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저는 철학적인 이야기는 이곳이 물리학갤이니 가급적 안하려는 주의입니다. 그런데 불가지론이 마치 무적의 논리인양


말하는 사람들이 많네요. 예를들어 자기 자신의 주장이 불가지론적으로 다른사람에 의해 반박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는 겁니다. 그래서 헛소리를 해놓고 당당합니다. 무지하면 용감한 경우가 바로 그런 경우죠. - (더닝크루거 효과란게 있더군요.)


그래서 이번 글에선 불가지론에 대해서 설명해보려고 합니다. 먼저 철학자 데카르트의 경우는 모든 것을 의심(회의) 해봤습니다.


그러다가 자기 자신이 존재하는지 안하는지 자체도 의심을 하게 되었죠. 관련해서 통속의 뇌라는 철학적 개념도 있죠.


또 현대에 와서는 시물레이션 우주라는 개념도 있고 말이죠. 그런데 결국 데카르트의 '나는 존재한다 고로 존재한다라' 라는


그 명제는 참일까요? 사실 모릅니다. 내가 '실재'로 존재하는지 안하는지 사실 철학적으로 결론이 나지 않았다는 겁니다.


또 위의 데카르트의 말이 참이라고 해도 나 이외의 다른 것이 정말 존재하는 것인지는 또 불확실하게 되고 말이죠.


관련해서 또 한가지 재미있는 예를 들자면 제가 보는 한 공의 색이 빨간색일 때 A라는 사람에게는 그 공이 저의 색감으로는


노란색인 색으로 보이게 되고 또 제가 보기엔 노란색인 공은 A라는 사람에게는 제 기준으론 빨간색의 색감으로 보인다고 해보죠.


물론 저와 A는 같은 공을 볼 때 같은 색을 말하게 됩니다. 하지만 분명 서로의 색감은 차이가 있죠. 그렇다면 그 공의 색은 어떤


색일까요? 그 공의 색은 불가지한인가요? 그렇지가 않습니다. 이 경우 불가지한 것은 '빨간색이란 무엇인가? 이거나 '노란색이란 무엇인가?' 이지


그 같은 공을 보고 빨간색이라고 말하는 저와 A에게는 그 색이 빨간색이란 것은 불가지한게 아니란 겁니다. 관련해서 칸트는 물자체란 개념을


말했죠. 그는 물질 자체는 빛에 반사되어 보이기 때문에 우리는 그 물체를 위의 색의 예처럼 주관적인 감각으로 해석하지만 그와는 별개로 객관적


본질의 물자체가 있다고 봤죠. 그런데 위와 같은 설명들을 보다 보면 정말 모든 것이 불확실하고 불가지한것처럼 느껴질 수 있긴합니다.


그런데 과연 그럴까요? 사실 어떤 전제하에선 참과 거짓이 분명해집니다. 예를 들어 이 우주가 진짜 '실재'한다는 가정을 한번 세워보죠.


그 가정이 참이라면 이 우주는 존재가 불가지적인게 아니라 진짜 존재하는 것이죠.


그리고 반대로 '이 우주가 실재하지 않는다' 라는 가정을 세웠을 때 그 가정이 참이라면 이 우주의 존재성은 앞서와 마찬가지로


불가지한게 아니라 존재하지 않는 것이죠. 또 물론 그 위의 그 전제가 되는 그 가정들을 증명할수 없다고 가정했을 경우에도 모순율이


적용된다면 분명 이 우주는 존재하거나 존재하지 않거나입니다. 그걸 인간이 알 수 없다고 해도 지구의 반정도의 인구가 실재로 우주가


존재한다고 믿고 생각하고 나머지 반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할 경우 이 우주는 존재성은 분명 둘 중 하나니까 반정도는 정답을 맞춘것이


되죠. 즉, 증명할 수 없다고 해도 결국 어떤 주장은 근본적으로 맞거나 틀리거나란 겁니다. 전제가 모순율이 지키는 경우에 말이죠.


다시 말하지만 어떤 모순율을 위배하지 않는 가정을 세워서 말을 했다면 결국 그 주장은 틀리거나 맞거나라는 겁니다.


즉, 그 경우 불가지론으로 자신의 주장이 틀리지 않았다는 식으로 회피할 수는 없다는 겁니다.


그렇다면 결국 '근본적인 불가지론'이란 전제 자체가 모순율에 위배되어야 한다는 겁니다.


예를 들어 제가 다음과 같은 전제를 세웠다고 해봅시다. '우주는 존재하면서 존재하지 않는다.' - 전제


그런데 이 경우는 제가 이 우주를 존재한다고 해도 참이고 존재하지 않는다고 해도 참입니다.


또 이 우주를 존재한다고 말해도 거짓이고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해도 거짓이죠.


그럼 왜 모순율을 위배하는 경우가 근본적인 불가지론일까요? 그 경우 전제 자체를 이해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존재하면서 동시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모순율에 위배되는 것을 자체로 인간은 이해하기 불가능하다는 것이죠.


그런데 사실 제가 여태껏 물갤에서 해왔던 설명중에 근본적인 내용들은 모순율에 위배됩니다. 그러나 제 설명은 모순이 해결되죠.


이는 모순율이 해결된다는 것이 아니라 모순이 공존이 가능한 구조로 해결(설명)된다는 겁니다.


차원을 한차원 높임으로써 말이죠. 관련해서 하위차원의 꼬임(모순)은 상위차원에서 풀린다는 설명을 했었죠.


물론 그런 설명을 한 저도 마찬가지로 모순율을 위배하는 전제 그 자체는 절대로 이해할 수 없습니다.


그러니 양자택일을 하는 것 뿐입니다. 그런 전제를 가지고 있으면 머리가 매우 혼란스럽거든요.


즉, 결론을 정리하자면 불가지론이 성립하는 경우와 성립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고, 자신이 모순율을 위배하는 전제를


세운 것이 아니라면 그것은 결국 참과 거짓으로 나뉘기 때문에 그 경우 자신의 주장이 불가지론적이라 틀리다고 말할 수 없다고


하는것은 비논리적이란 것이죠. 결국 근본적인 불가지론을 이해한다는 것은 양자역학을 이해하는 것과 일맥상통합니다.





시간의 절대성에 관한 쉬운 설명


변화가 불연속일 경우 질량이 상대적이고 시간이 절대적이라는 것을 쉽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시간대란 시간이 절대적이게 되는


우주의 구조로 이해하는 것이 가장 좋습니다. 물론 제 설명에서의 시간의 절대성은 뉴턴의 시간의 절대성과는 다릅니다.


뉴턴의 경우 누군가의 시간이 1초가 흘렀다면 우주의 모든 것들의 시간도 1초가 흐른 것이 되지만 제 설명은 아에 시간이


불변이란 것이죠. 즉 시간이 전혀 흐르지 않고 고정 되어 있다는 것이죠. 관련해서 다른 글에서 설명했던 것을 잠시 그대로 옴겨보면


아래와 같습니다. 이미 읽으셨던 분들은 스킵하시면 됩니다.



(현상적으로 분명하게도 제가 가지고 있는 핸드폰의 시계의 시간은 상대적으로 변화합니다. 저는 시간이 불변이라고 했지만 시계의 시간은 분명


흘렀다는 것이죠. 그런데 이 부분에서 잠시 시간이 흘렀다는 표현에 대해서 생각해봅시다. 사실 시간이 흘렀다는 표현보다는 시계에 표시된


시간이 달라졌다고 하는게 정확하겠죠? 즉, 저는 시간이 불변이라고 한 것이지 시계의 시간이 변화하지 않는다고 말한 것이 아니란 겁니다.


보통 시계의 시간이 변화하는 것을 통해서 사람들은 시간이 흘렀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시간이 흐른다는 것의 정확한 의미는 선후관계를 의미합니다.


예를 들어 제가 (①밥을 먹고) 나서 (②양치질을 하는) 과정들이 있었다고 해보죠. 그럼 선후관계가 분명한 경우에는 ②의 행위는 ①의 행위가 없었다면


존재할 수 없어야 합니다. 하지만 제가 설명한 시간대의 경우 ①이 벌어지고 있는 동시에 ②의 행위도 벌어지고 있다는 겁니다.


물론 ①에서부터 ②까지의 모든 과정들의 사건(사태:사건의 형태)들도 동시라는 겁니다. 즉, 모든 시간대의 사태들은 선후관계가 없고 동시란


겁니다. 그러므로 시간이 불변이라는 것이죠.)



결국 시간이 불변(절대적)이기 위해서는 위에서 설명한 것과 같은 현상이 가능한 구조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죠.


그리고 위의 설명을 가장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예시로는 바로 영화가 들어가 있는 한장의 CD가 있겠습니다.


프레임 단위로 분할된 디지털 영상을 우리는 눈은 연속이라 느끼고 시청합니다. 그런데 1초에 60프레임으로 출력되는 모니터의 영상을


1초에 120프레임의 영화카메라로 찍으면 1초에 60프레임짜리의 영상의 불연속 변화를 시각적으로도 알수있게 됩니다.


그리고 1초에 60프레임짜리 카메라 두개로 두개의 영화를 찍은 후 두 영화를 합쳐서 1초에 120프레임 영화로 만들 수도 있습니다


물론 프레임이 더 분할되면 분할될수록 영화 2편 이상을 하나의 CD에 집어 넣을 수 있습니다. 그렇게 만들어도 처음에 독립되어 찍은


각각의 영화들은 서로에게 영향을 주지 않아요. 이러한 설명은 사실 우리가 5차원적 존재가 되서 4차원적 우주의 변화들을 바라본 것과


유사한 행위입니다. 결국 다중우주가 자연스럽게 서로에게 영향을 주지않고 공존하고 있다는 것을 알수있죠.


물론 당신이 본 그 4차원 우주(영화들의 교차적 집합)는 매우 복잡해보일지도 몰라요. 그런 짬뽕이 된 영화는 보고 싶지도 않을거고


제대로 이해하기도 힘들겠죠. 하지만 각각의 영화들은 따로따로 찍고나서 합쳐진 것이라 원본은 하나의 스토리대로 이어지죠.


자 이젠 영화를 cd 한장으로 구운다고 해보죠. 그럼 그 cd는 구워지기 전에 이미 정보를 저장할 저장공간을 가지고 있어요.


즉, 그 구워지기 전의 cd의 저장공간이란 비결정론적인 공간이라 생각하면 됩니다. 또 그 CD의 저장 공간의 시간은 모두 같아요.


영화를 굽고 CD를 재생하게 되면 영화의 시간대 별로 영화가 순차적으로 재생되지만 말이죠.


지금까지의 제 설명이 제가 갈루아의 군론으로 설명했던 시간대란 개념입니다. 각각의 시간대가 보유한 에너지가 만들수있는


확률을 모두 만들수있다는 거죠. 만약 한 시간대가 (10-10)의 에너지가 있다면 (5+5-5-5), (2+2+2+2+2-2-2-2-2-2), (3+1+1-1-1-3)...


사실상 각각의 시간대는 모두 무한개의 확률을 가지고 있습니다. 마치 CD가 구워지기 전의 상태처럼 말이죠.


결국 시간은 절대적이게 되고 말이죠. 양자역학은 이처럼 디지털의 예로 이해하는 것이 가장 쉽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