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기계론적 우주관의 결정론을 굉장히 싫어했습니다. 제가 현재 이렇게 사는 이유는 이미 빅뱅 때부터 정해져있던 것이고
정해진 수순대로 흘러서 지금의 제가 있게 된 것이기 때문이고 이건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인 셈이죠.
그런데 그런 기계론적 결정론이 성립할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바로 변화가 연속일 경우에 성립하게 됩니다.
저와 타인들 모든 질량체들 모든 입자들이 빈구간이 없이 연속으로 변화한다면 그건 모든 것들이 기계의 부품마냥
움직이고 있는 것과 다를게 없는 것이죠. 쉽게 말해서 제가 다른 사람을 관측(상호작용)하지 않더라도 그들은
알아서 기계적으로 움직이고 있을 테니까요. 물론 그런 기계론적 결정론은 양자역학에 의해 반박이 되었습니다.
그럼 이제는 확률론적 결정론이 옳다라고 물리학자들은 말하는데 확률론적 결정론이 성립할 수 있는 이유는 또 무엇일까요?
기계론적 결정론과는 반대로 변화가 불연속일 경우에 성립합니다. 과거 양자역학 등장 초기에는 코펜하겐 해석으로
미시와 거시를 나누는 양자역학이 있었지만 현대에 와서는 파동-입자 이중성이 상호작용이 없을 경우 미시와 거시의
구분없이 발생하게 됩니다. 그런데 저는 그런 설명보다는 변화가 불연속일 경우 질량이 상대적이다라고 하여
파동-입자 이중성을 설명했습니다. 한 임의의 기준이 있고 기준에 따라 한 질량체의 질량이 상대적이라는 겁니다.
쉽게 한 기준과 거리가 멀면 멀수록 상호작용이 약해지는데 그로인해 질량이 기준과의 거리에 따라 늘어나고 줄어들고
질량이 줄어들면 그만큼 확률적인 부분이 늘어난다는 겁니다(질량의 공간화).
그러다가 (기준과의) 거리에 따라서 질량체로 존재하지 않게 되는 질량체였던 것들도 생겨나게 된다는 것이죠.
그럼 제 기준으로 완전히 공간화된 것들은 기계적인 결정론대로 존재하고 있을가요? 이미 확률적인 상태가 되어버린 겁니다.
그(것)들이 다시 저와 상호작용하기 전까지 그것들은 완벽히 확률적인 상태란 것이죠.
제가 만약 내일 친구와 여행을 가기로 약속했다고 해보죠. 제 기준으로 상호작용이 안된다면 그 친구는 만나기 전까지
확률적인 상태로 존재하고 있는 겁니다. 그 친구도 제가 뭘하고 있는지 확률적인 것은 마찬가지고 말이죠.
여기서 부터 조금 어려울 수 있는데 저는 제가 지금 뭘하는지 알기 때문에 당연히 제 친구가 내일 만나게 될 저는 확률적이지
않다고 생각할 수 있는데 지금의 제가 경험하는 저는 제가 가진 확률중에 하나일 뿐이란 겁니다. 그 친구를 기준으로는
그 제가 현재 경험하고 있는 현실외에도 다른 확률들이 여전히 살아있는 상태란 겁니다.
물론 저를 기준으로는 저는 확률적인 상태가 아니기 때문에 친구만 확률적인 상태이긴하지만 말이죠.
그러니까 결국에 어떤 둘이 만나게 되는지는 만나봐야 아는거죠. 결국 정말로 내일 여행을 갈수있을지 갈수없을지는 미지수인거죠.
또는 내일 여행을 가면서 동시에 가지 못하는 경우도 모두 발생하고 말이죠.
그런데 이게 왜 저는 기계적 결정론보다 마음에 들었을까요? 확률적으로 가능한 경우의 수가 무한개라면 마치
연극의 무대처럼 어떤 가능한 모든 공연들이 있을 수 있는 장소가 바로 이 우주라고 생각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딱 한편의 연극이 아닌 무한개의 연극공연이 이루어질수있는 장소라는 것이죠.
거기서 제가 어떤 역을 맡게될지는 모르는 것이고 말이죠.
아래는 질량의 상대성을 쉽게 이해해보는 사고실험입니다.
먼저 질량이 100kg인 물체와 질량이 1000kg인 물체가 동시에 불연속으로 존재한다고 가정해보죠.
그 둘은 동시에 존재했다가 존재하지 않았다가 존재했다가 존재하지 않았다가가 반복된다는 겁니다.
에너지 보존법칙이 성립하려면 질량이 가진 에너지가 질량이 아닌 상태로 바뀌었다가 다시 질량이 되어야 합니다.
저는 그 경우 질량이 공간화가 된다고 했었죠.
그럼 그 경우 질량이 서로 다른 물체가 '동시'에 존재하기 위해서는
100kg의 질량의 에너지가 만든 공간이 질량화가 되는 것보다 1000kg의 질량의 에너지가 만든 공간이 질량화가 되는 것이 더 빨라야 합니다.
이렇게 아주 간단하게 상대론에서 설명하는 중력가속도가 설명되죠.
즉, 서로 다른 질량을 가진 물체가 불연속으로 동시에 존재하기 위해서는 질량이 더 큰쪽의 공간의 질량화가 더 빨라야 하고
그것이 중력가속도의 차이로 연결된다는 겁니다. 이런 간단한 사고 실험조차도 못하고 제 설명이 틀렸다고 하는 것들은
과연 사고력을 가진 것들인가 아니면 그냥 돌덩이인가 혼란스러울 정도입니다. 똑똑한 척은 다하면서 말이죠.
그게 이곳 물갤의 전공자들의 수준이란게 참 불쌍하고 말이죠. 적극적으로 제 설명을 비난만하는 것이 아닌 침묵하는 부류도 마찬가지고 말이죠.
다시 말하지만 제 주장의 핵심은 간단합니다. 변화가 불연속일 경우 질량이 상대적이다이고 그게 틀렸다고 하려면
변화가 불연속일 경우 질량이 상대적이 아닌 절대적이라는 것을 논리적으로 설명해보면 되는 겁니다.
나이에 상관없이 사고력만 있다면 제 설명이 옳다는 것을 쉽게 알수있다고 누누히 이야기 했지만
결국 제 설명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이유는 변화가 불연속이라는 그 자체에 거부감을 갖고 있기 때문인것이죠.
믿고 싶은 것만 믿으려면 과학을 하지 말길 바랍니다. 저도 사실 제 이론을 감정적으로는 굉장히 싫어하지만
이론적으로는 증명이 끝났기 때문에 거부하지 못하고 받아들이고 있을 뿐입니다.
어떤 이론이던 그 이론의 공리하에서는 현상과 상관없이 절대적으로 옳습니다.
수학이 현상과 상관없이 공리안에서 옳은 것 처럼 말이죠. 그런데 물리학이란 현상과 일치하는 이론이 옳은 이론인 것이고 말이죠.
빛이 절대속도라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요? 바로 기준이 달라져도 항상 같다는 의미입니다.
그리고 그런 불변(절대성)을 가진 것이 공리에 새롭게 추가될수록 '(에너지의) 대칭성'이 지켜지기 위해서는
기존에 불변인줄 알았던 것 중 하나가 가변이 되어야 합니다.
즉, 상대속도를 가질줄 알았던 빛이 절대속도라면 기존에 불변이라 생각했던 것 중 하나가 가변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죠.
그게 상대론에서의 길이의 (수축)가변입니다. 그런데 저는 변화가 불연속이라고 했고 그로인해 시간이 불변이 되면
마찬가지로 기존에 기준이 바뀌어도 불변이라 여겼던 것중 하나가 가변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게 바로 질량의 상대성이죠. 그리고 이를 시각적으로 자명하게 보여주는 영상이 있습니다.
위의 영상처럼 매순간 모든 것이 정지해있다고 가정된 상황에서 포커스(기준)의 변화에 따라 물체의 크기는 크게보이거나
작게보이게 되는데 결국 상호작용이 임의의 기준과의 거리에 따라 상대적이게 될 경우 그 상호작용의 상대성으로 인한 어떤 현상이
발생해야합니다. 그게 바로 질량의 상대성이란 것이죠. 즉, 기준에 따라 질량이 다르다는 것이 질량의 상대성의 의미란 것이죠.
즉, 초등학생까지도 이해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제 이론입니다. 또 뉴턴역학과 상대론도 초등학생도 이해할 수 있게 설명했고 말이죠.
그럼 이곳의 사이비는 중학교 수준의 대우도 모르는 걸 보면 초등학교 수준도 안되는 인간들이라는 걸까요?
https://drive.google.com/file/d/1Ns4wdYS-DHVyPmwSW54km3DHw6W43_04/view?usp=sharing
완전론요약&현대자연철학&푸앵카레추측증명.pdf
drive.google.com
양자역학을 이해하는 유일한 방법은 제 책이나 요약본을 보는 겁니다. 뉴턴역학과 상대론까지는 변화가 연속이라는 가정하의 이론이고 양자역학은 미시와 거시의 구분없이 변화가 불연속이라는 현상을 기반(공리)으로 생각해야 이해할 수 있는 이론입니다. 현상적으로 질량체나 입자의 변화는 불연속이 맞습니다. 그래서 빛이 절대속도인 것이고 말이죠. 책은 전자책으로 무료입니다. https://www.yes24.com/Product/Goods/97824037 (예스24) 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266249848(알라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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