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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출생 일화


테슬라는 1856년 7월 10일 자정 무렵, 격렬한 번개 폭풍이 몰아치던 밤에 태어났다. 당시 산파가 번개를 보고 불길한 징조라며 "이 아이는 어둠의 자식이 될 것"이라고 걱정했지만 그의 어머니는 "아니오, 그는 빛의 아이가 될 것입니다"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테슬라의 어머니 듀카(Djuka Tesla, 결혼 전 성은 Mandić)는 당시 세르비아인 사회에서 매우 명망 높은 지식인 및 성직자 가문 출신이었다. 만디치 가문은 대대로 세르비아 정교회(Serbian Orthodox)의 사제들을 배출한 가문이었고 듀카의 아버지는 물론 그녀의 오빠들 또한 고위 성직자였다. 테슬라의 외삼촌 중 한 명인 페타르 만디치(Petar Mandić)는 나중에 '니콜라이'라는 법명을 받은 정교회 주교(Bishop)가 되었을 정도로 가문의 위세가 대단했다. 하지만 듀카는 집안의 장녀로서 눈이 나쁜 어머니를 대신해 집안일을 도맡느라 정식 학교 교육을 전혀 받지 못했다. 그녀는 문맹이었고 집안에서 사용하는 온갖 가사 도구와 농기구들을 직접 만들거나 개량했다. 또한 실을 뽑는 정교한 기계들을 직접 설계하고 만들었다. 테슬라는 자서전에 "어머니는 정식 교육을 받을 기회가 전혀 없었지만, 만약 적절한 환경에서 교육을 받았다면 인류 역사에 남을 위대한 발명가가 되었을 것이다."라고 회상했다. 그녀는 세르비아의 구전 서사시를 수천 구절씩 통째로 외웠으며 한번 본 것은 절대 잊지 않는 사진 같은 기억력을 가졌다고 한다. 아버지 밀루틴 테슬라 역시 사제였고 그는 매우 검소하고 책 읽기를 좋아하는 선비 같은 인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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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숫자 '3'에 대한 강박


테슬라는 심각한 강박 장애(OCD)를 앓았는데, 특히 숫자 3에 비정상적으로 집착했다. 건물에 들어가기 전 주변을 꼭 세 바퀴 돌아야 한다거나, 식사 전에는 냅킨을 무려 18장(3의 배수)이나 사용하여 식기류를 닦았다. 호텔에 묵을 때도 방 번호가 3으로 나누어지는 곳만 고집했다. 수영할 때도 반드시 33바퀴를 도는 등 모든 행동의 횟수를 3의 배수로 맞추려 노력했다. 테슬라는 "당신이 3, 6, 9의 장엄함을 알기만 한다면 우주의 열쇠를 갖게 될 것이다"라는 말을 남겼다고 전해진다. 그가 이 숫자에 부여한 의미는 다음과 같았다.


수학적 패턴: 테슬라는 우리가 숫자를 1부터 2배씩 늘려가는 과정(1,2,4,8,16→7,32→5...)에서 3, 6, 9가 일종의 '상위 차원'의 에너지를 나타낸다고 보았다.


자유 에너지의 통로: 그는 3, 6, 9가 우리 눈에 보이는 물리적 세계(1, 2, 4, 5, 7, 8)를 지배하는 고차원적인 벡터 에너지라고 생각했다. 특히 9를 우주 그 자체 혹은 절대적인 중심점으로 여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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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독특한 신체 관리와 습관


발가락 조이기: 뇌세포를 자극한다며 매일 밤 잠들기 전 양발의 발가락을 각각 100번씩 조였다고 한다.


초단기 수면: 하루에 2시간 이상 잠을 자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때로는 실험에 몰두하느라 48시간 이상 깨어 있기도 했다.


결벽증과 혐오: 세균에 민감해 끊임없이 손을 씻었으며, 특히 진주를 극도로 싫어했다. 진주 목걸이를 한 여성과는 대화도 섞지 않았고, 진주를 착용한 비서에게는 집에 가서 옷을 갈아입고 오라고 할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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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머릿속에서 설계하는 '비주얼 씽킹'


테슬라는 설계를 할 때 종이에 도면을 그리지 않았다. '사진 기억 능력'이 있어 머릿속에서 입체적인 장치를 설계하고, 가상으로 기계를 가동해보며 마모되는 부분까지 계산해냈다. 그는 "머릿속에서 실험을 끝낸 뒤 실제 제작에 들어가면 단 한 번의 오차도 없이 작동했다"고 회상했다.테슬라는 어린 시절부터 눈앞에 강렬한 빛의 섬광(Flashes of Light)이 나타나면서 이미지가 떠오르는 증상을 겪었다. 초기에는 이 증상을 고통스러워했지만 나중에는 통제하는 법을 익혔고 자신의 뇌가 외부의 에너지를 수신하는 안테나와 같다고 믿으며 그 섬광을 우주의 원리를 수신하는 신호로 해석했다. 또한 테슬라는 자서전에서 밤마다 꿈속에서 낯선 도시를 여행하고 사람들을 만나 친구가 되는 경험을 했다고 기록했다. "나는 매일 밤 여행을 떠났다. 새로운 장소를 보고, 사람들과 대화하며 우정을 쌓았다. 비록 믿기 힘들겠지만, 그들은 현실의 사람들만큼이나 생생했다." 그는 이 가상의 세계에서 보낸 시간들이 자신의 창의성을 극대화하는 훈련 과정이었다고 믿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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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8개 국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한 언어 천재


테슬라는 공식적으로 8개 국어를 능숙하게 말하고 읽고 쓸 수 있었다고 전해진다. 단순히 의사소통만 하는 수준이 아니라 각 언어의 문학 작품을 원어로 즐길 정도로 능통했다고 한다.


5세~17세 (1861년~1873년): 당시 테슬라가 살던 지역은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지배하에 있었기 때문에 학교 교육은 주로 독일어로 이루어졌다. 테슬라는 고등학교(Gymnasium) 시절 이미 독일어로 된 복잡한 수학과 물리학 서적을 완벽히 이해할 수준이었다.


19세 ~ 22세 (1875년 ~ 1878년): 테슬라는 대학 시절 하루에 20시간씩 공부하는 지독한 학습광이었다. 당시 유럽의 지성인이 되기 위한 필수 코스였던 라틴어를 마스터했고, 전 세계의 과학 논문을 읽기 위해 프랑스어와 이탈리아어를 독학하거나 수업을 통해 익혔다. 그는 괴테의 『파우스트』 전체를 독일어로 암기할 정도로 언어적 기억력이 탁월했다.


24세 ~ 25세 (1880년 ~ 1881년): 아버지의 권유로 프라하에서 공부하고, 이후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전신 회사 엔지니어로 일하면서 현지 언어들을 습득했다. 그는 단순히 의사소통하는 수준을 넘어 해당 언어의 문학작품을 즐길 정도로 깊게 공부했다.


26세 ~ 28세 (1882년 ~ 1884년): 파리의 에디슨 지사에서 일하며 영어를 익히기 시작했고, 1884년 미국 뉴욕으로 건너가면서 영어를 완벽하게 구사하게 되었다. 그는 훗날 영어로 수많은 논문과 자서전을 썼으며, 매우 품격 있고 유려한 영어를 구사하는 것으로 유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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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죽음을 예견한 직관


테슬라는 가끔 '초능력'에 가까운 직관력을 보여 주변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젊은 시절, 친구들과 기차 여행을 가기로 했으나 테슬라는 "이유를 알 수 없는 불길한 느낌" 때문에 가지 않겠다고 고집을 피웠다. 결국 그가 타려던 기차는 큰 사고가 났고 많은 사상자가 발생했다. 또한 J.P. 모건에게 "타이타닉호에 타지 말라"고 강력히 권고했고 실제로 J.P 모건은 항해 직전 건강상의 이유를 들어 승선을 취소했다. 흥미로운 점은 테슬라가 경고를 보낸 사람이 모건뿐만이 아니었다는 기록이 존재한다. 테슬라는 친구였던 밀턴 허쉬(Milton Hershey)에게도 승선을 만류했고, 허쉬 역시 일정이 생겼다는 이유로 승선을 포기하여 목숨을 건졌다. 당시 테슬라는 "수많은 사람들의 생명이 위험에 처해 있다는 강한 정신적 충격을 느꼈다"고 술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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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에디슨과의 라이벌 관계


테슬라가 에디슨의 회사에서 일하던 시절, 에디슨이 "발전기를 개선하면 5만 달러를 주겠다"고 약속해 테슬라가 이를 완수하자 에디슨은 "자네는 미국식 유머를 모르는군"이라며 보상을 거절했다. 이에 분노한 테슬라는 즉시 사표를 던졌고 '테슬라 일렉트릭 라이트 컴퍼니(Tesla Electric Light Company)라는 자신의 회사를 차린다. 이때 테슬라는 교류 유도 전동기(모터)를 만들고 싶어 했지만, 투자자들은 당장 돈이 되는 아크등(가로등) 사업에만 관심이 있었다. 테슬라가 효율적인 아크등 시스템을 개발해 주자 투자자들은 테슬라의 경영권을 뺏고 회사에서 그를 내쫓아 버린다. 이때 테슬라는 자신이 가진 주식과 특허권까지 거의 모두를 잃게 된다. 당시 전기 시장은 에디슨의 직류(DC) 시스템이 장악하고 있었고, 투자자들은 에디슨의 영향력 아래에 있는 부품 업체나 지자체와 협력해야 했기에 에디슨이 극도로 싫어하는 교류를 연구하겠다는 테슬라를 방치하는 것이 커다란 사업적 리스크라고 판단했을 것이다. 이 시기 테슬라는 도로 굴착 노동을 하며 하루 2달러를 벌어 연명해야 했다. 그러다 그의 처지를 안타깝게 여긴 공사 감독관이 그를 A.K. 브라운이라는 투자자에게 소개해주었다. 브라운은 테슬라의 이론이 비범함을 알아보고 그의 교류(AC) 유도 전동기를 완성할 수 있도록 연구실을 따로 마련해 주었다. 1888년 5월 테슬라는 미국 전기공학회(AIEE)에서 자신이 개발한 교류 유도 전동기의 작동 원리를 직접 시연하며 강연을 했는데 마침 철도 브레이크 발명으로 큰 부를 쌓고 전기 사업 확장을 노리던 조지 웨스팅하우스가 이 강연에 있었다. 그는 테슬라의 발표를 보자마자 "저것이 바로 내가 찾던 미래의 기술이다"라며 전율했다. 웨스팅하우스는 곧바로 테슬라를 찾아가 테슬라의 교류 관련 특허권들을 당시 거금인 6만 달러(현 가치 수십억 원)에 사들였고, 이후 생성되는 전력 1마력당 2.5달러의 로열티를 테슬라 개인에게 지급하기로 계약했다. 또한 테슬라를 자신의 회사 고문으로 영입하여 월급을 주며 연구에만 몰입할 수 있게 해주었다. 이후 테슬라는 에디슨과 '전류 전쟁(War of Currents)'을 벌이게 된다. 에디슨은 이미 직류 기반의 인프라를 구축해 막대한 로열티를 벌고 있었기에, 효율적인 교류가 등장하자 위기감을 느꼈다. 에디슨은 테슬라의 교류가 위험하다는 인식을 심어주기 위해 소름 끼치는 홍보 활동을 펼쳤는데, 개, 고양이, 심지어 코끼리를 교류 전기로 감전시켜 죽이는 공개 실험을 강행했다. 그리고 에디슨은 사형 집행용 전기의자에 교류를 사용하도록 로비했다. 사람들이 교류를 '죽음의 상징'으로 기억하게 하려는 의도였다. 테슬라는 자신의 순수한 발명품이 살상 도구로 홍보되는 것에 큰 정신적 충격을 받았다. 테슬라는 고전압 전류가 인체에 위험하다는 편견을 깨기 위해 자신의 몸에 수십만 볼트의 전류를 흘려보내는 시연을 자주 했다. 이것은 전류가 피부를 타고 흐르는 '표피 효과'를 완벽히 이해하고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지만, 관객들이 보기에는 몸에서 번개가 뿜어져 나오는 '전기 마술사' 같은 모습이었다고 한다. 그는 이 과정에서 몸 안의 세균이 죽어 피부가 좋아진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그리고 테슬라는 투자자들을 설득하기 위해 '콜럼버스의 달걀'을 전기적으로 구현했는데, 구리 달걀을 회전하는 자기장 위에 올려놓고 그것이 넘어지지 않고 수직으로 서서 회전하게 만들었다. 이 시각적인 마술 같은 광경에 매료된 투자자들이 교류 시스템에 거액을 투자하기 시작했다. 결국 두 사람의 전류 전쟁(War of Currents)은 테슬라의 승리로 끝을 맺었다. 하지만 에디슨이 끝까지 교류(AC)의 도입을 거부하자 그의 회사를 후원하던 금융가 J.P 모건은 에디슨의 회사(에디슨 제너럴 일렉트릭)를 경쟁사와 합병시켜 버렸고, 이때 탄생한 회사가 오늘날의 GE(General Electric)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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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에 대한 비판


테슬라는 1935년 뉴욕 타임즈와의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상대성 이론은 수많은 오류로 뒤덮인 거대한 의상과 같다. 사람들은 그 화려함에 눈이 멀어 논리적인 모순을 보지 못한다. 이 이론은 마치 마법과 같아서, 가장 똑똑한 사람들조차 그 최면에 걸려 있다." 테슬라는 "공간(Space)은 속성이 없으므로 휘어질 수 없다"고 주장하며, 공간이 휜 것처럼 보이는 것은 에테르에 작용하는 힘 때문이라고 믿었다. 테슬라는 아인슈타인이 물리적 실체를 무시하고 오직 수학적인 가설만으로 우주를 설명하려 한다며 이를 '형이상학적 오류'라고 비난했다. 그러면서 그는 에테르 이론을 바탕으로 자신만의 중력 이론(Dynamic Theory of Gravity)을 완성했다고 주장했다. 이 이론에 따르면 중력은 시공간의 곡률이 아니라 에테르 내에서의 정전기적 작용에 의해 발생한다. 그는 이 이론을 통해 에너지 무선 전송과 비행체 추진 기술을 실현하려 했으나, 실험 데이터나 논문을 제대로 남기지 못해 주류 학계에서 점차 소외되었다. 테슬라는 철저하게 직관적이고 기계적인 모델을 중시하는 19세기형 천재였다. 모든 현상은 눈에 보이는(혹은 상상할 수 있는) 기계적인 매커니즘으로 설명되어야 한다고 믿었기에, '매질 없이 전달되는 빛'이나 '휘어지는 빈 공간' 같은 추상적인 개념을 받아들이기 힘들었을 것이다. 오늘날 주류 물리학은 아인슈타인의 손을 들어주었지만, 최근 현대 물리학의 '암흑 에너지'나 '양자장(Quantum Field)' 개념이 "우주 공간은 무언가로 가득 차 있다"는 테슬라의 직관과 묘하게 닮아있다는 점은 흥미로운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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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비둘기와의 특별한 사랑


말년의 테슬라는 뉴욕의 호텔에서 고독하게 지내며 비둘기들에게 먹이를 주는 것에 집착했다. 특히 한 하얀 암컷 비둘기를 유독 아꼈는데, 자서전에 "남자가 여자를 사랑하듯 나는 그 비둘기를 사랑했다"고 적을 만큼 깊은 애정을 보였다. 1922년 어느 밤, 여느 때와 다름없이 호텔 방에 앉아 있는데, 그 하얀 비둘기가 창문으로 날아 들어왔다. 테슬라의 기록에 따르면 그날 밤은 그의 인생에서 가장 극적이고 영적인 순간 중 하나였다고 한다. 테슬라는 그 비둘기가 죽어가고 있다는 것을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테슬라의 주장에 따르면 비둘기가 숨을 거두는 순간 비둘기의 눈에서 강렬한 빛이 뿜어져 나왔다고 한다. 그 빛은 자신이 평생 연구했던 그 어떤 인공적인 전등보다도 밝고 강력한 빛이었다고 묘사했다. 비둘기가 죽자 테슬라는 "내 인생의 목적이 사라졌다"고 느낄 정도로 큰 상실감에 빠졌다. 그는 비둘기가 죽은 순간 자신의 평생 연구도 사실상 끝났음을 직감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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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테슬라 파일 압수


테슬라는 뉴욕의 뉴요커 호텔(New Yorker Hotel) 3327호에서 사망했다. 호텔 청소부가 문에 걸린 '방해하지 마시오(Do Not Disturb)' 팻말을 무시하고 들어갔다가, 침대에 누워 숨져 있는 그를 발견했고 사인은 관상동맥 혈전증(심장마비)으로 판명되었다. 테슬라가 사망하자마자 미국 정부와 FBI, 외국 자산 보관국(OAP)은 테슬라가 남긴 모든 서류와 메모, 연구 기록이 담긴 트렁크들을 압수했다. 이 기록물들은 한동안 기밀로 분류되었다가 훗날 일부가 공개되었는데, 이것이 오늘날까지 수많은 음모론과 전설의 바탕이 되었다. 테슬라가 '데스 레이(Death Ray, 평화의 빛)'라고 불리는 가공할 만한 무기를 설계했다는 소문 때문이었다. 테슬라의 장례식은 뉴욕의 세인트 존 더 디바인 대성당에서 거행되었으며, 약 2,000명의 인파가 몰려 시대를 앞서간 천재의 마지막을 애도했다. 그의 유해는 화장되었으며, 현재는 고향인 세르비아 베오그라드에 있는 니콜라 테슬라 박물관에 안치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