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주장 1. 나는 “과학=철학=의심하는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라고 본다.
주장 2. 나는 “과학=철학=의심하는 상태를 유지하는 것“은 그 단어의 정의 상 ”끝“에 도달할 수 없다.
주장 3. 주장 2에 의해 “인간의 진리(허황된 단어가 아닌가?)에 대한 탐구는 결국 본인이 진리에 도달했는지 입증할 수 없다.”
주장 4. 결국 인간의 진리 탐구 과정은 “무한소를 향한 행진”이며 “0에는 도달하지 못한다.”
주장 5. 위의 주장들에 의해 수학의 공리체계를 포함한 모든 명제는 결국 “틀릴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명제가 된다. 바꿔 말하자면, 인류의 학문은 “가장 그럴싸한 명제를 찾아가는 것“이라 할 수 있다.
<?xml:namespace prefix = "o" ns = "urn:schemas-microsoft-com:office:office" />
결국 내가 이미 한 주장들도 “틀릴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
주장 1에 대한 이유
1. 인류가 지금까지 이룩한 과학은 “인과론”을 대전제로 하고 한마디로 원인을 파헤쳐나가는 과정이었다고 본다. 원자를 발견하고 그걸 다시 쪼개 쿼크를 발견하고, 그걸 다시 쪼개 힉스입자를 발견해왔다. 한마디로 계속해서 원인에 대해서 탐구(의심)하는 것이다. 철학도 종교와 상반되는 점이 바로 이 점이라고 생각한다. 즉, 의심하는 상태를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주장 2에 대한 이유
1. 과학이 대전제로 삼고 있는 “인과론”의 끝에 대해서 생각해보자. 파헤치고 파헤쳐서 어떤 입자(혹은 끈이려나?)까지 왔다. 거기서 멈출 수 있는가? 왜 여태까지 일관되게 유지해왔던 의심을 여기서 거두어야 하는가? 거둘 수 없다. 즉, 무한히 작은 형태, 무한소로 나아가야한다.
2. 만약 어떤 입자(혹은 끈이려나?)가 이 우주의 근본적인 무엇이며, 더 작은 것은 있을 수 없다는 주장에 대해 제논의 역설을 생각해보자. 제논의 역설에서는 그 결정된 무엇이 시간이며, 이 시간이 무한히 작지 않으면 그 단위 시간의 합은 무한하므로 아킬레스는 토끼를 따라잡을 수 없다. 바꿔 말하면, “단위시간“이란 있을 수 없고 무한히 작아야 한다. 이를 입자에 대해 생각해보자. ”단위입자“란 있을 수 없고 무한히 작아야만 한다.
3. 어떤 입자(혹은 끈이려나?)에서 멈추고 의심을 거두면 사실상 종교와 다를 바가 없다.
주장 3에 대한 이유
1. 인간의 진리 탐구는 현상에서 data를 모은 뒤 추론하는 “귀납적 추론”으로 본질적으로 “모든 거위는 하얗다.”라는 명제와 동일 선상에 있다. 이러한 모든 “귀납적 추론”은 애초에 귀납적이기 때문에 “틀릴 가능성을 제거할 수 없다. 틀릴 가능성이 0이 될 수 없다.”
쉬운 이해를 돕기 위해 다음과 같은 상황을 생각해보자. 이름이 호킹 아인슈타인이라는 과학자가 이 세상을 전부 설명할 수 있는 법칙을 발견한 상황이 드디어 왔다고 해보자. 근데 까고보니 실상은 매트릭스ㅋㅋ 영화 매트릭스 안에서 자신이 매트릭스에 있지 않고 여기가 “리얼 월드다“ 라고 반증할 수 있나? 없다. 즉, 언제나 그럴싸하지만 반증도 못하고 증명도 못하는 반례를 언제나 들이밀 수 있다.
심지어 이 귀납적 추론의 한계는 수학에도 적용되는데 “괴델의 불완전성 정리”가 그것이다. 결국 쉬운말로 “수학의 공리체계는 그 공리체계 안에서 무모순성을 입증할 수 없다.”인데 수학의 공리체계(묻지도 따지지도 않는 정의(예를 들면 직선, 자연수 등등))도 사실은 이 우주를 인간이 관측하면서 data를 모은 뒤 “추론”한 관념이므로 “귀납적 추론의 산물“인 것이다. 따라서, "수학의 공리체계도 틀릴가능성이 배제될 수 없으므로 그 체계 안에서 무모순성을 입증할 수 없다."
------------------------------------------------------------------
위와 같은 이유로 현재 통칭 "인문학"이라고 하는 것으로 사람들 현혹해서
밥벌이를 하는 사람들이 나도 보기 썩 좋진 않지만
"철학"이란 단어의 definition을 저렇게 두면 사실 "과학"하는 것은 이미 "철학"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쉬운 예로 과학을 그냥 메타적 시각으로 바라보면 바로 철학이 튀어나온다.
ㄱ. 에너지보존법칙=ㄴ. 어떤 시스템에 더해지거나 빼지는 것이 없다면 그 계는 유지된다.
"ㄱ"을 "ㄴ"으로 환원해서 의심해보는게 "철학"아닌가?
더 나아가 "인과론"에 대해서도 의심해보기도 한다.
결국 뭔가를 의심하는 것이 철학이고 과학이다. 의심을 안하는 순간 종교의 나락으로 떨어지는 거지.
그래서 애초에 태생부터가 끝이 없는 거고, 그로 인해 "0"(진리, 근데 진리도 결국 관념이고 환상아니냐?)에는 도달할 수 없고 "무한소"일 수 밖에 없다.
결국, 수학 물리 철학이 "아, 인간은 진리탐구를 관측을 통한 귀납적 추론으로 밖에 할 수 없으니, 진리를 밝혀도 틀릴 가능성이 "0"이 될 수는 없네."라는 같은 결론에 도달하게 된거다. 그래서 허무주의 이딴게 나오다가 20세기 막판에는 "진리는 알 수 없을지라도, 인류에게 도움이 되는 "명제"는 참이다!"하는 실용주의 철학이 대두함.
여긴 학문갤 아닌데 여기서 이래봤자..
글은 공감. 답은 추상적인걸 추구하느냐 실용적인걸 추구하느냐임.