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15714ab041eb360be3335625683746f0253452cd6a6ea890b9df62c37a1c32805c258067e29ddff3e6b014ab3ebaa8373c84c77be1a91

1. LSD 경험


파인만은 1960년대 중반, 뇌 과학자이자 심리학자인 존 릴리(John Lilly)가 운영하던 '감각 차단 탱크(Isolation Tank)' 실험에 참여하게 된다. 캄캄하고 소음이 차단된 따뜻한 소금물 탱크 안에 몸을 띄워 감각을 완전히 제거했을 때 뇌가 어떤 환각을 만들어내는지 그는 알고 싶어했다. 처음에는 약물 없이 탱크에 들어갔으나 환각을 보는 데 어려움을 겪자 결국 그는 LSD를 소량 복용하고 실험에 임했다. 그가 묘사한 경험은 매우 구체적이다.


신체 이탈 경험: 파인만은 자신의 의식이 몸 밖으로 빠져나와, 자신의 손이나 몸을 제3자의 시선에서 바라보는 듯한 경험을 했다고 기록했다.


시각적 환각: 기하학적인 문양이나 화려한 색채가 눈앞에 펼쳐지는 전형적인 LSD 환각을 목격했다.


자아의 해체: 그는 "내가 누구인지, 내 이름이 무엇인지조차 잊어버리는 상태"에 도달하는 과정을 논리적으로 관찰하려고 했다.


이후 파인만은 몇 차례의 실험 끝에 약물을 완전히 끊기로 결심한다. 그 이유는 자신의 가장 소중한 자산인 '사고하는 능력(Thinking machine)'이 약물에 의해 망가지는 것을 극도로 두려워했기 때문이다. 그는 "내 뇌가 망가지는 것을 지켜보는 것은 너무 즐겁지만, 동시에 너무나 위험하다"고 말하면서 지적인 즐거움을 방해하는 그 어떤 화학적 의존도 원하지 않았다.







2eb88474b0d13ca56cee85b410d22169f4306dc1dcab3960586eb29939324972301a6f6ccfc02bd18b7bc70320b9a4


2. 로스앨러모스 연구소 시절


당시 20대 중반이었던 파인만은 맨해튼 프로젝트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했다. 파인만은 한스 베테(Hans Bethe)가 이끄는 이론 부서(T-Division)에 소속되었고, 그의 주된 임무는 원자폭탄이 폭발할 때 발생하는 에너지와 중성자의 확산을 계산하는 것이었다. 당시에는 현대적인 컴퓨터가 없었기 때문에 수십 명의 사람들이 수동 계산기(Marchant calculators)를 이용해 계산을 수행했다. 파인만은 이 계산 과정을 병렬 처리 방식처럼 효율적으로 조직하여 속도를 획기적으로 높였다.


IBM 펀치 카드 시스템: 초창기 IBM 계산기가 도입되었을 때, 파인만은 이 기계들을 직접 수리하고 프로그래밍하여 복잡한 미분 방정식을 푸는 데 최적화했다.


'베테-파인만 공식' 개발: 그의 상관이었던 한스 베테와 함께 피사일(fissile) 물질의 폭발 효율을 계산하는 공식을 만들었다. 이 공식은 원자폭탄의 위력을 예측하는 데 필수적이었으며, 오늘날에도 '베테-파인만 효율 공식(Bethe-Feynman formula)'으로 알려져 있다.


금고 털이와 보안 취약점 폭로: 파인만은 로스앨러모스의 '장난꾸러기(Prankster)'로도 유명했다. 그는 기지 내의 보안이 얼마나 허술한지 증명하기 위해 동료 과학자들의 금고 다이얼을 돌려 기밀 서류를 꺼낸 뒤 "이 서류 빌려감"이라는 쪽지를 남겨두곤 했는데 이는 단순히 장난이 아니라 국가 기밀을 다루는 시설의 보안 경각심을 일깨우기 위한 그만의 독특한 방식이었다.


우라늄 농축 공장의 안전 점검: 파인만은 테네시주 오크리지(Oak Ridge)에 있는 우라늄 농축 공장으로 파견되기도 했다. 당시 공장 사람들은 우라늄을 너무 많이 한곳에 모아두면 스스로 연쇄 반응을 일으켜 폭발(임계 사고) 할 수 있다는 위험을 잘 몰랐고, 파인만은 공장의 설계도를 검토하여 우라늄 저장 방식의 위험성을 경고하고 안전 수칙을 만들어 대형 사고를 미연에 방지했다.


트리니티 테스트(Trinity Test) 목격: 1945년 7월 16일 인류 최초의 원자폭탄 실험 현장에서 대부분의 과학자들은 눈을 보호하기 위해 검은 안경을 썼지만, 파인만은 트럭의 앞 유리가 자외선을 차단해줄 것이라 믿고 맨눈으로 폭발을 직접 지켜본 몇 안 되는 사람 중 하나였다. (물론 나중에 눈이 따가워 고생했다고 한다.)


파인만은 이곳에서 로버트 오펜하이머, 한스 베테, 폰 노이만, 엔리코 페르미 같은 거물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실전 물리학을 배웠다. 특히 오펜하이머는 파인만의 재능을 알아보고 그를 특별히 아꼈다고 한다.







a15714ab041eb360be3335625683746f0253452cd6a6ea890b9df62c37a1c3296e6b293ac233c0ed48e17605a8e508f43734d1c9dba5


3. 일본 사랑


파인만은 1950년대에 일본을 방문했을 때 서구식 호텔이 아닌 일본 전통 여관(료칸)에 묵겠다고 고집을 부려 주변을 놀라게 했다. 그는 일본의 전통 문화, 다다미방, 유카타 등을 매우 좋아했으며, 일본인들의 예의 바른 태도와 학문에 대한 진지함에 반해 "일본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나라 중 하나"라고 공공연히 말하곤 했다. 그는 일본어를 배우려고 시도하기도 했으며, 일본 학자들과 격식 없는 토론을 즐기며 그들의 사고방식을 배우려 노력했다.


공동 노벨상: 1965년 파인만은 양자전기역학(QED)을 완성한 공로로 일본의 도모나가 신이치로(Sin-Itiro Tomonaga), 미국의 줄리언 슈윙거와 함께 노벨 물리학상을 공동 수상했다. 두 사람은 지구 반대편에서 서로 교류 없이 연구했음에도 불구하고 계산을 해결하는데 거의 동일한 결론에 도달했다. 파인만은 도모나가의 연구 결과를 보고 "그가 나보다 훨씬 앞서 있었다"며 그의 명쾌한 접근 방식을 매우 높게 평가했다.



3fb4d32ee4c03ceb68bacfbb1bd02a70bb55d542405d5b4a756605913f80a9bdf4d1f962f21400de35a890e82cb3a59cb6e487069658164840e53f3a513198c98bd59285ece0cd66271eaa937798650f0e08acd5817abf


파인만은 일본인 최초의 노벨상 수상자인 유카와 히데키와도 잘 아는 사이였다. 전쟁 후 일본을 방문했을 때 유카와를 만나서 일본의 젊은 물리학자들이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수준 높은 연구를 이어가는 것에 깊은 감명을 받았고, 유카와를 포함한 일본 물리학자들의 정중하면서도 날카로운 태도를 존경했다.




23bcdd24f0ed3ea377b1dbb4189f2e2d47154b36bf98303d5c09c8d3


파인만은 일본 방문 당시 사카타 쇼이치 (Shoichi Sakata)의 연구 그룹과도 교류했다. 파인만은 사카타가 주도한 입자 물리학 모델들에 관심을 가졌으며, 일본 물리학계 특유의 협력적인 연구 방식에 흥미를 느꼈다고 기록했다.



75bcd424b4826ba46fedd7e24089756ae26ea6b75b558972c3aca7617a5ff447d95f8287fc303d19dac1618f517d87


도이치로 키노시타(Toichiro Kinoshita)는 파인만과 동시대에 활동하며 그의 '파인만 다이어그램'을 가장 정교하게 다루었던 학자 중 한 명이었다. 두 사람은 학문적으로 깊이 존경하는 사이였으며, 파인만은 키노시타의 엄청난 끈기와 정확한 계산 능력을 높게 평가했다. 키노시타의 업적 중 가장 유명한 것은 전자와 뮤온의 '이상 자기 모멘트(g−2)'를 계산한 것이다. 그는 수십 년에 걸쳐 수천 개의 파인만 다이어그램을 계산했는데 이는 인간의 손과 슈퍼 컴퓨터를 동원한 고난도의 작업이었다. 그의 계산 결과는 실험값과 소수점 아래 10자리 이상 일치했는데 이는 인류 역사상 이론과 실험이 가장 정확하게 일치하는 사례로 꼽히며, 파인만의 QED 이론이 옳다는 것을 증명하는 결정적인 근거가 되었다. 파인만이 "나의 이론이 맞는지 확인하고 싶다면 키노시타에게 물어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그는 파인만 이론의 가장 강력한 조력자이자 검증자였다. 키노시타 교수는 2023년 99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는데 그는 파인만 세대의 물리학자 중 마지막까지 현역을 지킨 거인 중 한 명으로 기억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