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암흑물질과 암흑에너지
수학의 경우 모든 증명은 결국 동어반복입니다. 'A=A이다' 처럼 말이죠.
또 A=B 이고 B=C 일때 A=C가 되며 결국 A=A(B)=A(C)가 되죠.
수학에서의 공리로 유도되는 모든 증명들을 발견이라고 하는 이유는 결국 공리의 동어반복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패러다임이란 것도 사실 어떤 공리체계에서의 동어반복적인 사고의 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물리학적인 예를 들자면 뉴턴의 3법칙이 공리(패러다임)가 되었을 경우 뉴턴역학이란 그 법칙의 동어반복적인 결론들이란 것이죠.
따라서 뉴턴역학이 물리학계의 패러다임이었을 시기의 물리학자들은 뉴턴역학의 패러다임의 틀 안에서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아인슈타인은 뉴턴의 절대시간이란 패러다임을 상대론을 통해서 상대시간으로 바꾸었죠.
그럼 결국 무엇이 바뀐걸까요? 물론 상대론의 경우 뉴턴의 3법칙이라는 공리를 바꾸었다기 보다는 빛이 절대속도라는 현상을
공리에 추가한 것뿐입니다만 결국 공리를 추가하거나 바꿈으로써 패러다임이 바뀐다는 것을 알 수 있죠.
다시말해서 패러다임이 바뀐다는 것의 근본적 의미는 공리가 바뀌거나 추가된다는 의미라는 겁니다.
그런데 앞서 설명했듯이 공리가 설정된다는 것은 한계 즉, 틀을 만들며 그 공리안에서의 동어반복일 뿐입니다.
그리고 뉴턴의 패러다임과 아인슈타인의 패러다임을 각각 구분해서 두개의 패러다임이 존재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아인슈타인의 상대론이 뉴턴역학이 설명하지 못하는 것들을 설명할 수 있으므로 더 큰 패러다임(생각의 틀)이라고 볼 수도 있죠.
그러나 그 틀이 커진다고 해도 패러다임이란 앞서 설명했듯이 그 한계성이 분명하죠.
따라서 그 생각의 틀인 패러다임이 더 많은 것을 포함할 수록, 즉 그 크기가 가장 클 경우가 가장 좋은 패러다임일겁니다.
따라서 패러다임의 크기가 무한대일 경우가 가장 좋은 패러다임이라고 볼 수 있는데, 패러다임의 크기가 무한대일 경우는
사실 패러다임이라고 정의할 수 없게 되죠. 패러다임의 크기가 무한대라는 것은 그 틀이 없어지는 것과 같기 때문입니다.
즉, 패러다임이 없을 때가 가장 큰 생각의 틀을 갖게 된다는 것인데 그게 과연 가능한가의 의문이 생기게 됩니다.
하지만 그게 가능하다면 인간은 근본적으로 생각의 자유를 가지게 되는 것과 같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런 패러다임을 해체하는 가능성(기능성)을 가진 학문이 바로 철학입니다.
즉, 사랑이 무엇인지 아름다움이란 무엇인지, 물질이란 무엇인지, 존재란 무엇인지 등등의 질문들은 철학적으로 결론이 나지 않죠.
기준에 따라 모든 것이 상대적이고 동시에 절대적이게 되면 모든 패러다임은 결국 해체가 된다는 겁니다.
수학이나 물리학과 같은 자연철학의 경우 패러다임을 만드는 철학이라고 한다면 가장 큰 집합으로써의 철학은 그 페러다임을
해체할 수 있다는 것이죠. 그것이 철학이 가장 큰 학문의 범주인 이유입니다. 철학이란 패러다임이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철학이란 집합에 수학이나 물리학과 같은 패러다임이 있는 학문이 있고 트렌드가 있는 학문이 있고 패러다임이 없는
자유분방한 학문이 있는 것이죠.
빛이 절대속도라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요? 바로 기준을 달라져도 항상 같다는 의미입니다.
그리고 그런 불변(절대성)을 가진 것이 공리에 새롭게 추가될수록 '(에너지의) 대칭성'이 지켜지기 위해서는
기존에 불변인줄 알았던 것 중 하나가 가변이 되어야 합니다.
즉, 상대속도를 가질줄 알았던 빛이 절대속도라면 기존에 불변이라 생각했던 것 중 하나가 가변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죠.
그게 상대론에서의 길이의 (수축)가변입니다. 그런데 저는 변화가 불연속이라고 했고 그로인해 시간이 불변이 되면
마찬가지로 기존에 기준이 바뀌어도 불변이라 여겼던 것중 하나가 가변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게 바로 질량의 상대성이죠. 그리고 이를 시각적으로 자명하게 보여주는 영상이 있습니다.
위의 영상처럼 매순간 모든 것이 정지해있다고 가정된 상황에서 포커스(기준)의 변화에 따라 물체의 크기는 크게보이거나
작게보이게 되는데 결국 상호작용이 임의의 기준과의 거리에 따라 상대적이게 될 경우 그 상호작용의 상대성으로 인한 어떤 현상이
발생해야합니다. 그게 바로 질량의 상대성이란 것이죠. 즉, 기준에 따라 질량이 다르다는 것이 질량의 상대성의 의미란 것이죠.
즉, 초등학생까지도 이해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제 이론입니다. 또 뉴턴역학과 상대론도 초등학생도 이해할 수 있게 설명했고 말이죠.
그럼 이곳의 사이비는 중학교 수준의 대우도 모르는 걸 보면 초등학교 수준도 안되는 인간들이라는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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