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꿈속에서 새를 보면 나는 새가 되고 바다를 보면 나는 바다가 된다. 즉, 꿈속에서 나는 모든것이 될수 있다.


그런데 육체로 돌아오면 육체인식에 막혀서 육체라는 필터를 통해 세상을 투사하기에 제한적이다.




전자의 이중슬릿도 마찬가지로 이런 개념이다. 관찰자가 없으면 전자는 제한없이 모든것이 되지만 관찰자가 끼어들면 제한이 생기는것으로 우리는 모든것에서 에너지 교류가 일어난다.


만약 에너지 교류가 없다면 이곳에서 글을 쓰는것과 혼자서 망상하는것에 아무런 차이가 없어야 한다. 혹은 온라인이 아닌 오프라인의 메모장에 적는것과 여기에 적는것이 똑같은 감정이어야 한다.


즉, 관찰자라는건 에너지 교류가 일어난다는 말이고 전자처럼 아주 작고 가벼운 물질은 이런 영향을 아주 크게 받기에 관찰자가 있고 없고 완전히 다른 움직임이 나오는 원리다.




우리는 매일 꿈속에서 전자처럼 자유로운 활동을 하고 있다. 하지만 육체로 돌아오면 이걸 못하는거다. 


우리가 현실이라 부르는건 도대체 뭘까? 그건 육체인식 이것만 현실로 규정했기 때문에 꿈은 인정하지 않아서 그렇다. 


과학계가 뇌에서 만들어낸 상상이라고 추론하는데 이건 어디까지나 추론일뿐 이게 밝혀진것도 아니다.




양자역학의 난제는 원자단위에 자아가 있다는걸 인정하지 못해서 그런거였고 전자의 이중성은 육체인식만 현실이라고 믿어서 그런거다.


즉, 육체안에 갇혀서 통제욕에 의해 완전히 계산될수 있는 영역만 과학이라 믿어왔는데 


아무리 동일한 실험을 해도 오차범위가 존재하고 오차를 없애는건 불가능한 일이다.


현실은 꿈도 육체인식도 둘다 현실인거고 관찰자에 영향을 받는건 사실이다.


앞서 말했듯 관찰자 영향이 없다면 메모장에 적는거랑 여기에 적는거랑 완전히 동일해야 한다. 하지만 댓글이 하나도 달리지 않더라도 글을 쓸데 기분부터가 다르다. 




글자에는 글쓴이의 감정이 맺혀있고 우리는 실시간으로 작게나마 그 에너지를 느끼며 에너지 교류가 일어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