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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을 '재발견'이라고 하는 이유는, 무려 1700년 전에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아리스타르코스(기원전 310? – 기원전 230?)가 지동설을 주장했기 때문인데, 그는 심지어 (비록 결과값은 틀렸지만) 과학적인 방법으로 지구태양 간의 거리도 계산한 인물이다. 다만 이후 천동설에 완전히 묻혀 지동설은 코페르니쿠스 때에 가서야 재발견된다.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은 이탈리아 유학 중에 아리스타르코스의 저작을 접한 것이 계기가 되었다.



과거부터 자연철학적인 관점에서 "지구가 거대한 불 중심을 돌고 있다"는 생각 자체는 존재했고, 아리스토텔레스도 지구중심설을 주장하면서도 이 가능성을 수용할 정도였다. 이론화된 태양중심설은 헬레니즘 시대의 아리스타르코스가 "태양은 달보다 훨씬 멀리 떨어졌고, 따라서 실제로는 달이나 지구보다 훨씬 클 수밖에 없다."는 것을 밝혀내면서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아리스타르코스는 달, 태양, 지구가 이루는 삼각형에서 한 각만 알면 거리비를 구할 수 있고, 일식 때 달이 태양을 가리기 때문에 크기 비율도 거리 비율과 같으리라 생각했다. 또한 개기월식이 진행되는 시간으로 지구의 그림자 크기를 계산하고 이 방법으로 지구, 달의 크기 비율을 알아냈으며, 지구, 태양의 크기 비율을 알고[1] 크기가 작은 지구가 태양을 도는 것이 자연스럽다고 생각해 태양중심설을 정립했다.

그러나 당시의 천문 관측기술로는 지구가 움직인다는 연주시차 같은 증거를 찾을 수 없었거니와 물체의 움직임에 대한 관념과도 맞지 않아, 300여 년 뒤 지구가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을 전제로 한 지구중심설이 진리로 받아들여졌다. 이후 코페르니쿠스와 갈릴레오 갈릴레이 등의 천문학자들이 새로운 관측 증거들을 바탕으로 태양중심설을 들고 나왔다. 다만 이들과 티코 브라헤 역시 갖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연주시차를 발견하는 데 실패했다. 사실 태양계 밖 천체와의 거리가 워낙 멀다보니 연주시차는 태양을 제외한 별들 중 가장 가까운 프록시마 센타우리도 수 (1 초는 1/3600도)에 불과하여서 관측이 불가능하였다.

그러나, 요하네스 케플러의 행성운동법칙인 케플러의 법칙을 발표하며 행성의 운동을 정밀하게 설명할 수 있게 되었고, 아이작 뉴턴의 새로운 운동 법칙을 통해 지구가 움직일 수 있는 원동력을 설명할 수 있게 되면서 지구중심설을 밀어내는 데 성공했다. 아이작 뉴턴 문서에서도 자세히 설명하지만, 뉴턴의 역학을 통해 '지상의 역학'은 물론 (당시 관측 가능한) '천상의 역학'이 동일함을 설명할 수 있게 되어서 천동설이 드디어 폐기된다.

그리고, 광행차가 1674년 로버트 후크에 의해 처음 관측되고 1729년 제임스 브래들리가 해석하며 천동설에 관뚜껑을 덮었고, 1838년 프레드리히 베셀이 연주시차를 확인하면서 관뚜껑에 못을 박아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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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대론이 오류라는 것을 주장한 것은 상대론이 등장할 때부터였지만

상대론이 오류라는 것을 세상이 수용하는 시기는 알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