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 실제인가?
문득 의문이 들었다. 우리가 느끼기에 땅은 멈춰 있고 해는 뜨고 지기 때문에 지구는 멈추어 있고 태양이 지구 주위를 돈다고 판단할 수 있으나 실제로는 땅은 스스로 돌며 동시에 해 주위를 돈다는 대목에서다. 무엇을 보고 실제로 그렇다고 ‘판단’ 할 수 있을까? 뉴턴이 자연철학의 수학적 원리를 밝혀내면서 맞닥뜨린 문제도 이와 같은 것이다. 이를테면 일정 속도로 움직이는 배 위의 관찰자는 자신이 위로 던진 공이 위아래로 운동한다 여기지만 땅 위에서 배 위의 사람이 던진 공을 보는 관찰자는 공이 포물선을 따라 운동한다 여긴다. 둘 중 어느 사람이 보는 공의 운동이 ‘실재’인가? 어떤 사람들은 관찰자가 변해도 공의 운동 그 자체의 본질은 변화하지 않고 그러므로 둘 중 무엇이 실재임을 따지는 것은 무의미하다는 현명한 대답을 내놓겠지만 물체의 운동을 수학적으로 해석하려는 뉴턴으로서는 그렇지 않았다. 물체의 운동을 정의하고 해석하는 데에는 관찰자가 필수적이기 때문에 변하지 않는 절대적인 관찰자를 설정하여 무엇이 실재인가 정의할 필요를 뉴턴은 느꼈다는 것이다. 관찰자를 설정할 필요성을 느꼈다고 말은 했지만 사실상 신학적인 관점에서 우리가 상대적 운동의 기준으로 삼을 수 있는 절대적인 시공이 존재한다고 생각했으며 이 기준은 그 당시에는 하늘에 떠 있는 항성, 빛의 매질이라 여겨진 에테르 개념이 도입되며 에테르로 바뀌어 갔다. 지구가 태양 주위를 돈다는 사실이 실재라 ‘판단’ 하는 근거는 절대적 시공이 존재한다는, 그리고 이를 위와 같이 정의한 뉴턴의 견해를 따른 것이다. 만약 뉴턴 그리고 대부분의 사람이 그 이전에 그래 왔던 것처럼 이 절대적 시공의 정의가 지구라고 생각했다면 우리는 태양이 지구 주위를 도는 것이 실제라고 판단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니 이 절대적 시공이 존재함을 증명하지 못한다면 지구가 태양 주위를 도는 것과 태양이 지구 주위를 도는 것 두 가지 전부를 실재라 말할 수 없다. 애석하게도 광원의 운동이 빛의 운동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는 후의 마이컬슨-몰리 실험에서 절대적 기준으로서 에테르는 허상이라는 것이 밝혀지고 여기에 빛을 기준으로 시공을 정의한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이 대두되며 뉴턴의 절대 시공은 힘을 잃었다. 그렇다면 우리는 빛을 기준으로 정의한 시공이 절대적이며 실재한다고 결론 내릴 수 있는가? 상대성 이론은 맥스웰의 전자기학에 따라 유도한 전자기파의 속력이 관측자의 상대 운동과는 관계없이 상수라는 결론에서 파생된 기존 고전역학과의 모순을 해소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빛의 속도가 모든 관측자에게 같다는 것과 역학에서의 상대성 원칙이 전자기학까지 확장될 수 있다는 두 공준만으로 상대성 이론의 다른 모든 것을 유도할 수 있으니, 맥스웰의 유도가 과연 어떤 사고과정과 근거를 기반으로 만들어졌나 보아야 할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더 큰 문제에 맞닥뜨리게 된다. 물체의 운동에 관해 기술한 뉴턴역학은 어떤 수학적 체계를 만들어 그 틀 안에서 운동을 해석한 것뿐이지만 전자기학의 모든 식은 전자들의 운동과 그 관계를 실험적인 정의에 기반해 설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즉 이것은 실험적으로 밝혀낸 현실 세계의 규칙성을 토대로 새로운 세계를 만들어 해석한 것에 가깝다. 역시 이것이 실재라 말하기는 힘들 것 같다. 현재 관측과 이론의 최극단에 있는 양자역학으로 가면 이러한 경향은 더 커진다. 당장 중력과 질량의 관계, 그리고 질량과 힘, 가속도의 관계에서 질량의 정의도 모호하지만 우리는 현실 세계에서 무거운 것을 무겁다 느끼고 무거울수록 운동시키기 힘들다 느끼기 때문에 직관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으나 미시세계의 것들은 우리가 보고 느낄 수 없으므로 그것을 해석하는 이론을 볼 때 괴리감이 커지는 것이다. 사실 미시세계에서 현상 자체가 우리가 보고 느끼는 거시세계의 것들과 차이가 크다. 대표적인 예로 이중 슬릿 실험이 있다. 빛을 이중 슬릿에 투사했을 때 스크린에 두 슬릿모양이 그대로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밝고 어두움의 연속적인 패턴이 나타난다는 점에서 빛이 서로 간에 간섭해 회절하며 이에 파동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으나 후에 빛을 금속 등의 물질에 비추어줬을 때 전자가 튀어나오는 현상인 광전 효과를 해석하는 가운데 밝혀진 사실로는 빛은 가질 수 있는 에너지가 양자화되어있는 입자성도 띤다는 것이다. 한편으로 이 이중성은 각각의 현상에서 따로 관찰되는 것이 아니다. 이중 슬릿 실험에서 아주 약한 빛을 쏘아 보내면 스크린에 빛의 위치가 점과 같이 하나씩 표시가 되고 이는 빛의 입자성을 보여주지만, 이 과정을 계속하면 스크린에 나타나는 것은 입자라면 응당 그래야 할 두 슬릿 모양이 아니라 위의 간섭무늬라는 것이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매번 빛이 어느 슬릿을 통과하였는지 관찰하게 되면 간섭무늬는 나타나지 않고 비로소 두 슬릿의 모양이 나타나게 된다. 관찰이라는 행위 자체가 빛의 상태에 영향을 주는 것이다. 이 현상은 빛뿐만 아니라 전자와 같이 작은 입자 모두에 적용된다. 이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 사람들은 입자가 운동할 때 스스로 간섭하는데, 누군가에게 관측당하면 스스로 관측하는 것을 멈추고 입자와 같이 행동한다는 결론을 내렸고 이가 바로 코펜하겐 해석이다. 양자역학에 대해 특정 물리학자들이 합의한 코펜하겐 해석은 우리가 관측하기 전의 모든 것들이 확률적으로 겹쳐 있는 상태에 있다고 말한다. 확률적으로 겹쳐 있는 여러 가지 상태를 수학적으로 기술하기 위해 파동함수를 도입하는데, 관측자가 대상에 대한 측정을 시행하면 이와 동시에 ‘파동함수의 붕괴’ 가 일어나 대상의 파동함수는 겹침 상태가 아닌 하나의 상태로만 결정된다는 것이다. 이 관측자-대상간 관계는 사람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다. 원자 내에서 원자핵이나 다른 원자의 전자와 핵에 영향을 받는 전자 또한 원자핵이나 다른 원자의 전자와 핵에게 관찰당하고 있다 볼 수 있는 것이다. 이를 고려하여 계산한 원자 내부의 전자의 파동함수의 크기의 제곱이 바로 오비탈이며 이의 원자핵으로부터 거리에 대한 함수가 전자가 그 거리에 존재할 확률인 확률밀도함수이다. 분자에서는 여러 상호작용이 존재해 이 오비탈을 계산하는 방법도 다양한데, 중심원자의 원자오비탈(atomic orbital) 이 혼성(hybridization) 되어 새로운 결합 오비탈을 형성한다는 원자가 결합 이론(valance bond theory) 나, 분자 내부에서 전자의 오비탈을 각각 새로 계산한 분자 오비탈 이론(molecular orbital theory) 가 바로 그것이다. 전자 오비탈을 계산하는 과정이 복잡하여서 그 과정에 따라 다시 이는 결합에 참여하는 원자 오비탈들의 선형 결합으로 결합 오비탈을 계산하는 LCAO(linear combination of atomic orbital) 등으로 나뉜다. 그럼 위 여러 이론 중 어떤 이론이 실제일까? 그중 어느것도 실제라고 할 수 없으며 오비탈 자체도 미시적 세계를 해석하기 위해 인간이 만들어낸 도구에 불과하다.
이전의 과학은 관측기술이 발달하지 않아 우리가 볼 수 있는 것, 느낄 수 있는 것을 해석하는데 국한되었다. 이 해석은 맞는 것, 세계의 이치 따위로 여겨졌으며 과학철학은 세계의 이치를 발견해내는 행위였고 신의 시대에는 신의 섭리를 알아가는 과정이었다. 그러나 현대로 오며 우리는 보이지 않는 것에 이름 붙이며 그 성질을 정의하고 이론을 세운다. 이러한 과정에서 그 전의 보고 느끼는 것에 대한 허상이 벗겨지며 세계는 세계 그대로 있고 우리는 그저 발견한 몇 가지의 사실을 통해 세계에 적용될 수 있는 이론을 세우는 것뿐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우리가 세계를 해석하기 위해 정의한 물리량들, 시간, 거리, 질량, 전하량 등의 모든 것들은 우리가 만든 체계 안에서만 의미가 있다는 것이다. 결국 신이 되지 않는 이상, 즉 선험적 사실들로 모든 세계에 대한 이론을 만들 수 있는 존재자가 되지 않는 이상 무엇이 실제인가 판단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좋은글인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