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를 알 수 있다면 미래는 고정되어 있으므로
자유의지는 없다는 논리에 대해 이견이 있다.
우리는 과거를 알고 있다.
과거는 고정되어 있다.
하지만 그것으로는 자유의지를 부정할 수 없다.
왤까?
사건을 관찰하는 시점과 사건이 결정된 시점이 다르기 때문이다.
자유의지에 대하여 말하는 것이므로 이하의 ‘결정’은 자유의지에 의한 결정을 말한다.
이것은 우리가 시간의 흐름에 대해 너무 익숙하기 때문에 범하기 쉬운 오류다. 과거의 사건을 관찰할 때는 사건이 결정된 시점도 그 보다 과거이므로 이점을 익숙하게 받아들이지만, 미래의 사건을 관찰한다고 가정할 때는 관찰하고 있는 시점이 사건이 결정된 시점보다 더 과거라는 점 때문에 혼동을 일으키는 것 같다.
시간 T0에서 시간 T0+100년의 사건을 관찰했다고 해서
그 사건이 시간 T0에서 결정된 것은 아니다.
T0에서 T0+100년의 사건을 관찰하는 자체가 시간을 도약한 행위라는 걸 염두에 두고 생각해야 한다.
T0+100년의 사건은 T0+100년에 결정되었을 수도 있도, T0+50년에 결정되었을 수도 있다. T0에서는 그 결정에 따라 일어난 결과를 T0에서 관찰할 뿐이다.
그럼 T0에서 관찰한 후에 결정의 시점인 T0+50에서 다른 결정을 하기로 마음먹는다면?
T0의 자유의지는 T0+50의 자유의지에 영향을 주지 못하였으므로 T0에서 T0+100을 볼 때 그러한 관측결과가 나온 것이다. 결정은 T0+50의 자유의지에 의한 것이니까.
T0의 자유의지에 따라 T0+50의 자유의지가 고정된다는 전제는 틀린 것이다.
우리가 T0-150의 자유의지의 결정에 따라 T0-100에서 발생한 사건을 T0의 자유의지로 뒤집을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자유의지는 없다는 논리에 대해 이견이 있다.
우리는 과거를 알고 있다.
과거는 고정되어 있다.
하지만 그것으로는 자유의지를 부정할 수 없다.
왤까?
사건을 관찰하는 시점과 사건이 결정된 시점이 다르기 때문이다.
자유의지에 대하여 말하는 것이므로 이하의 ‘결정’은 자유의지에 의한 결정을 말한다.
이것은 우리가 시간의 흐름에 대해 너무 익숙하기 때문에 범하기 쉬운 오류다. 과거의 사건을 관찰할 때는 사건이 결정된 시점도 그 보다 과거이므로 이점을 익숙하게 받아들이지만, 미래의 사건을 관찰한다고 가정할 때는 관찰하고 있는 시점이 사건이 결정된 시점보다 더 과거라는 점 때문에 혼동을 일으키는 것 같다.
시간 T0에서 시간 T0+100년의 사건을 관찰했다고 해서
그 사건이 시간 T0에서 결정된 것은 아니다.
T0에서 T0+100년의 사건을 관찰하는 자체가 시간을 도약한 행위라는 걸 염두에 두고 생각해야 한다.
T0+100년의 사건은 T0+100년에 결정되었을 수도 있도, T0+50년에 결정되었을 수도 있다. T0에서는 그 결정에 따라 일어난 결과를 T0에서 관찰할 뿐이다.
그럼 T0에서 관찰한 후에 결정의 시점인 T0+50에서 다른 결정을 하기로 마음먹는다면?
T0의 자유의지는 T0+50의 자유의지에 영향을 주지 못하였으므로 T0에서 T0+100을 볼 때 그러한 관측결과가 나온 것이다. 결정은 T0+50의 자유의지에 의한 것이니까.
T0의 자유의지에 따라 T0+50의 자유의지가 고정된다는 전제는 틀린 것이다.
우리가 T0-150의 자유의지의 결정에 따라 T0-100에서 발생한 사건을 T0의 자유의지로 뒤집을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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