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짤방은 볼츠만.)
학부 수준 통계물리의 거의 대부분은, 자유도가 매우 큰 계가 있을 때, dynamics 따위 상관하지 않고 ensemble로 대체해서 통계적으로 기술할 수 있다는 걸 이야기한 다음에(정당화라기보다는 그렇게 하자고 선언하는 것에 가까움), 주구장창 평균이랑 분산(내지는 평균값의 미분)을 구하는 거임. Micro-canonical ensemble, canonical ensemble, grand canonical ensemble이 서로 동등하기 땜에 암거나 써도 상관 없다는 건 덤. 셋 중 micro-canonical이 가장 기본이 되고, 나머지 둘은 여기서부터 유도 가능. 따라서 이제부터 할 이야기도 고립계를 다루는 데 사용하는 micro-canonical ensemble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음.
통계 기법만 놓고 보면 통계학에서 다루는 내용에서 기초 중의 기초인데도, 통계물리를 처음 배우면 대부분 헤매게 됨. 내 경험을 돌이켜 보면 계의 성질을 통계적으로 기술해도 되는 그럴 듯한 이유가 피부로 잘 와 닿지 않아서 그런 것 같음. 물리공부를 할 때는, 일단 뭔 짓을 하는지 그림이 그려져야, 그걸 정확하게 표현해서 수식으로 쓴 담에 닥치고 푸는 모드로 들어갈 수 있고, 답을 낸 다음에는 물리적인 직관과 비교해서 타당한 결과인지 알 수도 있믐. 근데 처음부터 감이 안 오면 그냥 시궁창이 되는 것.
교과서나 강의에서도, 자유도가 매우 큰 계에서는 분포함수가 peak이 굉장히 뽀족한 Gaussian이 되어서(central limit theorem), 평균값이 계의 성질을 잘 대표한다는 것은 대개 감이 오게 설명을 해 줌. 그러나 정작 왜 통계로 문제를 풀어도 되는지는, 많은 경우 기본 가정이 그렇다는 식으로만 이야기하고, 왜 그런지 충분히 납득을 시켜주지는 않는 듯.
나는 보통 자유도가 큰 계를 통계적인 기법으로로 다뤄도 되는 이유를 다음과 같은 상황을 통해 설명하는 걸 좋아함.(수학적인 증명이 아니라 감을 잡는 데 도움이 될 만한 예시.)
- 불균일하게 진동하는 바닥 위에 매우 많은 수의 동전이 놓여져 있다. 바닥의 진동 때문에 모든 동전들이 계속 뒤집히고 있으며, 특정 동전이 정확히 언제 뒤집히는지는 알 수 없지만(또는 관심이 없지만), 적어도 동전들이 뒤집히는 패턴은 무작위적으로 보인다. 동전의 총 개수가 N이라면, 앞면을 위로 향하고 있는 동전의 개수를 시간에 대해 평균한 값은 약 얼마일까? 또는 특정 순간에 앞면을 위로 향하고 있는 동전의 개수는 약 몇 개일까?
1. 둘 모두 답은 N/2. N이 충분히 크다면, 동전들이 가질 수 있는 앞뒷면 배열(=microstate)을 모두 나열했을 때, 앞면과 뒷면 각각의 개수가 N/2 근처인 경우가 압도적으로 많아서 실질적으로 이 경우가 전부라고 할 수 있음. (central limit theorem에서 유추할 수 있는 결과.) 따라서 동전들이 뒤집히면서 microstate가 계속 바뀌어도 거의 모든 순간 앞면의 개수(=macrostate)는 약 N/2을 유지하고, 시간 평균도 당연히 N/2임. 즉, 입자 개수가 매우 많으면서 microstate가 충분히 무작위적으로 변하는 계에서는, 모든 가능한 microstate, 즉 ensemble을 가지고 평균을 냄으로써 macrostate를 구할 수 있음.
2. 동전들이 뒤집히는 패턴이 아무리 복잡해도, 동전의 개수 N과 같은 보존량은 변하지 않음. 당연한 얘기지만, 동전의 개수가 N이면 개수 N에 해당하는 microstate만 모두 고려해서 통계 처리를 해야 하고, 개수가 2N으로 바뀌는 일은 없으니 이런 상황은 통계 데이터에 포함되지 않음. 이는 고립계(micro-canonical ensemble)를 통계적으로 다룰 때, 정해진 에너지(또는 그 근처의 매우 좁은 에너지 범위)와 정해진 입자 개수를 가지는 microstate들만 고려해 주는 것과 같은 이야기임.
3. 통계적인 기법이 맞는 답을 내어 놓으려면, microstate가 구체적으로 어떻게 변하는지는 전혀 중요하지 않지만, 충분히 무작위적으로 변한다는 조건은 매우 중요함. 이 조건이 깨지는 경우를 생각해 보겠음. 초기 조건을 특수하게 잡아서, 최초에 모든 동전이 앞면을 위로 향하고 있는 상황에서 시작함. 여기서 하필 바닥의 일부분만 진동해서 전체 동전의 절반만이 무작위로 뒤집히고 나머지는 가만히 있다면, 시간이 아무리 지나도 앞면의 평균 개수는 N/2 근처로 가지 않음. 원칙적으로 가능한 microstate 중 절대 다수에서, 앞면의 개수가 N/2 근처임에도, 계의 dynamics가 바보라서 극히 일부의 예외 상황에 갇혀 빠져나오지 못하는 것임. 이는 열적 평형에 도달하지 못하는 상황에 해당하며, 이럴 때는 전체를 통계적인 기술하는 것이 맞지 않음. 반대로 동전들이 무작위로 잘 뒤집혀서 앞면의 개수가 N/2인 상태로 가는 것은 열적 평형에 도달하는 것에 해당하며, 이때 통계적인 기법을 적용 가능.
4. 지금까지 이야기한 동전 예시 말고, 실제 통계물리에서 고립계를 다루는 경우, microstate를 바꾸는 역할을 하는 것은 내부 입자들 간의 상호 작용인데, 이게 갖추어야 할 조건이 조금 미묘함. 예를 들어 계를 자유입자들의 모임으로 생각하는 게 얼추 맞는 상황을 생각하겠음. 이때 입자들간의 상호작용은 충분히 약해서 microstate의 에너지를 계산하는 측면에서는 상호작용의 효과를 고려하지 않아도(즉, 에너지를 계산할 때 단순히 각 입자가 가지는 에너지를 더해 줌) 문제가 없어야 하고, 동시에 실험이 이루어지는 시간 내에 충분히 다양한 microstate들을 옮겨다닐 수 있을 만큼은(=열평형을 이룰 만큼은) 상호작용이 강하고 복잡해야 함. (통계에서 자유입자들로 이루어진 계를 자주 다루는데, 역설적으로 계가 완벽한 자유입자들로 이루어져 있다면 평형에 도달할 수 없어서 통계물리는 적용불가.) 어찌 되었든 상호작용이 방금 말한 조건만 만족하면, 구체적으로 어떻게 작용하는지는 전혀 안 중요하고(동전의 예에서 각 동전이 정확히 언제 뒤집히는지가 안 중요한 것과 같음), 따라서 닥치고 통계적인 기법을 사용하면 됨.
이 정도가 그 동안 내가 "통계물리가 대체 뭐 하자는 짓인지"에 대해 깨달은 바임.
덧. 볼츠만 만세.
2에서 2N얘기가 왜 나오는지 감이 도무지안잡히네여 ㄷㄷ 그래도 덕분에 대학 통계가 어떤식인지 조금은 알것 같네여 ㄱㅅㄱㅅ
학부 통계의 시작은 앙상블이요, 끝도 앙상블이더라
ㄴ 고립계 그러니까 외부와 물질이 오가지 않는 그런 시스템(열통책에는 closed system 혹은 isolated system이라고 함)에서 입자의 갯수는 변하지 않는 다는 뜻인듯.
ㅇㅇ앙상블 앙상블, 통계의 시작은 분배함수로 시작해서 분배함수로 끝나더라. 힉스횽 쓰신 글 잘 봤어요. 그나마 쬐~~~금 더 잡히는데요. 수업들을 때는 아주 그냥 그려지지도 않고... 오나전 동감했음여. 그래도 통계는 싫어요.
이글 추천찍고갑니다~_~
볼츠만 코봐라 잘생겼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