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턴역학과 상대론까지의 이론은 변화를 연속으로 설명했습니다. 이를테면 0.9땡과 1 사이에 다른 수가 존재할 수 없듯이


물체가 존재하고 운동하는 동안에 빈구간이 없이 연속이고 확률적이지도 않은 기계적이고 결정론적(아날로그)인 움직임입니다.


그런데 뉴턴역학과 다르게 상대론은 우주에서 한가지 모순을 발견했습니다. 바로 시간의 모순(상대성)이죠.


우리는 어떤 것이 기준에 따라 다르다는 것을 상대적이라고 합니다 . 제 기준으로는 어떤 것이 1인데 다른 사람을 기준으로는


그것이 1이 아니라면 그것은 1이면서 1이 아닌 것이 되죠. 논리학의 법칙중에는 동일률, 배중률, 비모순율이 있는데


앞서의 설명은 배중률에 위배되죠. 그런데 이런 논리학의 법칙은 형이상학적 개념들에는 적용되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선과 악과 같은 형이상학적인 개념의 경우 제가 A라는 인간을 선하다고 보고 다른 사람은 그를 악하다고 봐도


그 상대성이 인정되죠. 또 제 스스로 한 인간을 선하면서 악하다고 생각해도 상관 없습니다.


그렇다면 시간이란 개념에도 위와 같은 상대성이 인정된다는 것은 어떤 의미를 가질까요? 시간이란 개념은 결국 형이상학적이란


겁니다. 물론 시간과 공간을 합친 시공간은 형이하학적 개념이죠. 당신이나 저에게 지구의 중력장(시공간)의 형태는 상대론적으로


동일하단 겁니다. 쉽게 말해서 저나 당신이나 같은 속도로 자유낙하한다는 것이죠. 하지만 시공간이 아닌 시간이란 개념 자체는


선과 악이란 개념과 다를바 없이 형이상학적이란 겁니다. 그런데 형이하학적인 것들, 이를테면 태양의 경우 태양이 존재하면서


존재하지 않는다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그것은 물론 논리적으로 허용되지 않습니다. 그리고 뉴턴역학과 상대론적으로도


허용되지 않죠. 하지만 양자역학의 경우는 다릅니다. 제가 설명한 질량의 상대성이 아니더다도 상호작용이 없을 경우 물체는


입자성을 잃고 파동으로 존재한다는 것이 양자역학의 설명이죠. 이중슬릿실험의 결과가 미생물의 크기까지 확인 되었고 말이죠.


그렇다면 만약 정말로 '(기준에 따라서) 태양이 존재하면서 동시에 (질량의 형태로) 존재하지 않는다' 라면 물질은 형이상학적일까요?


아니면 형이하학적일까요? 관련해서 저는 질량의 상대성으로 질량=에너지=공간 의 등가원리가 성립한다고 설명했었죠.


결국 저 등가원리는 에너지가 형이상학적이면서 동시에 형이하학적이란 것을 의미한다는 겁니다.


그런데 질량의 상대성과 그에 다른 등가원리가 성립하는 이유는 입자의 변화가 불연속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입자가 불연속이라고


우주가 불연속이란 것은 아닙니다. 우주는 4차원의 연속체인 5차원이기 때문이죠. 그런데 각각의 4차원은 고립계이기 때문에 결국


우주는 연속이면서 동시에 불연속이죠. 우주는 구조적으로 인간의 관념으론 모순인 상태가 가능하다는 것이죠.


그런데 그렇게 한순간(한시간대)에 인간의 관점으로 형이하학적인 모순(확률)이 있다면 그 모순은 해결되어져야 합니다.


물론 다중우주란 것은 결국 증명 불가능하지만 다중우주로 그 모순이 해결된다는 겁니다, 슈뢰딩거의 고양이가 살아있는 쪽의


우주(시간대)와 죽어있는 쪽의 우주(시간대)로 말이죠. 쉽게 말해서 제가 존재하는 시간대는 저의 변화가 불연속이기 때문에 빈틈없이


연속적이지 않고 중간 중간 제가 존재하지 않은 빈 시간대가 존재하게 되며 따라서 그 빈 시간대에 다른 우주가 존재하고 있다는 겁니다.


결론을 정리하자면 형이하학적 모순은 하나의 우주로 해결되지만 형이하하적 모순은 하나의 우주로 해결이 불가능하다는 겁니다.


시간은 형이상학적 모순이라 하나의 우주에서 시간의 상대성이란 모순이 허용되었지만, 질량의 상대성은 형이상학적 모순이기 때문에


하나의 우주에서 그 모순이 존재하면 그 모순은 다중우주로 해결된다는 겁니다.




시간의 절대성에 관한 쉬운 설명


변화가 불연속일 경우 질량이 상대적이고 시간이 절대적이라는 것을 쉽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시간대란 시간이 절대적이게 되는


우주의 구조로 이해하는 것이 가장 좋습니다. 물론 제 설명에서의 시간의 절대성은 뉴턴의 시간의 절대성과는 다릅니다.


뉴턴의 경우 누군가의 시간이 1초가 흘렀다면 우주의 모든 것들의 시간도 1초가 흐른 것이 되지만 제 설명은 아에 시간이


불변이란 것이죠. 즉 시간이 전혀 흐르지 않고 고정 되어 있다는 것이죠. 관련해서 다른 글에서 설명했던 것을 잠시 그대로 옴겨보면


아래와 같습니다. 이미 읽으셨던 분들은 스킵하시면 됩니다.



(현상적으로 분명하게도 제가 가지고 있는 핸드폰의 시계의 시간은 상대적으로 변화합니다. 저는 시간이 불변이라고 했지만 시계의 시간은 분명


흘렀다는 것이죠. 그런데 이 부분에서 잠시 시간이 흘렀다는 표현에 대해서 생각해봅시다. 사실 시간이 흘렀다는 표현보다는 시계에 표시된


시간이 달라졌다고 하는게 정확하겠죠? 즉, 저는 시간이 불변이라고 한 것이지 시계의 시간이 변화하지 않는다고 말한 것이 아니란 겁니다.


보통 시계의 시간이 변화하는 것을 통해서 사람들은 시간이 흘렀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시간이 흐른다는 것의 정확한 의미는 선후관계를 의미합니다.


예를 들어 제가 (①밥을 먹고) 나서 (②양치질을 하는) 과정들이 있었다고 해보죠. 그럼 선후관계가 분명한 경우에는 ②의 행위는 ①의 행위가 없었다면


존재할 수 없어야 합니다. 하지만 제가 설명한 시간대의 경우 ①이 벌어지고 있는 동시에 ②의 행위도 벌어지고 있다는 겁니다.


물론 ①에서부터 ②까지의 모든 과정들의 사건(사태:사건의 형태)들도 동시라는 겁니다. 즉, 모든 시간대의 사태들은 선후관계가 없고 동시란


겁니다. 그러므로 시간이 불변이라는 것이죠.)



결국 시간이 불변(절대적)이기 위해서는 위에서 설명한 것과 같은 현상이 가능한 구조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죠.


그리고 위의 설명을 가장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예시로는 바로 영화가 들어가 있는 한장의 CD가 있겠습니다.


프레임 단위로 분할된 디지털 영상을 우리는 눈은 연속이라 느끼고 시청합니다. 그런데 1초에 60프레임으로 출력되는 모니터의 영상을


1초에 120프레임의 영화카메라로 찍으면 1초에 60프레임짜리의 영상의 불연속 변화를 시각적으로도 알수있게 됩니다.


그리고 1초에 60프레임짜리 카메라 두개로 두개의 영화를 찍은 후 두 영화를 합쳐서 1초에 120프레임 영화로 만들 수도 있습니다


물론 프레임이 더 분할되면 분할될수록 영화 2편 이상을 하나의 CD에 집어 넣을 수 있습니다. 그렇게 만들어도 처음에 독립되어 찍은


각각의 영화들은 서로에게 영향을 주지 않아요. 이러한 설명은 사실 우리가 5차원적 존재가 되서 4차원적 우주의 변화들을 바라본 것과


유사한 행위입니다. 결국 다중우주가 자연스럽게 서로에게 영향을 주지않고 공존하고 있다는 것을 알수있죠.


물론 당신이 본 그 4차원 우주(영화들의 교차적 집합)는 매우 복잡해보일지도 몰라요. 그런 짬뽕이 된 영화는 보고 싶지도 않을거고


제대로 이해하기도 힘들겠죠. 하지만 각각의 영화들은 따로따로 찍고나서 합쳐진 것이라 원본은 하나의 스토리대로 이어지죠.


자 이젠 영화를 cd 한장으로 구운다고 해보죠. 그럼 그 cd는 구워지기 전에 이미 정보를 저장할 저장공간을 가지고 있어요.


즉, 그 구워지기 전의 cd의 저장공간이란 비결정론적인 공간이라 생각하면 됩니다. 또 그 CD의 저장 공간의 시간은 모두 같아요.


영화를 굽고 CD를 재생하게 되면 영화의 시간대 별로 영화가 순차적으로 재생되지만 말이죠.


지금까지의 제 설명이 제가 갈루아의 군론으로 설명했던 시간대란 개념입니다. 각각의 시간대가 보유한 에너지가 만들수있는


확률을 모두 만들수있다는 거죠. 만약 한 시간대가 (10-10)의 에너지가 있다면 (5+5-5-5), (2+2+2+2+2-2-2-2-2-2), (3+1+1-1-1-3)...


사실상 각각의 시간대는 모두 무한개의 확률을 가지고 있습니다. 마치 CD가 구워지기 전의 상태처럼 말이죠.


결국 시간은 절대적이게 되고 말이죠. 양자역학은 이처럼 디지털의 예로 이해하는 것이 가장 쉽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