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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출생


마리 퀴리(본명: 마리아 스클로도프스카)는 1867년 바르샤바의 귀족 가문에서 5남매 중 막내로 태어났다. 그녀의 조부모와 부모님은 폴란드 독립 운동에 관여했다는 이유로 러시아 정부에 의해 재산을 모두 몰수당한 상태였고, 먹고살기 위해 집의 방들을 하숙으로 내주어야 할 만큼 형편이 어려웠다. 그럼에도 아버지는 집안 곳곳에 과학 도구와 책을 두어 아이들이 언제든 지식을 접할 수 있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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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폴란드에서 프랑스로


마리 퀴리가 폴란드를 떠나 프랑스로 향한 것은 1891년 그녀의 나이 24세 때였다. 당시 폴란드는 러시아의 지배를 받으며 폴란드어 사용과 여성의 고등 교육을 철저히 금지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가난한 형편에 두 자매가 동시에 유학을 가는 것은 불가능했기에 마리와 언니 브로니스와바는 일종의 계약을 맺었다. 먼저 언니가 의학을 공부하러 파리로 떠나고, 마리는 폴란드에 남아 6년 동안 가정교사 일을 하며 언니에게 학비와 생활비를 보냈다. 낮에는 아이들을 가르치고 밤에는 러시아의 감시를 피해 몰래 운영되던 '비행 대학(Flying University)'에서 수학과 과학을 독학하며 실력을 쌓았다. 이후 의사가 된 언니는 마리를 파리로 불러 유학 비용을 지원했다. 1891년 파리에 도착한 마리는 언니네 집이 학교와 멀다는 이유로 학교 근처 라틴 지구의 아주 작은 다락방을 얻어 독립했다. 그녀는 돈을 아끼기 위해 하루에 빵 한 조각과 차 한 잔, 가끔 계란 하나로 버텼고 영양실조로 쓰러진 적도 여러번 있었다. 겨울에는 난로를 피울 돈이 없어 옷을 여러겹 껴입고, 심지어 의자까지 몸 위에 얹어서 체온을 유지하며 잠을 잤다. 이런 악조건 속에서도 그녀는 소르본 대학에 입학한지 2년 만에 물리학 학사 학위를 수석(1위)으로 졸업했다. 이듬해 1894년에는 수학 학사 학위를 차석(2위)으로 졸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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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피에르 퀴리와의 만남


수학 학위까지 마친 마리는 강철의 자기적 성질에 대한 연구 의뢰를 받게 되는데, 이때 실험실 공간을 찾던 중 운명적으로 피에르 퀴리를 만나게 된다. 그녀는 원래 공부를 마치면 고향 폴란드로 돌아가 교사가 되려 했으나, 폴란드 대학들이 여전히 여성을 교수로 받아주지 않았고, 결정적으로 피에르가 그녀를 붙잡으면서 프랑스에 정착하게 되었다. 피에르는 젊은 시절 일기에 "여성은 과학을 이해하지 못하며, 연구에 방해가 될 뿐이다"라는 식의 글을 쓴 적이 있다. 하지만 마리를 만나 대화를 나눈 순간 그는 전율을 느꼈다. 마리는 당시 물리학 뿐만 아니라 수학에서도 피에르와 대등하게 토론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인물이었다. 피에르가 평생을 바쳐 연구한 자성(Magnetism)이나 물리 법칙에 대해 마리는 정확한 통찰력을 보여주었다. 피에르는 그녀를 "과학적 영혼을 가진 반려자"로 인식했다. 파리의 화려한 사교계 여성들과 달리, 마리는 수수한 옷차림에 오직 학문에만 전념하는 고결한 태도를 보였고, 피에르는 이 모습에 매료되었다. 두 사람 모두 명예나 부에 관심이 없었고, 오로지 "진리를 탐구하는 삶"을 최고의 가치로 여겼다. 피에르가 마리에게 보낸 편지에는 이런 구절이 있었다. "우리가 함께 과학의 꿈을 꾸며 살아간다면 얼마나 멋진 일일까요." "당신이 폴란드로 돌아간다면, 나도 프랑스에서의 교수직과 모든 연구를 포기하고 당신을 따라 폴란드로 가서 프랑스어 교사를 하며 살겠다" 결국 마리는 폴란드 대학에서 여성이라는 이유로 교수 임용을 거절당했고, 피에르의 진심 어린 설득 끝에 프랑스에 남아 그와 결혼하기로 결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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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방사능 연구


당시 과학계의 가장 뜨거운 화제는 륀트겐이 발견한 X-선(X-rays)이었다. X-선은 뼈를 보여준다는 화제성 때문에 전세계 수많은 물리학자들이 이 연구에 매달리고 있었다. 반면 앙리 베크렐이 우라늄에서 발견한 기묘한 광선은 X-선과 비슷해 보였지만 훨씬 약하고 희미했다. 대부분의 과학자들은 베크렐선을 X-선의 변종이거나 인광 현상(Phosphorescence) 정도로 치부하고 무시했다. 또한 베크렐선은 너무 미약해서 당시의 일반적인 도구로는 정확한 실험 데이터를 뽑아내기 힘들었다. 하지만 마리는 남편 피에르가 발명한 '압전기 전위계'를 이용하면 남들이 알지 못하는 정밀한 측정을 할 수 있다고 믿었다. 실험 장치는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뉜다.


방사선 부분(전류 발생): 두 장의 금속판 사이에 방사성 물질(우라늄 등)을 놓는다. 이때 방사선이 공기를 이온화시키면 공기 중에 전기가 흐르고 이 전류는 검전기의 바늘을 움직이려고 한다.


수정 부분(전류 상쇄): 피에르 퀴리가 발견한 압전 효과(Piezoelectric Effect)를 이용한다. 수정 조각에 무게추를 매달아 물리적인 압력을 주면 수정에서 지속적인 전기가 발생한다.


이때 방사선이 만드는 전기와 수정이 만드는 전기의 방향을 반대로 설정해서 방사선의 전기와 수정에서 생긴 전기를 정확히 상쇄시킨다. 그러면 검전기의 바늘이 멈추고 원래 위치(0)로 돌아오면 수정에 가해진 무게와 시간을 기록한다. 이 방법은 방사선이 만드는 전기적 힘을 무게추가 수정을 누르는 물리적 힘으로 치환하여 측정한 것이다. 이 정밀한 측정 덕분에 퀴리 부부는 피치블렌드 속에 숨겨진 0.0003%의 라듐을 추측해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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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미지의 원소 가설


마리 퀴리는 이 방법으로 여러 물질에서 나오는 방사선의 세기를 측정하기 시작했다. 그녀는 파리 시내의 박물관이나 지인들을 통해 수많은 광물 표본들을 수집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피치블렌드(Pitchblende 우라늄광)와 차콜라이트(Chalcolite) 같은 광물들을 측정해보았다. 19세기 화학은 '무게 분석법'이 지배하고 있었다. 당시 화학자들은 피치블렌드를 녹이고 분해해서 성분을 다 뽑아냈다고 생각했다. 당시 피치블렌드의 화학 성분비는 우라늄 산화물 70~85%, 납 산화물 2~5%, 실리카 2~5%, 철 산화물 1~3%, 바륨, 비스무트, 구리 극소량이었다. 하지만 막상 피치블렌드의 방사능 수치를 측정했을때 우라늄의 방사능 수치를 훨씬 능가하는 강력한 방사능이 측정되었다. 이것은 과학적으로 매우 중요한 신호였다. 우라늄보다 훨씬 강력한 '미지의 방사성 원소'가 불순물 형태로 섞여 있지 않고서는 설명이 불가능한 수치였기 때문이다. 퀴리 부부는 이 가설을 증명하기 위해 피치블렌드를 화학적으로 분해하기 시작했다. 광석에서 이미 알고 있는 원소들을 하나씩 분리해냈다. 분리된 찌꺼기들을 다시 측정해보니 그 안에서 방사능 수치가 미친 듯이 치솟는 것을 확인했다. 라듐은 바륨(Barium)과 성질이 거의 같았고 폴로늄은 비스무트(Bismuth)와 성질이 비슷했다. 그래서 기존 화학자들은 피치블렌드에서 바륨이나 비스무트가 나오면 그 안에 새로운 원소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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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라듐 추출


퀴리 부부는 우라늄 광석인 피치블렌드에서 우라늄을 뽑아내고 남은 찌꺼기에 더 강력한 방사성 원소가 있을 것이라 확신했다. 그래서 오스트리아 정부로부터 폐광석 수 톤을 기증받아 연구를 시작했다. 그들은 우선 단단한 광석을 잘게 부순 뒤 커다란 무쇠솥에 넣고 탄산나트륨(Na2CO3)을 투입했다. 광석에 포함된 수용성 불순물을 제거하고, 라듐과 바륨 같은 성분들을 산에 잘 녹는 탄산염(Carbonate) 형태로 바꾸기 위해서다. 그들은 이 무쇠솥을 몇시간씩 저으면서 끓여냈다. 그렇게 탄산염 상태가 된 성분들에 염산을 넣어 염화물로 만들고, 여기에 황산을 넣으면 철과 구리는 용해되고 황산바륨과 황산라듐만 침전물 형태로 가라앉게 된다. 마리는 이 침전물을 '라듐이 섞인 바륨'이라 부르며 다음 단계로 가져갔다. 이 침전물은 다시 탄산나트륨과 함께 끓여 탄산염으로 만들고 다시 염산에 녹여 염화 수용액을 만든다. 그리고 최종적으로 분별 결정법(Fractional Crystallization)이라 부르는 방법을 쓰게 되는데, 이 단계는 화학적 노가다의 정점이라 할 수 있었다. 그녀는 이 용액을 끓여 증발시킨 뒤 서서히 식히면서 바닥에 결정이 생기도록 만들었다. 이때 라듐이 섞인 결정이 만들어지는 온도와 속도가 다른 결정과 미세하게 다른 점을 이용해서 라듐이 섞인 결정만 따로 골라낼 수 있었다. 이 과정을 수천 번 반복하면서 라듐의 순도를 높일 수 있었던 것이다. 결국 4년간의 사투 끝에 그들은 8톤의 폐광석에서 0.1g의 염화 라듐을 얻을 수 있었다. 고작 0.1g의 염화라듐이 발산하는 푸른 빛은 어두운 실험실을 환히 밝힐 만큼 강렬했다고 한다. 참고로 폴로늄(황화폴로늄)은 라듐 보다 5개월 일찍 발견했는데, 비스무트와 비슷한 성질 덕분에 비교적 수월하게 추출해낼 수 있었다. 반면 라듐은 바륨과 성질이 유사해서 서로 구분해내기 어려웠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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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인공 합성 광물


마리 퀴리는 천연 차콜라이트(Chalcolite 인산동우라늄석)와 성분이 똑같은 인공 차콜라이트를 실험실에서 직접 만들어냈다. 인공 차콜라이트는 천연 차콜라이트 만큼 강한 방사능을 내뿜지 않았다. 이를 통해 마리는 방사능이 미지의 새로운 원소에서 나온다는 사실을 확신할 수 있었다. 차콜라이트는 암석이라기 보단 특정 화학 성분들이 결합해 만들어진 결정형 소금(Salt)에 가까웠다. 이 광물의 핵심 성분은 구리(Cu), 우라늄(U), 인산(P)이었다. 우라늄산염, 구리염, 인산을 각각 계산된 비율로 물(또는 산성 용액)에 녹이고, 이 용액들을 섞으면 화학 반응이 일어나면서 물에 녹지 않는 고체 성분이 생기게 된다. 시간이 지나면 이 고체 성분이 바닥에 가라앉으며 녹색의 아름다운 차콜라이트 결정이 만들어진다. 당시 프랑스는 화학 분석 기술이 매우 발달해 있었기에 순수한 시약들만을 사용하여 불순물이 전혀 섞이지 않은 깨끗한 인공 차콜라이트를 만들어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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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노벨 물리학상 공동 수상


1898년 염화라듐을 분리해내고 5년 후인 1903년 퀴리 부부는 노벨 물리학상을 공동 수상한다. 이때는 라듐 발견 자체보다는 방사능 현상 연구에 대한 공로로 남편 피에르 퀴리가 앙리 베크렐과 함께 수상할 예정이었다. 처음에 노벨 위원회는 여성이라는 이유로 마리 퀴리를 후보에서 제외하려 했으나, 피에르의 강력한 항의로 함께 수상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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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노벨 화학상 단독 수상


마리는 라듐 발견으로부터 13년 뒤인 1911년 라듐 및 폴로늄 발견과 라듐의 성질 연구로 노벨 화학상을 받았다. 1901년 피에르는 세인트 루이스 병원의 피부과 의사인 앙리 당로와 함께 라듐을 이용한 피부 질환 및 종양 치료 실험을 했다. 결과는 라듐에서 나오는 방사선이 루푸스(결핵성 피부염)나 일부 피부암 세포를 사멸시킨다는 사실을 입증했다. 이것은 현대의 방사선 암 치료의 시초가 되었다. 이후 마리는 1914년 파리에 라듐 연구소를 세우고 치료에 사용될 라듐의 양을 정확히 측정할 수 있는 표준 단위를 확립해서 안전하고 효과적인 암 치료가 가능한 기반을 닦았다. 하지만 라듐이 암 치료에 효과적이란 소문이 퍼지자 기업들은 과학적 근거 없이 라듐을 온갖 생필품에 집어넣어 광고하기 시작했다. 라듐 생수, 화장품, 치약, 콘돔, 초콜릿들이 판매되어 수많은 사람들이 방사능 피폭을 당하는 비극이 일어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