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 시간은 변화를 도량형화한 척도다.
즉 일반적으로 변화란 말이 시간이다.
크기가 얼마야?
길이가 몇 미터야?
대체로 같은 의미다.
즉 직선화된 크기를 길이로 정의하면
m(미터)는 도량형으로 하루, 한달, 한시간 따위로 규정되는 값이다.
크기가 변화라면 길이가 시간이 되는 것이고
구체적 단위 미터는 하루, 한달 같은 단위의 시간으로 단락되어진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어? 혹은 흘렀어?
변화가 얼마나 일어났어? (보통 변화의 총량을 의미하는 척도인 시간에 비해 구체적 특정 대상을 말할때 변화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거의 비슷한 말이다.
이는 시간이 준거(척도)로 활용되기 때문에 다른 변화에 대한 비교로 삼기 때문에 척도의 특성... 즉 준거의 기능만 추가된거다.
시간이 변화라는 것에서
시간이 변한다 라는 건
변화가 변한다 라는 개소리와 다를 바 없다.
엄밀하게 시간이 변한다는 건 시간이 흐른다는 의미일 뿐이다. 이는 아날로그 시계가 움직이는 것에서 비롯된 이미지의 차용에 지나지 않는다.
이와같이 언어는 이미지의 차용이라 문맥상에서 그 의미가 생성됨에도 어휘 자체에 함몰되어서 시간을 변화와 다른 의미로 사용하면 개차반나는 것이다.
하물며 시간의 절대성 ㅋㅋㅋ 이런 개소리를 누가 이해하겠냐고...
변화의 절대성 이게 뭔 개소리야?
변화의 불연속? 이건 또 뭔 개소리지?
변화의 상대성?
변화니까 상대적이다?
이런 류의 관념어는 다 개소리다.
무한이니 유한이니 하는 것도 다 관념어라 현상계와는 관련이 없다.
현상계... 특히 운동으로 나타나는 현상계는 다 연속이다.
이미 연속이란 개념이 변화에서 비롯되었고 차용되었다고 전에 설명한 바 있다.
그렇다면 불연속이란 무언가?
관념어이다. 추상적으로 개념화한 관념어라 물리적 운동 현상계 와는 다른 차원이다.
설명의 필요에서 비유적으로 사용할 수는 있으나
운동계를 연속, 불연속으로 나누는 것 자체가 넌센스란 얘기다.
그러나 현상계를 초월하는 영역에 대한 담론에서는 비유적으로 가능하다.
하지만 물질 현상에 대한 한정 때문에 물리적 증명이 불가능하다.
이게 불확정성의 원리다.
이미 현상된 결과물이 물리학이기 때문에
현상되기 전의 이론적 가능태에 대한 무수히 많은 억측으로 확률적 가능성만을 염두하는 것이 현재 물리학 이론들이다.
이 가능태가 소설의 재료가 되는 심리적 재미 또는 억압의 해방으로써 기능할 뿐이다.
미래는 아직 현상되지 않았다.
그래서 자유로운 것이다.
만일 짱개처럼 세뇌시키면 미래 현상값도 현상된 것과 같아서
자유롭지 않은 것이다.
물리적 인과론에 대해
선태적 자유론은 존재론적 혼란을 야기해서
현실이라는 현상에 대해서
존재의 자유가 처한 상황을 고민한 게 실존주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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