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God)이 니체에 의해 처참하게 죽임을 당한 후 지금까지 인간은 신의 탈을 쓰고 신이라도 되는 양 호가호위 해왔다
기존에 신이 하던 일을 인간이 해야만 했으니 인간은 신처럼 합리적이고 이성적이어야만 했다
르네상스를 거치면서 근대 사상가와 철학자들은 인간을 신으로 삼는 새로운 성경을 써내려갔다
천부인권 인본주의 민주주, 자유 평등 박애 등등 인간은 이성적이고 합리적이라는 대전제 하에 수많은 근대 사상들이 이 때 만들어 졌다 이러한 사상들은 오늘날 대부분의 민주주의 국가의 이념이 되었다 우리가 어릴 때 배웠고 지금도 배우고 있는 사상들이 대부분 이 때 만들어졌다
하지만 DNA 자체가 비이성적이고 비합리적인 말하는 원숭이들이 신 노릇을 한다는 자체가 모순이었다
오늘날까지 천부인권 인본주의 민주주의 자유 평등 박애 등등 이런 것들이 제대로 실현된 적이 있는가
인간은 그동안 몸에 맞지 않는 옷을 입고 있었던 것이다 신의 탈을 쓰고 호가호위 했을 뿐 말하는 원숭이는 신이 될 수 없다
동물들은 배가 고프지 않으면 사냥하지 않으며 자기 종을 대량학살하지도 않는다
오직 신의 탈을 쓰고 신인 척 호가호위하는 인간만이 그렇게 한다
우리가 그동안 인간다운 것이라고 알아 온 것들은 사실은 동물다운 것이다
우리가 그동안 짐승 같은 것이라고 알아 온 것들이 사실은 인간다운 것이다
우리는 연쇄살인범 같은 범죄자들을 보면 짐승만도 못한 놈이라고 한다
짐승은 연쇄살인을 하지 않는다 오직 신의 탈을 쓴 인간만이 그렇게 한다
동물들도 자기 새끼 아끼고 부모를 따르며 약한 개체를 도우며 자기 종족을 함부로 죽이지 않는다
동물들은 우리가 인간다움이라고 표현하는 모든 것을 가지고 있다
그렇다 신의 탈을 쓴 말하는 원숭이는 짐승만도 못한 존재인 것이다
신이 이상향인 천국을 건설했듯이 신의 탈을 쓴 인간도 이승에 천국을 건설하려한다
사상가와 철학자들이 만든 모든 사상과 모든 철학은 각각의 이상향(천국)을 그린다
신이 자신의 이상향을 건설하기 위해 물불을 안가렸듯이 (예 노아의 홍수)
신의 탈을 쓴 인간도 이상향을 건설하기 위해서는 물불을 안가린다 (예 전쟁 같은 대량학살 )
이제라도 몸에 맞지 않는 신의 탈을 벗고 본연의 동물로 돌아가야 한다
어떤 부당한 일을 당해도, 계속 참아야만 하는 것은 계속 참아야만 한다고 생각되는 것은 그래도 죽창을 들면 안된다고 생각하는 것은 신의 탈을 쓰고 있기 때문이다
동물은 그냥 죽창을 든다
인간이 미련하게 고통을 참을 때까지 참다 도저히 못참아서 이대로 조금만 더 참으면 죽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이래 죽으나 저래 죽으나 매한가지라는 생각이 들어서 뒤늦게 죽창을 드는 순간은 지금까지 쓰고 있던 신의 탈을 벗고 동물이 되는 순간이다
이성(신의 탈)은 본능을 마비시키며 체제에 스스로 순종하게 만든다
이성은 참을 인(忍)자를 세번이나 쓰게 만든다
곰과 호랑이를 동굴에 가두고 마늘과 쑥만을 먹이며 참을 인(忍)자를 천번 쓰게 하면 인간이 되어버리고 만다
모든 인간은 갓 태어날 때는 순수한 동물이었다
이 갓 태어난 순수한 동물은 참을 인(忍)자 쓰기를 통해 신의 탈이 씌워지고 인간으로 길들여진다
사람은 태어난 후 체제와 시스템에 의해 인간으로 사육되는데, 대부분 본능을 억제하는 훈련이다
대부분 무엇을 하면 안된다는 명령인데 명령을 잘 지키면 당근을 주고, 어기면 채찍을 가하는 방식으로 훈련된다
사람을 뽑을 때 시험성적을 보는 이유는 그 사람이 얼마나 똑똑한가 지식을 얼마나 많이 알고 있는가를 보기 위한 것이 아니라 체제와 시스템에 얼마나 잘 복종하는가를 보는 것이다 똑같은 능력일 때 시험성적이 더 좋다는 것은 그만큼 더 체제와 시스템에 더 잘 복종했다는 의미인 것이다 놀고 싶은 본능을 억제하고 체제와 시스템에 복종하는 사육이 잘된 우수한 개체인 것이다
체제와 시스템이 원하는 바를 무시하고 놀고 싶을 때 노는 욕망이 앞서는 개체는 낮은 점수의 시험성적으로 드러나고 인간으로 사육이 덜 된 불량품이 된다 이런 불량품은 시스템에 의해 자연스럽게 걸러지고 퇴출된다
이렇게 약 20년간 훈련을 받으면 제대로된 인간으로 사육된다
이렇게 씌워진 신의 탈은 얼굴과 완전히 붙어버려서 떼어내려면 엄청난 고통이 동반된다
거의 페이스 오프가 되어야 한다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170667&PAGE_CD=N0004&CMPT_CD=E0018M
무등산 타잔 박흥숙의 사례처럼 신의 탈이 한번에 벗겨지면 그 고통이 제어가 안되어 폭주하고 만다
따라서 지금까지 신의 탈은 고통을 참아가며 아주 조금씩 약을 발라가며 떼어내야 했다
성철 스님 같은 사람들은 신의 탈을 조금씩 떼어내다가 결국엔 다 떼어내지 못하고 죽은 사람들이다
거부반응 없는 진통제나 약물의 개발이 필요한데 그것은 새로운 사상의 형태를 가진다
장기간에 걸쳐 체계화된 진통제를 단계적으로 투입한 후 원하는 시간 원하는 장소에서 한번에 벗기는 방식과
장기간에 걸쳐 체계화된 약물을 투여하여 신의 탈을 조금씩 녹이는 방식으로 구분된다

인간은 유인원이라고 씨발련아 꼬리달린 잡것들이랑 한데묶지마셈 ㅡ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