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리학과 관련된 역설들은 변화를 불연속으로 생각할 경우 모두 해결됩니다.



1. 제논의 역설(들)(변화가 연속인지 불연속인지를 물었던 역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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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짤을 보면 아시겠지만 제논의 역설들은 모두 운동의 불가능, 정확히는 연속으로 변화하는 운동이라는 개념을 부정하는 설명입니다.


한지점에서 다른 지점으로 변위할 수 있는 방법에는 연속의 변위와 불연속 변위가 있을 수 있겠죠?


그런데 연속의 변위의 경우에는 제논의 역설이 생겨버립니다. 아마도 제논은 순서상으로 이분법의 역설을 제일 먼저 떠올렸을 겁니다.


이분법의 역설은 변화가 연속일 경우 사물은 움직이지도 못한다라는 것을 가장 잘 설명해주죠. 그 후 아킬레스와 거북이나 화살의 역설을


생각했을거고 말이죠.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이 제논의 역설이 반박이 된 것이라 생각하는데 사실 그렇지 않습니다.


먼저 아킬레스와 거북이는 시간이란 개념을 통해서 반박을 시도하죠. 아킬레스가 거북이를 따라잡는데 무한한 시간이 걸리는 것이


아니라 유한한 시간이 걸린다는 것으로 말이죠. 하지만 시간이란 개념은 연속 운동이 가능할 때나 정의 될 수 있는 개념입니다.


즉, 제논의 역설은 변화가 불연속이라는 주장을 하려는 논증인데 그것을 변화가 연속일 때 가능해지는 개념인 시간으로 반박한다?


그런 반박을 하고서 반박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보면 참 안쓰럽습니다. 어떻게든 변화가 연속이란 것을 믿고 싶어하는 것처럼


보이니까 말이죠. 제논이 설마 아킬레스가 진짜로 거북이를 따라 잡지 못한다고 생각해서 그런 주장을 했을까요?


거북이는 그 당시에도 이미 느림의 대명사였기에 역설에서 쓰인겁니다. 분명하게도 제논은 사물이 연속으로 움직인다고 생각하는


그 주장에 의문을 가진겁니다. 제논이 살던 당시에는 불가능했겠지만 양자역학의 불연속의 현상들이 발견이 되고


빛이 절대속도란 것을인간이 알게 되었을 때 변화가 연속인지 불연속인지 적어도 학자들은 다시 한번 생각해봤어야 했던 겁니다.


제논은 르메트르처럼 재평가를 받아야 합니다. 옳은 주장을 한 인물을 궤변론자로 만들어선 안되겠죠.


변화가 연속일 경우 위와 같은 역설이 생기지만 변화가 불연속이라면 역설이 생기지 않습니다. 결국 변화는 아날로그가 아니라 디지털이라는 것이죠.




2. 쌍둥이의 역설 (상대속도로 운동을 해석했을 경우에 생기는 역설)


쌍둥이의 역설은 특수상대론을 이해하면 역설조차 아니라는 것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일반상대론이 있어야 해결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는데 문제 풀이는 그렇다고 하더라도 특수상대론으로도 사실 역설이 아니란 겁니다. 그런데 길이수축을 통해서 시간의 상대성을


설명할수도 있고 불연속변화를 통해서도 시간의 상대성을 설명할 수 있다는 겁니다. 쉽게 말해서 a라는 사람이 100번 불연속으로 존재하는 동안에


당신이 101번 불연속으로 존재했을 때와, 똑같은 조건에서 당신이 1000번 불연속으로 존재하는 것의 시간흐름이 같을 수 있을까요?


존재하고 존재하지 않는 그 텀이 짧고 길고에 따라 시간이 상대적으로 흐르게 된다는 겁니다.


그 텀에 영향을 주는 것이 (변화를 연속으로 해석했을 경우에) 속도와 질량이 된다는 것이죠.




3. 슈뢰딩거의 고양이의 역설(질량의 상대성과 시간대란 개념을 통해서만 해결될 수 있는 역설)


이 역설은 단순히 말해서 고양이가 살아있으면서 동시에 죽어있을 수 있을까라는 역설이죠.


당신을 기준으로 당신은 살아있으면서 동시에 죽어있지 않습니다. 마찬가지로 저를 기준으로 해도 저는 살아있으면서 동시에 죽어있지 않습니다.


그런데 저를 기준으로 당신은 살아있으면서 동시에 죽어있을 수 있을까요? 또는 당신을 기준으로 저는 살아있으면서 동시에 죽어있을 수 있을까요?


질량이 상대적일 경우 가능합니다. 이제는 사람이 아니라 고양이를 예로 해야겠네요. 일단 저를 기준으로 고양이의 질량이 존재할 수 있는


상태라면 고양이는 살아있거나 죽어있거나 둘 중 하나로 반드시 결정되어있어야 합니다. 고양이가 존재하는 곳이 고립계가 아닌 이상에야 말이죠.


그런데 그것과 동시에 당신을 기준으로는 고양이가 질량체의 형태로 존재할 수 없을 수가 있습니다. 즉, 질량이 모두 공간화가 되버린 상태란 것이죠.


그럼 당신에게는 고양이의 생과 사가 미결정의 상태가 되죠. 즉, 저를 기준으로는 고양이가 살아있거나 죽어있거나 결정되어있지만


당신을 기준으로는 미결정이란 것입니다. 그럼 다음과 같은 의문이 생기게 될 거에요. 만약 제가 살아있는 고양이를 관측하게 되었다면 당신에게는


고양이의 상태가 불확실 하더라도 고양이는 제가 관측한대로 당신에게도 살아있는 것과 같은게 아닌가 하는 것이죠.


그런데 이 경우에도 만약 저와 고양이를 기준으로 당신도 질량체의 상태로 존재할 수 없는 공간화된 상태라면 당신도 저와 고양이에게 있어


불확실한 상태가 됩니다. 즉, 고양이와 저에게는 당신이 불확정적이고 당신에게는 저와 고양이의 상태가 불확정적이 되는 것이죠.


저와 고양이를 기준으로 당신의 상태도 불확정적이기 때문에 제가 살아있는 고양이를 관측했다고 해도 당신의 상태는 고양이와 저에게 불확정적이며


당신의 기준으로는 여전히 저와 고양이의 상태가 불확정적이라는 것이죠. 결국 변화가 불연속일 경우 당신과 제가 어떤 시간대에서 어떤 서로와


만나서 상호작용을 하게 될지는 결국 결정되봐야 안다는 것이죠. 물론 위의 예에서는 저를 기준으로 고양이의 생사는 결정되어있기 때문에


저의 경우는 항상 고양이가 살아있는 쪽의 시간대에 속하게 되죠. 하지만 그 상황에서도 당신에게는 제가 어떤 상태인지 불확실하기 때문에


당신은 어떤 상태의 저를 만나게 될지 결정된게 아니란 겁니다. 이 설명을 보다 정확히 이해하려면 아래의 링크에서


시간대와 관련된 설명을 읽어보시길 바랍니다.




4. 시소의 역설 (이 역설은 제가 만든 질량의 상대성과 관련된 역설입니다.)



설명을 시작해보면 일단 100kg의 질량을 가진 두개의 추가 있다고 해보죠.


시소 위에다 두개의 추를 중심에서 같은 거리만큼 떨어트려서 시소를 평형으로 만들어보죠. 고전역학이나 상대론적으론


질량이 절대적이니 시소는 당연히 평형이죠. 하지만 양자역학적으로는 질량이 상대적이에요. 예를들어 만약 오른쪽의 추를 질량의 기준점으로


삼았을 때 오른쪽의 질량은 100kg이고 왼쪽의 추의 상대 질량은 50kg이 된다고 해보죠. 반대로 왼쪽 추를 질량의 기준으로 삼을 경우 왼쪽은 100kg이


되고 오른쪽 추의 상대질량은 50kg가 됩니다. 동시에 말이죠. 그렇다면 오른쪽을 기준으론 오른쪽의 질량이 왼쪽보다 더 크기때문에 시소는


오른쪽이 내려가야해요. 하지만 왼쪽을 기준으로는 왼쪽의 질량이 오른쪽보다 크니 왼쪽으로 내려가야하죠. 하지만 실제로 시소는 힘의 평형을


유지합니다. 이게 어떻게 가능할까요? 그냥 단순하게 생각하면 되요. 각각이 모두 옳기 때문에 평형을 이루는 거죠.


결국 각각이 모두 내려가고 있다는 겁니다. 오른쪽의 기준으론 오른쪽이 더 무거우니 오른쪽은 내려가고 있어요. 그리고 동시에 왼쪽의 기준으론


왼쪽이 더 무거우니 왼쪽도 내려가고 있어요. 그런데 결국 그 힘이 같기 때문에 시소는 평형을 이룬다는거죠.





시간의 절대성에 관한 쉬운 설명


변화가 불연속일 경우 질량이 상대적이고 시간이 절대적이라는 것을 쉽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시간대란 시간이 절대적이게 되는


우주의 구조로 이해하는 것이 가장 좋습니다. 물론 제 설명에서의 시간의 절대성은 뉴턴의 시간의 절대성과는 다릅니다.


뉴턴의 경우 누군가의 시간이 1초가 흘렀다면 우주의 모든 것들의 시간도 1초가 흐른 것이 되지만 제 설명은 아에 시간이


불변이란 것이죠. 즉 시간이 전혀 흐르지 않고 고정 되어 있다는 것이죠. 관련해서 다른 글에서 설명했던 것을 잠시 그대로 옴겨보면


아래와 같습니다. 이미 읽으셨던 분들은 스킵하시면 됩니다.



(현상적으로 분명하게도 제가 가지고 있는 핸드폰의 시계의 시간은 상대적으로 변화합니다. 저는 시간이 불변이라고 했지만 시계의 시간은 분명


흘렀다는 것이죠. 그런데 이 부분에서 잠시 시간이 흘렀다는 표현에 대해서 생각해봅시다. 사실 시간이 흘렀다는 표현보다는 시계에 표시된


시간이 달라졌다고 하는게 정확하겠죠? 즉, 저는 시간이 불변이라고 한 것이지 시계의 시간이 변화하지 않는다고 말한 것이 아니란 겁니다.


보통 시계의 시간이 변화하는 것을 통해서 사람들은 시간이 흘렀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시간이 흐른다는 것의 정확한 의미는 선후관계를 의미합니다.


예를 들어 제가 (①밥을 먹고) 나서 (②양치질을 하는) 과정들이 있었다고 해보죠. 그럼 선후관계가 분명한 경우에는 ②의 행위는 ①의 행위가 없었다면


존재할 수 없어야 합니다. 하지만 제가 설명한 시간대의 경우 ①이 벌어지고 있는 동시에 ②의 행위도 벌어지고 있다는 겁니다.


물론 ①에서부터 ②까지의 모든 과정들의 사건(사태:사건의 형태)들도 동시라는 겁니다. 즉, 모든 시간대의 사태들은 선후관계가 없고 동시란


겁니다. 그러므로 시간이 불변이라는 것이죠.)



결국 시간이 불변(절대적)이기 위해서는 위에서 설명한 것과 같은 현상이 가능한 구조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죠.


그리고 위의 설명을 가장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예시로는 바로 영화가 들어가 있는 한장의 CD가 있겠습니다.


프레임 단위로 분할된 디지털 영상을 우리는 눈은 연속이라 느끼고 시청합니다. 그런데 1초에 60프레임으로 출력되는 모니터의 영상을


1초에 120프레임의 영화카메라로 찍으면 1초에 60프레임짜리의 영상의 불연속 변화를 시각적으로도 알수있게 됩니다.


그리고 1초에 60프레임짜리 카메라 두개로 두개의 영화를 찍은 후 두 영화를 합쳐서 1초에 120프레임 영화로 만들 수도 있습니다


물론 프레임이 더 분할되면 분할될수록 영화 2편 이상을 하나의 CD에 집어 넣을 수 있습니다. 그렇게 만들어도 처음에 독립되어 찍은


각각의 영화들은 서로에게 영향을 주지 않아요. 이러한 설명은 사실 우리가 5차원적 존재가 되서 4차원적 우주의 변화들을 바라본 것과


유사한 행위입니다. 결국 다중우주가 자연스럽게 서로에게 영향을 주지않고 공존하고 있다는 것을 알수있죠.


물론 당신이 본 그 4차원 우주(영화들의 교차적 집합)는 매우 복잡해보일지도 몰라요. 그런 짬뽕이 된 영화는 보고 싶지도 않을거고


제대로 이해하기도 힘들겠죠. 하지만 각각의 영화들은 따로따로 찍고나서 합쳐진 것이라 원본은 하나의 스토리대로 이어지죠.


자 이젠 영화를 cd 한장으로 구운다고 해보죠. 그럼 그 cd는 구워지기 전에 이미 정보를 저장할 저장공간을 가지고 있어요.


즉, 그 구워지기 전의 cd의 저장공간이란 비결정론적인 공간이라 생각하면 됩니다. 또 그 CD의 저장 공간의 시간은 모두 같아요.


영화를 굽고 CD를 재생하게 되면 영화의 시간대 별로 영화가 순차적으로 재생되지만 말이죠.


지금까지의 제 설명이 제가 갈루아의 군론으로 설명했던 시간대란 개념입니다. 각각의 시간대가 보유한 에너지가 만들수있는


확률을 모두 만들수있다는 거죠. 만약 한 시간대가 (10-10)의 에너지가 있다면 (5+5-5-5), (2+2+2+2+2-2-2-2-2-2), (3+1+1-1-1-3)...


사실상 각각의 시간대는 모두 무한개의 확률을 가지고 있습니다. 마치 CD가 구워지기 전의 상태처럼 말이죠.


결국 시간은 절대적이게 되고 말이죠. 양자역학은 이처럼 디지털의 예로 이해하는 것이 가장 쉽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