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대인들이 머리가 좋다는 것은 인정이 되나 전체적인 인성도 그러할까요?


아인쉬타인은 공간에는 아무것도 없고, 구체적으로는 “에테르는 없다”라며 공리(公理)로 내 세웠습니다.


에테르가 어떤 형태이든 이것은 나머지 두 공리의 토대(土臺)가 되었습니다.

즉. 절대 좌표를 없애버리고, 

1. 모든 관성계에서의 물리법칙은 동일해야 한다.

2. 그러므로 모든 관성계에서 광속은 불변이다.

라는 것을 구체적인 공리로 세우고 상대성이론을 세웠습니다.


그러나 에테르부재(不在)광속불변은 과학자들이 밝혀야 할 사안이지,

아인쉬타인이 독자적으로 공리로 세울 일이 아닙니다.

그런데 아인쉬타인은 이런 만행을 서슴치 않고 저질렀습니다.


여러분. 

아무것도 없는 것에는 아무런 작용도 없습니다.

이것은 “0”에 어떤 수를 곱해도 “0”이 되는 것과 같습니다.

그런데 그런 공간에 아이쉬타인은 온갖 추상화를 그려 넣었습니다.


단순한 입자의 이동이라면 앞에 아무것도 없는 것이 더 자연스럽겠지요.

그러나 파동은 다릅니다. 파동은 작용입니다.

에테르든 뭐든 뭔가가 없으면 파동은 나아갈 수 없습니다.


그런데 상대성이론 이전에 마이컬슨-몰리 실험에서 에테르의 부재가 확인되었습니다.

이것은 물리학 역사상 가장 큰 오해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잘못된 실험이 아니고 방법의 오류라고 봐야 합니다. 

즉. 일산화탄소감지기로 이산화탄소를 감지하려고 한 것과 같습니다.


아주 단순하게. 

소리 파동의 경우에 어떠한 입자도 이동시키지 못합니다.

저 앞산을 향하여 소리를 지르면 입(주둥이) 앞의 먼지 한 톨이라도 앞산으로 옮겨집니까? 아닙니다. 


그러나 빛은 다릅니다. 

소리도 에너지는 전달하지만 빛의 경우는 다릅니다.


빛의 에너지 세기는 광자 하나의 진동수 즉 파장이 관여를 하지만, 

빛의 세기는 그 광자(光子)의 개수에 비례를 합니다.


이 말은 빛은 파동뿐 아니라 입자까지 이동을 시킨다는 겁니다.

그런데 어찌 소리와 같은 개념의 방식으로 그 매질을 밝혀낸다는 겁니까?

이 오해가 바로 희대의 사기이론 상대성이론을 만들어 낸 겁니다.


그런 아인쉬타인이 마이컬슨-몰리실험에 대한 본인의 입장을 나타낸 말들입니다. 


1. 아인슈타인의 직접 발언 (편지/회고)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Michelson의 실험은 내 이론 형성에 결정적 영향을 주지 않았다.

심지어 1905년 논문을 쓸 때 그것을 알고 있었는지도 기억나지 않는다.”

→ 즉. 직접적인 출발점은 아니었다고 본인 스스로 명확히 말함

2. 또 다른 인터뷰/회고

“나는 그것이 나에게 직접 영향을 주었다는 것을 의식하지 못했다.

단지 그것이 사실이라고 받아들였을 뿐이다.”

→ 의미

실험을 “근거로 삼았다”기보다 이미 맞는 사실로 간주했을 뿐

3. 1920년대 강연 (교토 등)

“학생 시절 Michelson실험의 결과를 알게 되었고,

이것이 상대성이론으로 가는 하나의 길이 되었다.”

4. 역사학자 정리

1905 논문에는→ 마이컬슨-몰리 실험 언급 자체 없음

아인슈타인 본인 평가

→ 영향: “미미하다” “간접적이다” “결정적이지 않다”

최종 핵심

교과서식 설명:→ “마이컬슨-몰리 → 상대성이론” → 단순화된 서술


실제 아인슈타인 입장:

→ 이론은 주로 개념적 문제(맥스웰 방정식, 상대성 원리)에서 출발

→ 실험은 참고 수준 또는 나중에 정당화 역할

한 줄 정리

→ 아인슈타인은 “마이컬슨-몰리 실험이 결정적 계기였다”는 해석을 스스로 부정했습니다.


제가 생각하기에는, 마이컬슨-몰리 실험의 결과가 아인쉬타인의 상대성이론에 대한

영감(靈感)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고 봅니다.

※ 참고로 마이컬슨은 (1907년에) 미국 최초의 노벨상 수상자임.


그리고 특히. 마이컬슨-몰리실험의 결과는 광속에 관성계의 속도가 가감이 되지 않는다는 것의 실험 결과이지,

서로 다른 관성계에서의 광속불변을 밝혀낸 실험 결과가 결코 아닙니다.

 

“10개를 사면 1개의 덤을 주는 것과, 100개를 사면 10%를 깍아 주는 것이 같은 겁니까

 

   

아이쉬타인은 상대성이론이 본인의 독자적인 발상으로 인정받기를 원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마이컬슨-몰리실험이 에테르의 부재를 보여준 것으로 해석이 되었으나

많은 과학자들도 뭔가 찜찜함을 느꼈습니다.


물리학 역사상 가장 위대한 로렌츠변환식을 만들은 로렌츠도 매우 애매한 스텐스를 취했습니다. 

그것은 광속불변을 전제로 한 로렌츠변환식을 연구하면서도 에테르는 존재한다는 것을 전제로 했습니다.  


푸엥카레 역시 그러했습니다. 

그런데 왜 에테르를 포기했냐?


그것은 희대의 사기 이론 상대성이론 때문이었습니다.

“관측할 수 없는 것은 없는 것이다“라며 에테르의 부재를 공리로 세웠습니다.


그러면서 절대좌표가 없다고 상대성이론을 내세우면서 ”광속불변“으로 절대시간(絶對時間)을 건드린 겁니다.


그러면서도, 그는 죽을 때까지 광속유한 이유(光速有限 理由)에 대해서는 말하지 못했습니다.

그렇다면 아인쉬타인은 광속유한 이유에 대하여 연구를 하지 않았을까요.

절대 아닐겁니다. 누구보다 더 열심히 연구를 했을 겁니다.


그런데 아인쉬타인 정도의 머리라면 너무나 쉽게 에테르의 존재가 떠올랐을 겁니다. 

왜냐하면 아무것도 없는 공간에서 빛의 속도가 구체적으로 유한(有限)하게 고정(固定)이 될 이유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런 에테르의 존재를 인정하는 순간, 그사이에 쌓아온 상대성이론의 근간(根幹)이 무너지는 겁니다.


그래서 아인쉬타인은 죽을 때까지도 광속유한(光速有限)의 이유에 대하여 구체적인 답을 내놓지 못했습니다.


현재 물리학계의 대세인 양자역학에서 공간물리학(空間 物理學)에 대한 연구가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속속들이 그에 대한 이론들이 나오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무언지는 몰라도, 구체적인 에테르같은 존재가 있다고 밝혀지면

상대성이론은 페기되거나, 시간이 아닌 실제 물리량으로의 대체(代替) 이론들이 나올 겁니다. 


특히 실제적인 실체가 확인이 되지 않은 광속불변을 전제로 한 수식 이론들은 무조건 폐기가 될 것입니다.


신격화 된 아인쉬타인은 본인의 ”에테르 부재“ 때문에 공간물리학을

100년 넘게 가로막은 데 대한 반성과 후회를 죽어서도 해야 한다고 봅니다.


이는 공기(空氣)제어 비행체에서 공간(空間)제어 비행체로의 역사를 후퇴시킨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