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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것을 옳다고 하고 어떤 것이 틀렸다고 할 때 그것은 절대적일까요? 그렇게 믿고 싶겠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어떤 것이 옳다는 것은 그 공리가 옳다는 전제하에서만 옳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틀린 것도 마찬가지죠.


수학적인 예를 들자명 평행선 공준이 있겠죠. 유클리드 기하학에서는 평행선은 만나지 않지만 비유클리드적으로는 만나죠.


그럼 평행한 두선은 만나는 건가요 안 만나는 건가요? 답은 유클리드적으론 안 만나고 비유클리드적으론 만난다가 되겠죠.


그리고 자연수의 집합이 있다고 해보죠. 그 자연수만의 사칙연산을 통해서 그 결과값이 자연수가 아닐 수 있을까요?


4를 2로 나누면 2가 됩니다. 그런데 1을 2로 나누면? 3을 4로 나누면? 그 결과값이 자연수가 되나요?


자연스럽게 유리수란 개념의 확장이 필요해집니다. (2/2도 유리수지만 1이기도해서 자연수라 수체계의 확장이죠.)



이는 물리학적 이론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변화가 연속일 경우만 시간이 상대적이란 명제가 참이라는 것이죠.


변화가 불연속일 경우도 저 시간이 상대적이란 명제가 여전히 참이라고 믿고 싶겠지만 시간이 절대적이게 되죠.


그렇다면 변화가 연속일 때의 참인 명제들의 집합이 있고, 변화가 불연속일 경우에 참인 명제들의 집합이 있게 됩니다.


패러다임이란 결국 그 이론의 참인 명제들의 집합안에서 참인 명제들을 찾는 행위이기도하고 그 패러다임에 갖혀있는


꼴이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상대론과 양자역학중 어느 것이 더 큰 패러다임일까요? 양자역학입니다. 왜 일까요?


아날로그를 디지털화 할 수는 있지만 디지털을 아날로그화 할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쉽게 두 점이 1cm떨어져 있다고 해보죠. 그 경우 두 점을 연결할 방법은 무한가지입니다. 물론 그 중 직선은 하나지만 말이죠.


하지만 아날로그의 경우 연속인 모든 지점을 이를테면 특이점으로 가정하면 모든 점을 불연속으로 바꿀 수 있습니다.


위의 예시가 이해가 안된다면 그냥 일단 넘어가시고 이미 아날로그를 디지털화한 디지털 시계가 있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사실 제 설명의 경우 아날로그시계란 것도 디지털 시계지만 말이죠.)


이렇게 양자역학이 상대론보다 더 큰 페러다임이지만 물론 설명할 수 없는게 있습니다.


즉, 변화가 연속인 경우를 설명할 수 없다는 것이죠. 물론 상대론도 변화가 불연속인 경우를 설명할 수 없고요.


그럼 어떻게 해야할까요? 변화는 연속이면서 불연속이다란 공리를 만들어서 이론을 새로 하나 만들어야 할까요?


아니면 공간의 변화는 연속이며 입자의 변화는 불연속이다라고 공리를 만들어서 새로운 이론을 만들어야 할까요?


후자의 경우는 그냥 상대론과 양자역학일 뿐이죠. 전자의 경우 자체로 무모순적으로 공리가 '일반화'가 되지 못한게 되고 말이죠.



그렇다면 그 무모순인 공리란 결국 무엇이었죠? (모든) 변화는 연속이다. 또는 (모든) 변화는 불연속이다.


'모든'은 일반화라 생각하면 됩니다. 그런데 사실 물리학에서의 '참인' 공리(명제)란 무엇인가요? 바로 현상 또는 우주 그 자체입니다.


즉, 상대론의 무모순의 공리계로는 모든 참인 명제가 참임을 증명할 수 없죠. 즉, 본 설명은 물리학적인 불완전성 정리의 예시입니다.


그런데 수학적으로 어떤 명제가 참인 명제란 그 보증을 어떻게 하나요? 증명을 통한 방법도 있었고, 동어반복적인 명제일 경우


증명 없이도 참임을 보장받게 됩니다. (나는 나다.)라는 동어반복의 명제는 증명이 따로 필요(?) 없다는 것이죠.


결국 증명하지 않아도 참인 명제란 것은 있긴 있다는 겁니다. 동어반복적인 명제가 공리라면 자체로 무모순이기도 하고 말이죠.


결국 어떤 무모순의 공리계(이론)를 통해 유도 되는 참인 명제들의 집합은 사실 그 공리의 동어반복적 명제들의 집합입니다.


(위의 15번 링크 글을 보면 이해가 될 겁니다.) 즉, 항상 참임이 보장되는 명제는 항진명제(동어반복)외에는 없다는 것이죠.



그럼 다시 돌아가서 왜 '일반화'를 하게 되면 공리가 점점 모순적이게 될까요? 일반화의 과정을 연달아 해보자면 아래와 같습니다.


(모든) 사람은 죽는다>>(모든) 동물은 죽는다>>(모든) 생물은 죽는다>(모든) 물질은 죽는다(?)


물질에서 죽는다란 것이 더 이상 일반화가 안됩니다. 즉, 물질중에 어떤 것은 죽고 어떤 것은 죽지 않는다는 것이죠.


0차원> 1차원> 2차원> 3차원> 4차원(확률)> 5차원의 경우처럼 확장(일반화)해도 결국 확률이란 자체로 모순적인 상태가 되었고 말이죠.


결국 우리가 명제를 통해서 증명할 수 있는 것은 어떤 부분적인 '성질' 시간의 상대'성'이라던가 질량의 상대'성'이란 것이죠.


결론을 간단히 하면 공리계가 모순적이지 않게 일반화를 계속 하는 것에도 한계가 있고 명제를 통해 증명할 수 있는 것은


부분(대부분 또는 일부분)이라 증명할 수 없는 참인 명제가 항상 존재한다는 겁니다.




아래는 중력가속도를 쉽게 이해해보는 사고실험입니다.



먼저 질량이 100kg인 물체(A)와 A를 기준으로 질량이 1000kg인 물체가 동시에 불연속으로 존재한다고 가정해보죠.


그 둘은 동시에 존재했다가 존재하지 않았다가 존재했다가 존재하지 않았다가가 반복된다는 겁니다.


에너지 보존법칙이 성립하려면 질량이 가진 에너지가 질량이 아닌 상태로 바뀌었다가 다시 질량이 되어야 합니다.


저는 그 경우 질량이 공간화가 된다고 했었죠. 그럼 질량 100kg이 모두 공간화 되는 것과1000kg이 공간화 되는 것의 양이 같을 까요?


에너지 보존법칙 때문에 당연히 달라야 맞는 겁니다. 또 질량이 서로 다른 물체가 '동시'에 존재하기 위해서는


100kg의 질량의 에너지가 만든 공간이 질량화가 되는 것보다 1000kg의 질량의 에너지가 만든 공간이 질량화가 되는 것이


더 빨라야 합니다. 이렇게 아주 간단하게 상대론에서 설명하는 중력가속도가 설명되죠.


즉, 서로 다른 질량을 가진 물체가 불연속으로 동시에 존재하기 위해서는 질량이 더 큰쪽의 공간의 질량화가 더 빨라야 하고


그것이 중력가속도의 차이로 연결된다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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