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적 만남의 자극추구성향(Sensation Seeking Tendency of Fateful meeting)


-나는 결정론을 추구하는 머저리가 아니다.-


자극 추구 성향 이란 다양하고 신기하고 복잡한 감각과 경험을 추구하며, 이러한 경험을

얻기 위해 신체적, 사회적, 법적 및 재정적 위험을 감수하려는 경향을 말한다.

나는 이를 토대로 사랑이라는 감정에 접근해 보려 한다.

사람은 누구나 사랑을 하기 전 운명적 만남의 사랑을 추구해본 적 있을 것이다.

만약 과거의 원인이 미래의 결과가 된다면 그건 운명이라고 말할 수 있는가.

필연적인 사랑을 운명이라 생각하며 추구하고 싶은가.

인간관계로 말미암아 나의 사랑이 필연적으로 일어나야 할 사건이라면

아마 나는 허무주의에 빠져 살아가야 하겠지.

우리는 절대 라플라스의 악마의 말하는 소리에 귀 기울이지 말아야 한다.


우리는 언제나 자극을 추구하며 다양하고 신기하고 복잡한 감각과 경험을 추구한다. 이러한 경향은 10대 때 많이 이루어진다.

특히 사랑이라는 신비로운 경험은 그들에게 있어서 매력적인 목표가 될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사랑 이전에 고독을 먼저 알아야 한다.

만약 당신이 운명적 만남을 추구하고 싶다면 고독이라는 기쁨을 받아들일 줄 알아야 한다.

고독은 인간이 느낄 수 있는 가장 원초적인 느낌이며 이성적 생각의 바탕이 되어

우리가 추구하는 사랑이 무엇인지 깨닫게 해준다.

만약 고독이 두려워 사교하면 당신은 이것이 필연적 사교인 것이라며 착각하고 말 것이다.

사랑은 안정감을 찾기 위한 도구 따위가 아니다. 만약 사랑이 안정감을 찾기 위한 도구 따위로 전락되어버린다면 이는 후에 허무감만이 남아있을 것이다.

사람은 이성에 끌려다니는 존재이다. 그 누가 이성 앞에 서 있다고 말할 수 있는가.

따라서 항상 우리는 고독에서 존재하며 이성적으로 생각할 줄 알아야 한다. 고독은 이성과 나란히 서 있게 해주는 존재의 촉매제다.

우리의 일생에서 이성이 고독을 월등히 앞질러 가는 시기가 존재한다 이 시기에 많은 사람이 가짜 사랑에 빠져 연예와 사교를 즐긴다.

이때 학교는 올바른 교육을 하지 않고 거짓된 포장으로 때를 넘겨버린다.

이 시기에 성적인 매력에만 이끌려 연예한다면 필연적인 해어짐과 동시에 후회와 탄식을 안겨줄 것이다.

점차 시간이 지나 성인이 되었을 때도 이를 깨닫지 못하고 성적인 매력에만 이끌려 결혼한다면

평생 후회와 탄식을 안겨줄 반려자를 얻은 것이다.

현 사회에서는 이러한 것을 가르치려 들지 않는다

때문인지 사랑이라는 단어는 우리 사회에서 큰 의미가 없어졌다. 사랑이라는 것은 우리가 애정을 주는 것이다.

현재 대부분 사람은 사랑을 모르고 그 단어를 단편적으로만 사용하고 있다 나는 랍스터를 사랑해, 나는 스테이크를 사랑해

등으로 부르면서 말이다. 이것은 큰 언어의 오류이다. 당신이 랍스터와 스테이크를 사랑한다면 랍스터를 위한 해양 생명 구축을 매일같이 고민하고 실천할 것이며

스테이크를 사랑한다면 소의 죽음을 모른척하진 않을 것이다.

사랑은 애정을 주는 것이며 언제나 배려하며 사랑을 위해 나의 모든 것을 바쳐 해주려는 것이다.

사랑은 언제나 무엇을 줄 것인가를 생각하는 것이다.

현재 우리는 사랑이라는 것을 단편적으로 사용한다. 자신의 육체적 정신적인 면을 채워줄 수 있는 사람이라고 느끼면

그것이 사랑이라고 말이다. 이 말에 공감한다면 이것은 그저 욕구를 채우기 위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상대방을 도구로

취급하는 것이 다 이렇게 도구로 전락되어 버린 사랑은 결국 후에 허무감만이 들고 공허함에 다시 육체적 정신적 사랑을 찾을 것이 다 이를 반복하며 나중에는 결국

허무감과 공허함만이 느껴지는 사랑을 하는 자신을 보게 될 것이다. 이는 허무주의를 불러올 뿐인 행위일 뿐이다.

이러한 육체적 정신적인 욕구는 무엇을 얻을 것인가를 생각하게 만든다. 사랑과는 정반대다.

성경에서의 예수는 우리를 사랑했다 때문에 우리에게 베풀고 우리를 위해 큰 고통을 받고 죽었다.

성경에서의 예수는 사랑이 뭔지 보여주는 좋은 예시이다.

우리가 누구에게 베풀고 싶어 한다면 우리는 그 사람을 사랑한다는 것이다.

내가 사랑해서 베푼다는 것은 내가 베푸는 상대에게 나를 투자하는 것과 같다.

또한 자신을 사랑하지 못한다면 진실한 사랑을 할 수 없다. 우리는 자기애로부터 전제하에 나 자신을 사랑하는 나의 일부가 당신 안에 있으니

이젠 당신에게 내가 사랑하는 부분이 있다는 거다. 따라서 사랑은 받는 것이 아니라 주는 것이다.

우리는 이를 모두 인지하고 있어야 하며 고독과의 연예를 즐겨야 한다, 하지만 고독은 점차 집착이 심해져

날이 갈수록 우리를 집어삼키고 싶어 할 것이다.

이는 우리가 고독을 빨리 벗어나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고독은 필연적으로 해어짐이 동반되어야 하는 동반자이며 필연적으로 만남이 다시 동반되어야 하는 인생의 동반자이다.

우리는 만남과 해어짐을 반복하는 운명 공동체이다.


사랑의 생각을 한번 적어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