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리학자는 세상을 구성하는 입자들과 그것들의 힘과 법칙들에 대해 탐구하여 궁극적으로 세상이 어떤 방식으로 이루어져 있고 작동하는지 알고자 한다.
그리고 물리학자가 그렇게 세상에 대해 탐구하는 이유는 본질적으로 근원과 단절된 것으로부터 나오는 결핍감과 공허감 때문이다, 즉 근원과 다시 연결되어서 그 충만감을 느끼고 싶어서인 것이다, 그리하여 물리학자는 자신이 세상을 구성하는 입자들을 밝혀내고 그것의 힘과 작동방식을 밝혀내서 세상이 궁극적으로 어떻게 이루어져 있는 이해한다면, 그러한 근원과 연결되어 그 충만감을 느낄수 있을것이라고 여긴다.
철학자는 항상 여러 언어적 개념과 말들, 책과 글들을 읽고 쓰며 그것을 통해 일종의 언어로 표현된 궁극적인 진리를 밝혀내고 알고자 한다.
그리고 마찬가지로 철학자가 그렇게 말과 언어로서 진리를 탐구하는 이유 역시 근원과 단절되어 있다는 결핍감과 공허감 때문이다, 즉 근원과 다시 연결되어서 그 충만함을 느끼기 위한 것이다. 그리하여 철학자는 그렇게 여러 언어적 개념과 말들을 탐구해서 일종의 언어로서 표현된 궁극적인 진리를 알고 밝혀내게 된다면, 역시 근원과 연결되어 그 충만감을 느낄수 있을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물리학자가 세상이 어떤 입자와 어떤 법칙으로 이루어져있는지를 밝혀내거나, 철학자가 말과 언어로써 표현된 궁극의 진리를 찾아낸다고 해도, 그들의 그러한 근원과 연결되고자 하는 갈망과 열망은 충족될수 없다. 즉 근원과 단절되어 있다는 결핍감과 공허감에서 벗어나, 근원과 다시 연결되어 그 충만감과 만족감을 느끼기 위해서는 진정한 자기 자신을 깨달아야 하는 것이다, 즉 자신의 몸, 감정, 생각, 기억은 자기 자신이 아니며, 진정한 자기 자신은 그것들을 바라보는 또다른 관찰자이자 시점이라는것을 깨달아야 하는 것이다.
내가 말하는 논점도 분야가 아닌 자로 인하여 내 주장의 의도가 대체되면서 내 주장이 평가받아야 할 상황인데 그런 윤리와 도덕 같은 원칙이 제대로 작동하냐?
네 말이 정당해지려면 진리라고 주장하는 나의 말을 개인적인 것으로 치부하여 시스템의 결점을 드러내고 네가 말하는 전문성을 훼손하는 것이 아니라 너도 네 말에 책임지는 위치에 있어야지. 내가 하는 논리의 지식은 아니나 네가 그 결과에 대하여 가능성을 차단하려 영향을 주려고 판단한 것은 사실이니까. 네가 말하는 진실은 그저 세상의 혼잡함에
목적없이 너를 더 추가한 것이야.
너희가 세상 때문에 검증을 말하고 나에게 정당하게 적용하려고 나를 설득하기 위하여 너희의 말을 세상에 확장하려는데 어떡게 그것과 충돌하는 진리를 검증할 생각이 없겠니? 알면서 두렵기 때문에 막으려는 것이겠지.
너희가 너희 문제를 모르고 내 말의 필요도 못 느끼는 것에 수준을 확장하려니까 내 근본에 있거나 동기가 이끄는 내가 평가하는 가치를 수준 이하로 만들려고 하지. 나에게 그 가치는 진리를 위한 일부인데 말이야. 너희가 이해못하여 만들어낸 이유는 너희에게나 의미가 있어. 나는 이미 그로한 비판을 내가 주장할 진리를 위하여 생각 속에서 경험했거든.
내가 하는 말이 무슨 대단한 것이냐고 하였지? 나는 너희가 나를 조롱하면서 너희의 옳음을 위하엿다고 하면서 편리를 위하여 내 지식을 남의 것으로 만들어 너희가 이용하려는 것으로 진리가 실추되는 것을 용납할 수 없어. 너희는 세상이 변화하면 이처럼 진리에 대한 평가도 바뀌지.
내가 진리를 위하여 감당하는 것은 온전한 비판에 대한 것이지 너희가 나를 비판하기 위하여 만들어낸 이유가 아니야. 나에 대한 질문은 나를 검증한 후에 나를 인정할 때나 말해. 내 가치를 내 인생에서 찾는 것으로 진리에 대한 집중을 없애는 것으로 너희의 편협함을 감추지마.
검증 없이 하는 비판은 너희의 두려움일 뿐이야. 문제에 직면하는 나의 최초 생각이 너희가 비판을 위하여 세상에 속하는 것으로 그저 과정 중에 있는 것으로 떠올린 것과 같을 수 없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