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글 쓰는 정신이랄까 마음가짐이랄까 하는 것은 바로 루쉰의 그것이에요 글 쓰는 기법 문장의 아름다움 속에서 타는 분노를 억누르면서 때로는 정공법으로때로는 비유 은유 풍자 해학 익살로 상대방을 공격하는 세련된 문장작법을 그에게서 많이 배웠지요 지난 5일 세상을 떠난 리영희 선생은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난다>(1994)에서 그렇게 썼다 <역설의 변증>(1984)에서도 선생은 루쉰한테 삶의 기본자세를 배운 빚을 졌다며 루쉰이 당시 중국에서 수행한 일이 전통과 지배계급의 허위를 까밝히는 일이고 몽매한 민중의 의식을 깨우치는 작업이었다고 했다 더 거슬러올라가 1977년에 낸 <우상과 이성>에선 당시 중국 사회를 공기구멍도 없는 철감방에서 사람들이 질식당해 죽어가면서도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 비참한 상태로 그린 루쉰의 비유를 인용한다 루쉰이 1918~22년 시기에 쓴 15편의 소설을 묶은 <외침>(납함) 서문에 들어 있는 그 유명한 비유는 다음과 같다
가령 말일세 쇠로 만든 방이 하나 있다고 하세 창문이라곤 없고 절대 부술 수도 없어 그 안엔 수많은 사람이 깊은 잠에 빠져 있어 머지않아 숨이 막혀 죽겠지 허나 혼수상태에서 죽는 것이니 죽음의 비애 같은 건 느끼지 못할 거야 그런데 지금 자네가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 의식이 붙어 있는 몇몇이라도 깨운다고 하세 그러면 이 불행한 몇몇에게 가망없는 임종의 고통을 주게 되는데 자넨 그들에게 미안하지 않겠나
이 자서(自序)를 쓴 건 1922년 12월 초였으나 그의 첫 소설로 <외침> 맨 앞에 수록된 <광인일기>(1918년 4월 탈고)를 쓰게 된 동기가 거기엔 명시돼 있다 이따금 찾아오던 그의 옛 친구 진신이는 대답한다 그래도 기왕 몇몇이라도 깨어났다면 철방을 부술 희망이 절대 없다고 할 수야 없겠지 루쉰은 결국 고개를 끄덕인다 비록 내 나름의 확신은 있었지만 희망을 말하는데야 차마 그걸 말살할 수는 없었다 희망은 미래 소관이고 절대 없다는 내 증명으로 있을 수 있다는 그의 주장을 꺾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스스로 정신을 마취시키며 아무 응답 없는 적막에 절망하고 있던 루쉰은 친구가 만들고 있던 잡지 <신청년>에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희망 때문에
그 전해인 1921년에 탈고한 <고향>이란 소설 마지막에 인구에 회자되는 또 하나의 유명한 구절이 나온다 생각해 보니 희망이란 본시 있다고도 없다고도 할 수 없는 거였다 이는 마치 땅 위의 길과 같은 것이다 본시 땅 위엔 길이 없다 다니는 사람이 많다 보니 길이 되어버린 것이다 마음만 바꿔먹는다고 쉽게 이런 낙관에 도달할 수는 없다 무지와 몽매와 가난이 사람을 잡아먹는 중국 사회를 폐병을 낫게 해준다는 미신 때문에 사형수들 피를 찐빵에 적셔서 먹는 하층민들의 끔찍한 현실에 빗댄 <광인일기> <약>(1919) 그리고 <쿵이지>(1919) 루쉰은 적과 동지를 구분할 줄조차 모르는 몽매한 하층민들이 핥아먹는 피의 주인공(사형수)들이 그런 처참한 중국 사회를 바꾸려다 기득권자들 손에 희생당한 서석린 추근 같은 당시의 혁명가 혁신세력임을 곳곳에 암시해 놓았다 루쉰은 그런 현실을 철저히 부정하고 회의한다 그의 희망과 저항의 힘은 그 끝없는 부정과 회의 그리고 허무에서 나왔다
그 악몽 같은 현실에서도 루쉰이 희망을 얘기하고 마침내 <고향>의 그 낙관에 도달한 것은 1919년 근대중국의 시작을 알린 5·4운동의 충격파가 뚫어준 공기구멍 덕이 아니었을까 1921년 12월부터 22년 2월까지 <천바오 부간>에 연재한 루쉰의 대표소설 <아큐정전>(阿Q正傳) 주인공 아큐는 5 4운동의 체험까지 녹여 넣은 비참했던 근대 전환기 중국과 중국인의 자화상이자 전형이었다 이런 과정을 거쳐 루쉰은 1925년 12월 말에 페어플레이는 아직 이르다는 어찌 보면 자신만만하면서도 뼈아픈 성찰을 담은 유명한 글을 써낸다 물에 빠진 개는 버릇을 고칠 때까지 건져올리지 말고 계속 두들겨 패야 한다는 내용이다. 1911년 신해혁명이 일어나자 꼴사납게 뻐기던 일군의 신사들이 당장에 상갓집 개처럼 당황하면서 새 기풍과 함께 중국 사회가 제법 문명스러워졌다 그래서 더불어 유신하게 됐으니 우리(혁명세력)는 물에 빠진 개를 때리지 않고 그놈들이 자유롭게 기어올라오도록 내버려두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리하여 그놈들은 기어올라왔고 민국 2년 하반기까지 엎드려 있다가 2차혁명(1913년)이 일어났을 때 갑자기 나타나서 위안스카이를 돕고 수많은 혁명가들을 물어죽였다 그리하여 중국은 다시 하루하루 암흑으로 빠져들어 오늘에 이르게 되었다 루쉰은 혁명진영의 왕진파가 서석린과 추근 등을 밀고해 죽인 세력 주모자를 붙잡아 밀고문서까지 압수했으나 심성이 착해 그자들을 놓아주는 바람에 추근의 동지였던 왕진파가 오히려 위안스카이 반동세력에 빌붙은 그들 손에 도륙당한 사실을 지적하면서 아직 페어플레이만 해선 안 된다고 외친다 남의 얘기 같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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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들겨 패면 버릇이 고쳐질 것이라는
이 세상 어딘가에는 페어플레이라는 달달한 것이 남아있을 것이라는
이 세상 어딘가에는 천국이 있을 것이라는
착각 헛된 기대와 희망이 문제다
자본주의건 공산주의건 사회주의건 그 어떤 체제건 인간이 손을 대면 썩는다
인간이 살아서는 천국에 갈 수 없는 이유는 천국을 오염시키기 때문이다
체제나 시스템의 문제가 아니라 그 체제와 시스템을 운영하는 인간의 문제다
모든 인간은 순수한 털 없는 원숭이로 태어나 인간에 의해 인간으로 사육되고 오염된다
인간의 틀안에서 쓰레기를 소각하지 않고 문제를 해결해보려는 모든 꼼수는 실패했고 실패할 것이다
인간을 짐승과 다른, 짐승보다 우월한 존재로 전제(前提)하는 망상이야말로 니체에 의해 신(God)이 처참하게 도륙 당한 후 신의 탈을 뒤집어 쓰고 호가호위해온 인간 바이러스의 결정체다
악마는 항상 전제(前提)에 숨어있다
인간은 질병이다
인본주의(人本主義)의 망령에서 벗어나, 신의 탈을 벗고 인간에서 해방되어야 한다
인간은 절대 자유로울 수 없다
프랑스 대혁명의 순간에서처럼 잠깐이나마 신의 탈을 벗고 인간에서 해방되어 짐승으로 돌아가는 순간 얼핏 자유가 보일 것이다
피한방울 흘리지 않고 자유를 얻으려는 욕심이 문제다
공짜 점심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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