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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기우


완전론.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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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자연철학(출판버전이아님).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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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체계차원론1-7.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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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전론+현대자연철학+수체계차원론입니다. 읽어보시면 약 100년동안 물리학자들도 이해 못한 양자역학을 몇 시간이면 이해할 수 있을 겁니다.



사실 패러다임이 지배하고 있다는 말은 결국 인간의 사고 방식이 자유롭지 못한 상태라는 겁니다. 논리라는 것이 가끔 굉장히 거북할 때가


있는 이유도 어떤 주장이 논리적으로 옳다고 여기면 감정적으로 그 주장이 싫더라도 받아들여야 하는게 옳은 것 처럼 느껴지기 때문이죠.


물론 패러다임이란 것이 그냥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고 통계적으로 또는 실증적으로 옳기 때문에 받아들여진 것이라 자신이 예외의 경우라고


생각할 정도로 자신감이 없으면 별 불만없이 받아들이는 편이죠. 물론 패러다임은 바뀝니다. 세상이 변하기 때문이죠. 기술도 발전하고 그에 따라


사람도 적응하고 그렇다면 결국 패러다임이 변한다는 것은 이론적으로는 새로운 공리가 출연했음을 의미합니다. 새로운 공리에 따라 어느 정도


이전의 패러다임과 공통인 부분도 있긴 하지만 혁명적으로 느껴질 정도로 많은 것이 변하곤 합니다. 역사로 비유하자면 고려시대에서 조선시대로


바뀌는 것과 비슷하다는 것이죠. 사람은 그대로인데 지배층이 바뀐 것과 비슷하다는 겁니다. 물리학적으로 설명하자면 뉴턴역학에서 상대론으로


바뀌었어도 사실 여전히 뉴턴역학은 유용하게 쓰이고 대다수의 사람들이 실제로 상대적인 시간개념으로 세상을 보기보단 절대시간 개념으로


세상을 보는 사람이 더 많다는 겁니다. 배운건 상대시간이 더 옳다고 배웠으면서도 말이죠. 그래서 머리로는 이해할 수 있다고 실제로 그러한


패러다임으로 사는 것도 아니라는 것이죠. 그래서 물리학적 패러다임은 대다수의 사람들에게 크게 중요한 문제가 아닙니다.


물론 다큐같은 것을 보고 뉴턴 뽕을 맞거나 아인슈타인 뽕을 맞은 사람들이 순간 관심을 가지지만 그리 오래가지 못하고, 또 사실 그런 것을


대다수가 관심 갖는다는 것도 어쩌면 소모적인 부분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인구의 대다수가 어느 한분야에 집중되어봤자 될 수 있는 사람은


소수이기 때문이죠.  결국 어느 한 패러다임에 사람들이 모두 매몰되는 것이 좋은 것만은 아니라는 것이죠. 다양성이 중요하다는 겁니다.



사실 어느 한 패러다임이 인간 전체를 영구적으로 지배할 수 없었던 것도 공리간에 밸런스가 잘 잡혀있었기 때문입니다. 성선설이냐 성악설이냐의


문제도 여전히 결론이 안난 것처럼 말이죠. 관련해서 철학의 아버지가 소크라테스인 이유도 바로 이 점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이론이라는 것은


공리가 있어야 하는데 그 공리에 동의를 한다면 누구나가 사실 같은 결론을 낼 수 밖에 없게 되는데 이게 사회에서 지배적인 경우 패러다임의


역할을 하게 되는데 결국 그것이 하나의 사고방식의 구속이라면, 왜를 묻는 행위는 그런 공리를 믿음의 영역으로 밀어넣거나 그와 반대되는 공리의


존재성을 보여주기도 한다는 것이죠. 즉, 그래서 왜를 묻는 행위는 생각의 자유를 추구하는 행위와 같다는 것이죠. 예를 하나 들자면 0이라는 것은


수학적으로 없음이지만 1-1도 0이고 2-2도 0, 3-3도 0이죠. 결국 ...(-3+3)=(-2+2)=(-1+1)=0=(1-1)=(2-2)=(3-3)...∞ 와 같은 꼴이 가능한데


각각의 괄호안의 숫자가 쌍소멸 되었다고 생각하면 0은 둘 다 없음이지만 공존하고 있다고 생각하면 둘 다 있음이 됩니다. 관련해서 결국


저는 저런 0의 구조에 대해서 우주가 0의 구조라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그리고 그 0을 둘 다 있음이라는 의미의 공리를 설정했는데 여전히


누군가는 그 0을 둘 다 없음으로 설정할 수 있다는 겁니다. 즉, 제가 이론을 어떻게 만들어도 반대 패러다임과 공존하게 된다는 것이죠.


또 물론 반대 패러다임을 허용하지 않는 것은 이론이 될 수 없고 말이죠. 공리는 명제이기 때문입니다. 결국 어떤 패러다임이 지배적이더라도


그 패러다임의 공리와 정반대의 공리가 존재함으로써 인간에겐 생각의 자유가 항상 존재하게 되기 때문에 결론적으로 그래서 옳은 철학적


결론이란 자체로 모순적이어야 한다는 겁니다. 왜를 묻는 것이 철학이고 그런 철학은 최종 종착점은 불가지(모순의 공존)의 상태에 빠지는 것이


되는 것이 자연스러운 결과라는 것이죠. 그래서 제가 설정한 최종적인 우주의 구조도 결국 철학적(모순적)인 구조인 5차원입니다.


물론 결국 우리는 자체로 우주적 구조를 가지지 못한 3차원에 불과한 존재입니다. 따라서 형이상적인 생각에서 벗어나 형이하학적인


선택을 할 수 밖에 없기 때문에 결국 인간은 스스로가 어떤 패러다임에 지배를 받는 것을 선택하거나 강요받는 것이죠. 


결론을 간단히 하자면 제목에서의 패러다임은 생각의 구속을 의미하며 소크라테스는 생각의 자유를 의미한다는 겁니다.


 

* 아래의 난제들을 모두 이해하고 싶으면 위의 링크글을 읽으시면 됩니다.


1. 우주는 왜 또는 어떻게 존재하고 있는가? (빅뱅과 블랙홀 특이점 문제)


2. 우주의 차원은 몇차원인가?(우주의 차원이 정말 끈이론의 말대로 11차원인가?)


3. 변화는 연속인가 불연속인가?(제논의 역설, 미적분과 양밀스질량간극가설의 관계)


4. 중력은 왜 다른 힘들과 통합되지 못하고 있는가?(중력은 관성력으로 다른 힘들은 실제힘으로 설명되는데 어떻게 통합할 것인가?)


5. 우주는 유한한가 무한한가? 또는 영원불멸한가 소멸할 것인가?


6. 암흑에너지 암흑물질


7. 공간이란 무엇인가?


8. 비행기가 뜨는 양력의 원인은 무엇인가?


9. 상대론과 양자역학의 통합은 가능한 일인가?


10. 빛은 왜 절대속도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