아주고 칭찬, 홍보해 주었음. 스스로 천재라고 말한 적도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